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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던 로데오거리가 살아났다, SNS덕분에

중앙일보 2017.04.16 12:15
요즘 뜨는 동네? 맛집 거리다. 서울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성수동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형이나 역사, 상권 등 모든 게 다 다르지만 가볼만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채워진 맛 골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집저집 슬렁슬렁 걸어다니며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틈틈이 디저트 즐기는 게 가능한 동네라는 얘기다. 이런 도심 핫플레이스를 알차게 즐길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할 '푸드트립'을 시작한다. 첫 회는 '다 죽었다 살아난' 압구정 로데오거리다.
 

패션 1번지에서 특별한 맛집거리로 변화중
권리금 낮아 유학파 젊은 셰프 손쉽게 진입
골목에 숨어있어도 SNS 보고 찾아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사거리에서 학동 사거리 입구까지 이어지는 'ㄱ'자 형태의 압구정 로데오거리(이하 로데오거리)는 1990년대에 돈 많고 잘 노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오렌지족(族)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치솟은 임대료 탓에 개성있는 맛집 등이 시내버스 세 정거장 거리의 신사동 가로수길로 옮겨가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거리 자체가 죽기 시작했다. 가게가 떠나고 손님이 줄고,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빈 가게가 속속 생겨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로데오거리의 시대는 끝난듯 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로데오거리가 최근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특별한 맛집 덕분이다. 지난해(2016년)에만 연희동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몽고네를 시작으로 백곰막걸리&양조장, 더그린테이블, 아우어베이커리, 아우어다이닝, 스파크 등이 로데오거리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프렌치·이탈리안 같은 서양식 레스토랑부터 빵집, 전통술 전문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상2층, 지하 1층 규모의 백곰막걸리&양조장은 210종의 전통술과 다양한 안주를 판다. 이승훈 대표는 "강남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권리금이 없고 임대료가 적당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백곰막걸리]

지상2층, 지하 1층규모의 백곰막걸리&양조장은210종의 전통술과 다양한 안주를 판다. 이승훈 대표는 "강남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권리금이 없고 임대료가 적당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백곰막걸리]

다 죽었던 동네에 왜 갑자기 이름난 맛집이 몰리기 시작한 것일까. 여기엔 임대료의 역설이 있다. 상권 침체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권리금과 임대료가 확 꺾이며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의류회사가 있던 지하1층, 지상2층 건물에 전통주 전문점 백곰막걸리&양조장을 연 이승훈 대표는 "권리금이 없고 월세가 적당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1층이나 교차로 주변을 제외하면 권리금이 없는 가게가 상당수 있다. 미쉐린(미슐랭) 스타 셰프의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이 밀집해 있는 청담동과 가까워 미식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유입도 가능하다.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 이유석 오너셰프는 "로데오거리에선 뻔한 컨셉트나 음식은 외면받는다"며 "음식 수준은 높으면서 여기에 셰프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컨셉트가 있어야한다"고 설명했다.  
 
낮은 진입장벽은 젊은 셰프들에겐 기회다. 레스토랑 가이드『블루리본』김은조 편집장은 "강남 한복판이지만 다른 상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해 젊은 셰프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루이쌍끄·스파크·더그린테이블·톡톡 등은 프랑스·미국·일본 등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셰프들의 공간이다. 이들은 자신의 색이 뚜렷한 요리를 선보인다. 프렌치 레스토랑 '톡톡'은 프렌치라는 장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식재료만 봐도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요즘은 반건조한 생선과 철갑상어 요리를 준비중이다. 김대천 오너셰프는 "겨울에 삼천포·여수의 지인에게 부탁해 자연산 생선 600㎏을 구입해 건조시켰다"며 "활어나 선어보다 식감이 탱탱하고 풍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그린테이블.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 눈에 잘 안띄는 2층에 맛집에 숨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 덕분에 이렇게 숨어있어도 손님들은 기어이 알고 찾아온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그린테이블.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 눈에 잘 안띄는 2층에 맛집에 숨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 덕분에 이렇게 숨어있어도 손님들은 기어이 알고 찾아온다.

2016년 서래마을에서 로데오거리로 이전한 '더그린테이블'도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감태까나페와 버섯·토마토 피클 등을 2단 접시에 올려내는 아뮤즈는 이곳만의 개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우어다이닝과 아우어베이커리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화제인 공간이다.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우어다이닝은 골드와 화이트로 꾸며진 세련된 분위기로 갑오징어살과 먹물로 만든 리소토에 치즈를 넣어 동그란 모양으로 튀겨낸 갑오징어아란치니 등 특색있는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로데오거리에는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심야식당이  있다. 사진은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에서 이유석(왼쪽) 오너셰프가 단골 고객괴 이야기하는 모습.

로데오거리에는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심야식당이 있다. 사진은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에서 이유석(왼쪽) 오너셰프가 단골 고객괴 이야기하는 모습.

로데오거리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술 마시기 좋은 거리로도 꼽힌다.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음식이 훌륭한 식당들 때문이다. 이들은 오후 6시쯤 문을 열어 자정 넘은 시간까지 운영해 1차로 식사를 한 고객이나 청담동 등 인근 레스토랑 셰프들이 단골이다. 일식·프렌치·한식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루이쌍끄'다. '프렌치=코스요리'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프렌치·스패니쉬 단품 요리를 선보인다. 일본 갓포요리 전문점 '이치에'도 빼놓을 수 없다. 수준 높은 일본 요리부터 신선한 회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난 곳이다. 전통주를 좋아한다면 지난해 문을 연 백곰막걸리&양조장이 있다. 210여종의 전통주를 구비한 최대 규모의 전통주 전문점으로 전통주 수만큼 제철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 보쌈, 전 등 안주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지하 1층에선 국산 크래프트(수제) 맥주도 판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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