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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세치 혀 하나로 조국을 구했다?

중앙일보 2017.04.16 13:58
호북성(湖北省) 형주(荊州)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무한(武漢)으로 향한다. 무한은 장강대교가 지나는 곳에 중국 3대 명루의 하나인 황학루(黃鶴樓)가 있다. 무한을 방문하면 황학루도 둘러보아야 하지만 황학루 옆에 있는 삼국공원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오나라 최고의 참모인 노숙의 의관묘도 있으니 필히 둘러보아야 한다.
황학루 [사진 허우범]

황학루 [사진 허우범]

황학루를 찾았다. 이슬비가 내리는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내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황학루 앞 삼국공원은 수많은 장수와 참모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위, 촉, 오 세 나라의 주인공들만 세워져 있다. 촉은 유관장 삼형제, 오는 손권과 주유가 함께 있다. 그런데 위나라는 조조뿐이다. 미운 조조이기에 혼자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인재대국 위나라는 참모가 너무 많아 생략한 것인가. 왠지 생각이 전자에 더 끌리는 것은 오랜 세월 ‘조조=악인’으로 굳어진 그들만의 선입견 때문인가.  

황학루 앞 삼국공원, 위촉오 주인공 동상
촉은 유관장 삼형제, 오는 손권·주유, 위는 조조뿐
조조의 맹공, 유비·손권 동맹 시급
동맹 결정권은 손권에, 하지만 망설여
제갈량 설득으로 촉오동맹 극적 맺어져
유비·손권 동일한 위치에 두면서,
한 편이되 천하삼분까지 논하는 기재 발휘
여기서 제갈량 못지 않은 역할, ‘노숙’

 
유비는 당양에서 파죽지세의 조조군에 패배하고 장강으로 쫒기는 신세가 된다. 시세는 급박하게 흐르고 유비는 갈 곳이 없었다. 유비는 유표가 죽기 전에 형주를 받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오나라의 손권과 동맹을 맺어 조조에 대항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러한 때 노숙이 유비진영에 나타난다. 그야말로 유비에게는 구세주와 다름없는 노숙의 등장이다. 하지만 노숙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은 일찍이 손권에게 설파했던 형주에 관한 것이다.
황학루에서 본 장강대교

황학루에서 본 장강대교

형주는 우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강물은 북쪽으로 흘러 장강과 한수를 에두르고, 안으로는 높은 산과 언덕이 있어 성은 튼튼하며, 기름진 땅이 만 리에 펼쳐 있어 관리와 백성 모두가 후덕합니다. 그러하매 이곳을 차지하면 제왕의 근거지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전략적 요충지인 형주는 제갈량이 유비에게 설명한 천하삼분계책 이전에 노숙과 손권사이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형주의 사태가 급변하자, 노숙은 손권에게 설파한 ‘노숙판 융중대’의 현장을 찾은 것이다. 노숙과 제갈량의 형주에 대한 속셈은 서로 달랐다. 하지만 조조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다. 그리고 촉오동맹의 확정을 위해 손권에게로 간다.    
삼국 공원에 있는 유비 관우 장비상 [사진 허우범]

삼국 공원에 있는 유비 관우 장비상 [사진 허우범]

유비집단의 생사존망이 걸린 동맹의 결정권은 손권에게 달려 있었다. 손권은 조조와 유비를 놓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참모들도 주화파와 주전파로 나뉘었는데, 주화파 쪽이 강했다. 주화파의 요지는 대세로도 조조를 대적할 수 없고, 조조에게 항복하면 전쟁 없이 강남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 제갈량이 등장하여 동오 참모들과의 설전에서 보기 좋게 승리함으로써 주전파에게 힘을 실어 주고,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어 조조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제갈량이 동오의 참모들과 벌인 ‘설전군유(舌戰群儒)’는 외교적 능력이 뛰어난 제갈량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설전군유하는 제갈량 [사진 바이두]

설전군유하는 제갈량 [사진 바이두]

제갈량이 강동에 가서 촉오동맹을 맺고 조조에게 대항하자고 설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손권의 모사들과 현안에 대해 논쟁을 펼쳤다는 기록은 없다. 더구나 제갈량과 논쟁을 폈던 동오의 사람들은 모두 적벽대전 이후에 임용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제갈량의 ‘설전군유’는 지어낸 이야기이다. 


설전군유 이야기는 원나라 때 나온 『삼국지평화』에서 이미 허구화되었다. 이곳에 보이는 제갈량의 성격은 강경하고 조급하여 몹시 서두르는 경솔한 인물로 그려졌다. 이를 나관중이 온화하고 점잖은 풍격과 높은 학식을 겸비한 명사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침착한 태도와 뛰어난 언변까지 보태놓았다. 우리가 중국 최고의 재상이라고 믿는 제갈량은 이렇듯 나관중이 만든 제갈량의 인상(印象)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손권과 주유상 [사진 허우범]

손권과 주유상 [사진 허우범]

나관중은 제갈량을 신기묘산(神機妙算)의 인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제갈량만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능력을 보여준다. 전략적 안목인 ‘융중대책’, 군사적 능력을 보여주는 ‘박망파 전투’에서의 승리, 뛰어난 외교술을 보여준 ‘설전군유’가 바로 그것이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십만 개의 화살을 구하는 ‘초선차전(草船借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관중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신묘한 제갈량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융중대책은 동오의 노숙이나 참모들이 먼저 주장한 것이고, 박망파 전투의 승리는 유비의 것이며, 초선차전은 손권의 것이다. 설전군유도 제갈량과 거리가 멀다. 조조와의 일전을 앞둔 손권의 마음은 참모인 노숙의 진언에 이미 결정되었다. 하지만 유비진영을 대표한 제갈량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나라 안(海內)이 크게 어지러워 장군께서는 강동에서 군사를 일으키셨고, 우리의 유장군께서는 한남에서 힘을 모으셨으니, 조조와 함께 천하를 다툴 것입니다.”  

제갈량의 이 간단한 말에는 융중대에서 설파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즉, 유비와 손권을 동일한 위치에 놓으면서 한 편이 되게 하고, 조조와는 적대적인 자리에 배치하되 천하삼분을 이야기하는 고도의 화술이다. 실로 제갈량다운 기재(奇才)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간파한 손권이 반문한다. 

유장군은 왜 투항하지 않는가?

옛날 제나라 장사 전횡은 일개 필부임에도 끝까지 투항하지 않았는데, 어찌 유장군이 투항하겠습니까? 우리 장군께서는 한황실의 자손으로 재모와 지혜가 이미 세상에 알려진지라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단코 저항할 것입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이지 투항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손권은 조조와 사돈지간이었기에 조조가 유비보다도 가까웠다. 동생 손광은 조조의 조카딸과 혼인하였고, 손권의 조카딸은 조조의 아들인 조창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권은 유비를 택하였다. 동등한 사돈지간은 가능할지언정 조조에게 항복하여 복종하기엔 손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조조를 도와 유비를 없애는 것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경우처럼 다음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러하니 유비와 연대하여 조조에게 대항하는 것은 손권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러한 때, 손권의 생각을 확고하게 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조조가 손권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자못 불쾌하고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요사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유종의 죄를 추궁하고자 정모(旌旄, 천자의 깃발과 장식)를 앞서게 하고 남으로 내려오니 그는 꼼짝도 못하였다. 내 이제 수군 80만 명을 이끌고 장군과 더불어 강동서 사냥을 할까 한다.

조조상 [사진 허우범]

조조상 [사진 허우범]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80만 수군을 이끌고 가서 오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니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말이다. 사실 손권은 조조와 유비의 싸움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전달된 조조의 편지가 손권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이다. 조조는 어째서 유비를 치다가 손권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당양의 전투에서 유비를 무찌른 조조는 너무나 득의양양하였다. 


게다가 천하의 요충지라는 형주에 무혈입성을 하였으니 말이다. 이에 조조는 더욱 욕심이 생겼다. 이번 원정에서 아예 손권이 차지하고 있는 장강 이남지역까지 무릎을 꿇게 하고 싶었다. 형주의 수군까지 있으니 못할 것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군사의 사기도 매우 높아 천지를 진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하매 가후가 회유정책을 쓰라고 진언하였지만 조조는 듣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유비와 손권의 동맹이 제갈량의 화려한 활약에 힘입어 결정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설전군유는 물론 교묘한 말로 손권을 설득하는 ‘교설손권(巧說孫權)’, 주유의 심기를 격화시키는 ‘지격주유(智激周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촉오동맹은 제갈량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손권이 동맹을 결정하기까지는 노숙과 주유의 행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노숙은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두 나라의 동맹을 견고히 함으로써 위나라에 대항할 수 있음을 공유하고 이를 손권에게 주지시켰으며, 주유 또한 강동의 군대를 통솔하는 뛰어난 장수로써 조조와의 일전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삼국공원을 둘러보고 노숙 의관묘를 찾는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풀밭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가 비탈길에 있는 노숙묘를 찾았다. 무덤의 무성한 풀들만이 이슬비에 한들거리고 있다. 노숙묘는 호남성 악양루 근방에 있다. 허름한 민가들이 늘어선 마을의 좁은 길목에 노숙묘라고 쓴 안내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묘의 주인에 대해 물어보니 잘 모른다. 제갈량과 주유만 알고 있다. 노숙에 대해 설명해주자,
황학루 옆에 있는 노숙의 관묘 [사진 허우범]

황학루 옆에 있는 노숙의 관묘 [사진 허우범]

그렇게 유명한 분의 묘인가요?

그래. 너의 동네에 이런 훌륭한 분을 모셨으니,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라. 아저씨는 이곳을 보려고 한국에서 왔단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환한 웃음으로 뛰어간다.  
 
소설에서의 노숙은 성실하고 온순하다. 무골호인(無骨好人)같기도 하다. 노숙이 손권을 만나 주창한 ‘천하양분지계(天下兩分之計)’도 제갈량의 융중대책에 가려 빛을 잃는다. 하지만 노숙의 진면목은 그렇지 않다. 호탕하고 의협심이 강한 성격이며, 사람들에게도 두루 신망을 얻었다. 유복한 지주출신이어서 베풀기도 잘하였다. 
 
그러나 소설 삼국지에서는 언제나 제갈량의 뒷전에 있다. 오직 제갈량의 영원한 우군이자 그의 추종자로만 존재한다. 나관중이 소설에 부여한 ‘촉한정통론’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조연에 불과하다. ‘소설은 소설로 읽어라’고 하지만 사실을 알고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까닭에 역사공부는 언제나 필수사항이며, 이는 비단 소설 삼국지를 잘 읽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글=허우범 작가  
정리=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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