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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시설 국내로 돌리기보다 일할 사람 키우는 정책 우선돼야

중앙선데이 2017.04.16 01:10 527호 14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美 製造業
중앙SUNDAY·與時齋 공동기획 세계가 묻고 세계가 답하다
미국·중국·일본·유럽의 분석과 전망

고도의 자동화로 생산상 향상
대규모 고용 유지 사실상 불가능
신흥국 인건비 상승은 유리한 환경
미국 첨단 산업 생태계 육성이 관건

 
여시재 홈페이지(fcinst.org)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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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찬 공약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취임 100일(4월 29일)을 앞두고 세계의 싱크탱크와 전문가들은 그의 호언장담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미국] 트럼프의 제조업 부활 공약
일자리 해외 이전을 취소한 캐리어를 방문한 당선인 시절 트럼프 대통령. [중앙포토]

일자리 해외 이전을 취소한 캐리어를 방문한 당선인 시절 트럼프 대통령. [중앙포토]

지난 30년간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숫자는 1890만 개에서 1220만 개로 줄어들었다. 그중 약 90%인 600만 개의 일자리는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0~2010년 사라졌다. 이러한 제조업 황폐화의 배후에는 불공정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되풀이했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진 미국의 제조업을 자신이 되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향후 10년간 새로운 일자리 2500만 개를 창출하고 그럼으로써 연간 경제성장률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불공정한’ FTA를 전면 재검토하거나 재협상하고 국내적으로는 광범한 조세, 에너지 및 경제 규제 정책을 개혁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트럼프판 ‘경제 살리기’의 핵심은 해외로 나간 일자리를 국내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 즉 재이전 정책이다. 취임도 하기 전 당선인 신분으로 캐리어(Carrier)와 합의를 끌어내 800개의 제조업 일자리 해외 이전을 취소시킨 사건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트럼프가 바라보는 미국 제조업, 나아가 미국 경제의 문제와 해법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재이전을 대규모로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데에 많은 미국 국내 전문가가 뜻을 모으고 있다. ‘말 앞에 수레를 놓는다(Putting the cart before the horse)’는 말처럼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이들은 제조업 기초가 취약한 상태에서 생산시설만 옮겨 봤자 경제 기반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선 미국 제조업이 이미 너무 ‘성공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 제조업 생산량은 약 50%나 증가했다. 랜드(RAND)연구소의 노동 및 국제경제 전문가 크리슈나 쿠마 교수 역시 인플레이션 조정을 하더라도 1997~2015년 미국 제조업 생산량은 16% 증가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문제는 고도의 자동화와 기계화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적은 인력으로도 훨씬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쿠마 교수는 생산량이 16% 증가하는 동안 일자리는 오히려 29%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경제정책 전문가 마크 뮤로 선임연구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트럼프의 재이전 정책을 다각도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80년에는 100만 달러가치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25명 이 필요했던 반면 2016년에는 고작 6.5명으로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생산구조에서 과거만큼 제조업이 대규모의 고용을 창출하고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주도의 제조업 일자리 창출은 이미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공격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2008~2009년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기업들을 회생시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고용을 만들어 내려고 애썼던 오바마 집권 1기의 결과, 제조업 고용은 50만 명이 늘었고 실업률도 낮아졌다. 문제는 이러한 회복 이후로 현재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몇 년간 일정 수준에서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구직 활동을 할 만한 ‘좋은’ 일자리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는 방증이며, 따라서 추가적인 고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다는 의미라고 브루킹스 노동정책 전문가인 게리 버틀리스 박사는 진단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의 재이전 정책이 기술혁신과 생산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거슬러 단순히 일자리 유출 방지에만 치중할 경우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오히려 더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있다. 기술혁신 전문가인 스콧 앤디스 브루킹스 선임연구원은 영국·호주·독일·스웨덴의 사례연구를 통해 기계화와 자동화에 대규모로 투자했던 국가들에서 오히려 제조업 일자리 감소 폭이 작은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음을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재이전이 대대적으로 성사된다고 해도 ‘돌아오는’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은 예전 일자리에서 쓰이던 기술과 전혀 다를 것이고 때문에 실직자들이 곧바로 구직할 수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기술이 없는 저숙련, 조교육 노동자 집단이 자동화로 인한 실업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으며 재이전만으로 이들이 과거와 같은 직업이나 생활수준을 회복하기란 난망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결론이다. 쿠마 교수는 이러한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해 제조업의 저숙련·중숙련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을 하게 되고 재취업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임금인 서비스업으로 유입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재이전이라는 개념 자체는 타당하고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기술혁신에 따른 국제무역과 생산구조의 변화가 재이전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흥개도국들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비용 격차가 줄고 생산이 시장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생산지와 판매지 간 거리를 축소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걸림돌이 있다. 미국 내 제조업 환경이다. 지난 40여 년간 꾸준히 역외 이전(오프쇼어링)이 진행된 결과 재이전을 자발적으로 원하는 기업은 적지 않지만 막상 필요한 관련 업체와 인력을 국내에서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재이전 계획을 취소하거나 대폭 축소한 제너럴일렉트릭(GE)과 구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재이전 정책의 성공 여부는 미국이 국내에서 첨단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잘 복원하고 육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술 인력을 육성하고 제조업에 필요한 부품 및 자재의 생산 및 공급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생산시설을 국내로 되돌리는 노력보다도 돌아온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정책이 훨씬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결국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제조업의 부흥은 정부가 강제로 기업을 국내에 주저앉히고 단기적으로 돈을 뿌려 유인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기반을 파탄 내는 지름길이다. 카우시크 바수(코넬대 경제학 교수) 전 세계은행 부총재 역시 제조업 일자리는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대가는 노동집약적인 개발도상국으로의 전락이라고 경고한다. 오히려 첨단 기술에 익숙한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제도의 보강, 그리고 생산 과정을 원활하게 돕는 기간시설의 정비 및 확충에 힘쓴다면 기업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대 소비처인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것이라는 것이 미국 주요 연구소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나지원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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