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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단단해진 안철수, 목소리·글씨체·스킨십 다 바꿨다

중앙선데이 2017.04.16 01:38 527호 5면 지면보기
안철수 후보가 걸어온 길
“쉽지 않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씹지 않는 질문을 해주세요.”

세대 파고드는 ‘아재 개그’ 쏟아내고
작고 동그란 글씨도 큼직하게 바꿔
5년간 측근도 모르게 단단히 준비
김성식·박선숙 등과 ‘제2의 안풍’ 꿈

 
요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자주 구사하는 이른바 ‘아재 개그’다. 지난 13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안 후보는 언어 유희를 이용한 이런 농담을 스스럼없이 구사했다.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썰렁한 퀴즈도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지난 11일엔 “대머리의 매력이 뭔지 아느냐”고 물은 뒤 “헤어(hair) 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했다가 탈모로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안 후보가 확실히 아재 개그에 재미를 들였다. ‘나도 이렇게 예능 기질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물론 “이런 예능감마저 책으로 익힌 것 같다”거나 “모범생의 안간힘”이라는 평가도 상존한다. 하지만 이런 비호감 반응에도 불구하고 학구열만은 인정한다며 인간미가 있다는 반응도 적잖다는 게 캠프 안팎의 전언이다. 이런 점에서 안 후보의 아재 개그는 세대를 파고드는 호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방송가의 중견 예능 PD는 “아재 개그라는 게 같은 세대에겐 일종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코드 역할을 하고 다른 세대에겐 차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며 “안 후보의 아재 개그는 옆 세대와 아래 세대, 즉 세대의 가로와 세로를 동시에 공략하는 복합 카드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기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스킨십
5년 전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안 후보는 “샤이하다”든가 “뻣뻣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요즘 취재 현장에서 안 후보를 접하는 기자들은 안 후보의 스킨십이 질적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러 현장에서 마주쳐 눈에 익은 기자에겐 직접 다가가 “또 봤네요. 오늘은 스탬프 두 개 찍어드릴게요. 열 개 모이면 선물 증정입니다”라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쌓는다고 한다.
 
측근들은 이런 변화가 안 후보의 권력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시금석 중 하나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중저음의 목소리다. 폐활량을 자랑하듯 호흡을 조절하며 멀리서도 잘 들리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강조할 부분에선 톤을 올리며 결연한 의지도 드러낸다. 가끔씩 쉰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김근식 선대위 정책대변인은 “목소리가 이렇게 바뀔지 낌새도 못 차렸다”며 “스스로 단단히 준비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5년 전 김대중도서관 방문 때(사진 위)와 지난 5일 국립현충원 참배 때 방명록에 적은 글씨. 훨씬 큼지막하고 반듯하게 바뀌었다. [뉴스1·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5년 전 김대중도서관 방문 때(사진 위)와 지난 5일 국립현충원 참배 때 방명록에 적은 글씨. 훨씬 큼지막하고 반듯하게 바뀌었다. [뉴스1·뉴시스]

글씨체도 바꿨다. 5년 전 작고 둥글둥글했던 글씨는 올해 각종 방명록에선 큼직하고 반듯하게 바뀌었다. 앞머리를 내렸던 기존의 머리 스타일이 청년층의 호감을 이끌었다면 머리를 올린 요즘 스타일은 중·장년 지지층을 염두에 둔 변화다. 안 후보는 옷 입는 스타일도 바꿨다. 학교 교정에서 볼 수 있는 차분한 교수님 스타일에서 탈피해 셔츠의 단추를 한두 개씩 풀거나 소매를 걷어붙이며 동적인 이미지를 가미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와 2012년 대선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잇따라 양보했을 때와는 결이 전혀 다른 이런 모습은 후보의 남다른 각오와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례들”이라고 말했다.
 
 
“바둑처럼 인생도, 사업도 장기전”
1962년 2월 26일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안 후보는 부산 중앙중과 부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부친은 의사였다. 안 후보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집중력이 좋았다. 참는 건 잘한다”고 회고했다. 취미나 특기도 끈기와 닿아 있다.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는 바둑을 통해 경영 원리를 터득했다고 했다. 그는 “바둑은 부분적 이익보다 전체 국면을 봐야 한다”며 “바둑이 그러하듯 인생이나 사업도 결국은 장기전”이라고 말했다. 또 “요소를 선점해야 바둑이 편해진다”며 “선점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관련 있는 영역에서 조인트 벤처를 만들며 요소를 지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때는 “바둑은 제 취미이고 정보기술(IT)은 제 전공 분야”라며 “이 두 분야가 만나는데 내가 어떻게 빠질 수 있겠느냐”고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안파고’라는 별명도 이렇게 붙었다. 달리기는 취미이자 특기로 꼽는다. 그는 “단거리는 중간에 힘이 부쳐 관두기도 했지만 장거리는 참으면 되니까 잘했다. 1등도 곧잘 했다”고 소개했다.
 
과학자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의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애플 컴퓨터를 갖고 있던 친구와 살면서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웠다. 1980년대 컴퓨터 바이러스가 침범했을 때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면서 ‘안철수연구소(현재 안랩)’ 창업의 기틀을 닦았다. 사업 초기 회사 운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당시 소원이 월급 걱정 한 달만이라도 안 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안 후보는 그때를 회상하며 “어음 깡(할인)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정치하면 곤란한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진다. 1997년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회사가 “1000만 달러에 회사를 팔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하면서 회사도 궤도에 올랐다.
 
2008년엔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2011년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대통령 산하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청춘 콘서트’를 통해 젊은이들이 닮고 싶은 멘토로 뜨면서 20~30대의 전폭적 지지를 얻기도 했다. 요즘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연령대다.
 
2012년 대선에서 하차한 뒤 이듬해 4월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독자 세력화를 추진하다 2014년 3월 민주당과 합당했다. 당 대표로 추대됐지만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패하며 4개월 만에 사퇴했고 당내 친문재인 세력과 대립하다 2015년 12월 탈당했다. 이후 “허허벌판에 혈혈단신으로 나선다”며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녹색바람’을 일으키며 38석을 얻어 여소야대와 3당 체제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5년 전 ‘진심캠프’ 멤버들 전진 배치
지난 4일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안 후보는 곧바로 ‘제2의 안풍’을 일으키며 문 후보와 양강 구도를 굳혔다. 이후 당사로 돕겠다는 발길이 쏟아지고 있지만 안 후보는 선택과 집중이란 원칙을 고수하며 기존 측근들을 전진 배치해 선대위를 꾸렸다.
 
총괄선대부본부장과 전략본부장을 겸하는 김성식 의원은 정책과 전략을 두루 챙기는 캠프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2012년 대선 때도 진심캠프에서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냈다. 5년 전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조광희 변호사는 비서실 부실장에 임명됐다. 안 후보는 지난해 한 강연에서 “조 변호사가 하라고 하면 저는 그냥 합니다”라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박왕규 상황실 부실장과 박인복 공보단 부단장도 진심캠프 시절부터 안 후보와 동고동락해 왔다. 김경록 선대위 대변인은 2012년 대선 당일 미국으로 출국한 안 후보를 인천공항에서 배웅했던 몇 안 되는 심복이다.
 
국민의당 주요 인사들도 전면 배치됐다. 박지원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상임공동선대위원장에, 박주선·천정배·정동영·주승용 의원 등은 공동선대위원장에 포진하는 등 당 중진 인사들이 대거 선대위 지도부에 이름을 올렸다. 장병완 의원은 총괄선대본부장에, 박 대표 측근인 최경환 의원은 후보 비서실장에 각각 임명됐다.
 
안 후보 선대위는 규모에서는 문 후보 선대위를 능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래와 교육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응집력 강한 조직에 방점을 뒀다. ‘미래준비본부’는 이런 구상을 토대로 꾸려졌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지난해 총선 때 비례대표 2번으로 영입된 오세정 의원이 본부장을 맡았다. 국회에 입성한 뒤에도 매주 금요일 안 후보와 공부 모임을 지속해 왔다.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은 외곽 자문그룹도 안 후보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박선숙 의원은 이번 캠프에선 공식 보직을 맡지 않았다. 하지만 안 후보는 지난해 총선 때 사무총장으로서 보여준 박 의원의 능력을 인정하며 여전히 그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안 후보의 정치 멘토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후원회장 겸 평화로운한반도본부장을 맡아 외교안보 정책을 조언하고 있다. 안보 분야는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대장)이 이끌고 있다.


안 후보의 선거 컨설팅을 수주했던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도 선대위에 합류한 뒤 대선 전략 마련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올 초 박 대표는 “안 후보는 아웃사이더 포지션을 취하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분노와 선동이 없고, 주류에 들어가기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같은 뻔뻔함이 부족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해법은 자강론을 바탕으로 보수 주류를 끌어당겨 실현시킨 야야 대결과 안철수 대 문재인의 양강 구도였다.
 
 
정용환 기자 cheong.yongw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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