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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 잇단 비리 의혹, 극좌·극우·중도 혼돈의 난타전

중앙선데이 2017.04.16 00:50 527호 11면 지면보기
[글로벌 뉴스토리아] 좌우 구도 무너진 프랑스 대선
23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한 유권자가 유모차를 끌고 선거 벽보로 도배가 된 건물벽 앞을 지나고 있다. [파리 로이터=뉴스1]

23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한 유권자가 유모차를 끌고 선거 벽보로 도배가 된 건물벽 앞을 지나고 있다. [파리 로이터=뉴스1]

2017년 프랑스 대통령선거는 ‘탐욕스러운 기성 정치인이 내 삶을 지켜줄 수 없다’는 유권자 지독한 분노 속에 치러지고 있다. 정치적인 엘리트인 대선후보들과 관련한 각종 부정·비리 의혹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카리스마는커녕 존경받는 리더십도 제대로 찾기 쉽지 않다. 그 결과 전통의 좌우 정당은 무너지고 극좌와 극우, 그리고 중도가 두각을 나타내는 기묘한 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존경 받는 리더십 사라진 선거
마크롱·르펜 22% 멜랑숑 20%
‘도토리 키재기’ 초박빙 접전
결선 진출할 후보 여전히 안갯속

 
그 결과 오는 23일 치러지는 1차 투표가 막판까지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흐리다. 자신이 “대세”라고 주장하는 후보도 없다. 국민을 휘어잡는 ‘정치 거인’은 찾기 어렵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2주 뒤에 결선투표를 치른다. 5월 7일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할 후보는 고사하고 결선에 진출할 후보가 누군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르펜 결선 올라도 당선 가능성 크지 않아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14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 성향의 무소속 에마뉘엘 마크롱(40) 후보와 극우 마린 르펜(49) 국민전선(FN) 대표가 각각 22%의 지지율로 나란히 1위에 올랐다. 줄곧 1위를 지켰던 르펜 후보를 마크롱이 따라잡은 형세다. 극좌인 장뤼크 멜랑숑(66) 좌파당 대표가 20%, 우파 공화당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63) 전 총리는 19%의 지지율로 3, 4위를 각각 차지했다. 1, 2위가 동률이고 1위와 3위가 2%포인트 차, 1위와 4위도 3%포인트 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초박빙에 예측불허의 상황이다. 선두 후보 4명 모두가 결선투표 진출을 노릴 수 있다. 독특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르펜 후보는 결선에 오른다고 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두터운 좌파와 우파 지지층 유권자들의 허리를 형성하고 이들 모두가 극단주의를 배척하는 프랑스 특유의 정치 지형도에서 비롯한다. 좌·우파는 서로 대립하지만 극단주의를 배척하기 위해선 서로 손을 잡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로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1차 투표에서 우파의 자크 시라크가 19.88%로 1위, 극우파 장마리 르펜이 16.86%로 2위를 차지했다. 좌파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은 16.18%의 득표율로 3위에 그치면서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결선투표는 의외로 싱거웠다. 득표율에서 시라크가 82.21%를 기록했지만 르펜은 17.79%에 그쳤다. 좌파가 극단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우파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다. 극우 르펜의 득표율은 1차와 결선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득표 확장성이 1%포인트도 되지 않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이러한 결선투표가 있기에 올해에도 극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를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는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월 9일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오피니언웨이와 레제코·라디오클라시크 공동조사 결과를 보면 1차 투표 지지도는 르펜이 24%, 마크롱은 21%, 피용은 20%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대로 결선에서 르펜과 마크롱이 맞붙을 경우 마크롱이 65%를 획득해 35%에 그친 르펜을 가볍게 누를 것으로 예상됐다는 사실이다. 마크롱은 44%포인트를 추가로 얻고 르펜은 11%포인트를 더 득표하는 수준이다. 다만 르펜 후보는 자신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여준 것보다는 확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60년 정치 지배해온 좌우정당 동반 몰락  
2017 프랑스 대선의 특징은 전통적인 양당제의 붕괴다. 주류 정당이 좌우 할 것 없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프랑스에선 1958년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하는 제5공화국 헌법을 채택한 이래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 가며 집권해 왔다. 우파 샤를 드골(1958·1965), 좌파 프랑수아 미테랑(1981·1988), 우파 자크 시라크(1995·2002)는 재선에 성공해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좌우로 이뤄진 튼튼한 정치적 허리는 정계를 치열한 정책 경쟁으로 이끌고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모으는 촉매 역할을 해왔다. 좌우의 경쟁은 정치와 사회의 건전성을 담보하는 ‘정치적 보증보험’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번 대선에선 보기 어렵게 됐다. 우선 집권 사회당은 정치적으로 거의 ‘폐족’ 위기다. 현역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인기 하락으로 재출마를 포기했다. 제5공화국 현역 대통령으로선 처음이다. 2012년 대선에서 1차 28.6%로 1위, 결선 51.64%로 당선한 올랑드는 최근 여론조사에선 5% 안팎의 민망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초라한 경제 성적표와 분노를 유발하는 청년실업률에다 사회복지 개혁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몰아갔다.
 
2012년 당시 현역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해 1차 27.18%로 2위, 결선 48.36%로 석패했던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아예 당내 경선에서 초반 탈락했다. 지난 대선에 나왔던 인물 중 이번 대선에서도 건재한 사람은 극우 르펜과 극좌 멜랑숑뿐이다. 르펜은 당시 대선에서 18.90%로 3위에, 멜랑숑은 11.10%로 4위에 각각 올랐다. 집권 사회당은 브누아 아몽(50) 전 교육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내세웠지만 5위 이하의 낮은 지지율로 결선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전임 대통령 사르코지를 누른 우파 공화당의 피용 전 총리도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유력 후보군의 말석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좌파와 우파의 간판 정당이 한꺼번에 몰락한 것은 프랑스 초유의 일이다.
 
그 자리를 채우는 인물은 그야말로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미니멀리즘’ 정치인이다. 카리스마 넘치던 과거의 정치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유력 후보인 마크롱은 ‘젊은 중도’로 요약할 수 있다. 올랑드의 사회당 정권에서 경제장관을 지냈지만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고 선언하며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디지털 정치플랫폼인 ‘전진’을 세웠다. 좌우를 망라한 기성 정치인 모두에게 반감을 품은 유권자의 정서를 파고들었다는 평이다. 올랑드 대통령의 대통령실 부실장을 지내면서 ‘상위 1% 부자들에게 75%의 높은 세금을 물리겠다’는 공약을 철회시키고 기업이 고용을 늘리면 세금을 줄여 주는 ‘책임 협약’을 이끌어냈다. 장관 재직 시절 프랑스에서 사회적 논란을 불렀던 파리 샹젤리제 등 관광지구 상가의 일요일과 심야 영업 허용, 사회당의 간판 정책인 주 35시간 근무제 개정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합리적 좌파, 또는 좌파 속의 우파로 평가받는다. 올 1월까지 르펜과 피용에 이어 3위에 머물렀지만 피용이 가족이 연루된 공금 횡령 의혹에 휩싸이면서 1월 말부터 2위에 올랐다. 하지만 자신도 3월 중순 장관 재직 시절 산하 기관의 특혜 계약과 관련해 검찰의 예비조사를 받았다.  
 
 
부패·무능 기성정당에 실망한 유권자 반란  
마크롱은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기성 정치에 실망한 젊은 층의 표를 모으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 자신이 엘리트 출신이라는 모순이 있다. 파리정치대학과 프랑스 정·재계 엘리트 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기 때문이다. 15세 때 만난 25세 연상의 선생님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18세부터 동거하다 결혼한 ‘프랑스식 사랑’의 사연은 그나마 대중의 공감을 사는 ‘인간적인’ 부분이다.
 
‘프랑스판 트럼프’로도 불리는 극우파 르펜은 난민 입국 거부는 물론 이민자 추방까지 주장한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프렉시트(프랑스+엑시트)를 넘어 아예 EU 해체까지 주장한다. 지난 9일 르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 프랑스 비시 정권의 경찰이 1만3000여 명의 유대인을 검거해 나치에 인도, 죽음의 수용소로 가게 했던 벨디브 사건에 대해 프랑스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프랑스에선 우파인 시라크와 좌파인 올랑드가 모두 대통령 재임 중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해 역사적 과오엔 좌우가 없음을 보여줬다. 르펜은 역사의 과오를 부정하고 이를 교육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프랑스판 아베’에 해당한다. 르펜도 유럽의회 급여 비리에 연루됐지만 유럽의회 의원의 특권으로 수사를 면제받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독특한 것은 투표일이 가까워 올수록 극좌파인 멜랑숑의 지지율이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간지 르몽드에 따르면 멜랑숑은 유권자들로부터 1, 2차 TV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좌우 정부가 오랫동안 진행해 온 노동개혁 정책을 친기업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되돌리겠다고 공약한 것이 노동자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아울러 부유층의 소득 중 일정 부분 이상은 100% 세금을 물리겠다는 극단적인 공약까지 내놨다. 세상을 기업과 임금노동자, 부자와 서민으로 나누면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하겠다는 그의 외침은 유권자의 표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멜랑숑은 오는 20일 열리는 3차 TV토론에서 선전해 결선행 티켓을 거머쥐겠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멜랑숑에 대한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는 반기업 정치인일 뿐 아니라 반EU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극우파인 르펜처럼 프랑스가 EU에서 탈퇴하는 프렉시트를 부르짖지는 않지만 EU의 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개혁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그는 다른 좌파와 마찬가지로 무슬림 이민자에 대해선 연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대선은 기성 정당의 신뢰 붕괴와 유권자의 분노로 요약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정치 무력증이다. 이러한 도도한 탁류는 앞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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