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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화전을 부치다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29면 지면보기
아침에 일어나 쾌청한 하늘을 본 아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진달래꽃 좀 뜯어다 화전이나 부칠까요. 오, 화전! 좋지요. 나는 여기저기 청탁받은 글 쓸 일이 밀려 있었지만, 아내의 유쾌한 꾐에 빠져보기로 했다.  
 
간단히 아침밥을 먹고 뒷산으로 올라가니, 활엽수 나무 그늘에 진달래꽃들이 만개해 오련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화전을 부칠 만큼 진달래꽃을 뜯고 나서, 보랏빛 제비꽃도 조금, 노란 꽃다지 꽃도 조금 뜯었다.
 
산길을 내려오며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엄청 사치를 누리는 거죠?” 내가 대꾸했다. “암, 사치지. 우리가 시골에 살지 않았으면 어찌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겠소!”  
 
집으로 돌아와 화전을 부쳐 먹고 오후에는 모처럼 뒹굴뒹굴 낮잠도 자고 나서 장작을 패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니 하루가 다 저물었다.
 
문득 얼마 전 읽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일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 노예 해방을 위해 혼신을 다해 싸웠지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알다시피 그는 문명을 떠나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을 은둔자로 사는 실험을 했다. 그는 어느 날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가문비나무와 호두나무 사이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새들의 노래와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둑어둑 날이 저물자 그는 노트를 펼치고 이런 일기를 남긴다.  
 
“아침인가 했는데, 보라, 벌써 저녁이 되었네. 기록해 둘 만한 거라곤 하나도 한 게 없네.”
 
우리는 어떤가. 뭔가 기록해 둘 만한 일을 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기록할 만한 게 없는 이런 무위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로우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럴 때면 나는 밤중에 옥수수가 자라듯 쑥쑥 성장했다.”
 
그런데 왜 오늘 우리의 삶은 성장하지 못하고 자꾸 천박해질까. 편리와 속도와 효율을 우리 삶의 척도로 앞세우기 때문이 아닐까.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에 영합하며 살다보면 왜소해지고 천박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마이스터 엑카르트 같은 수도승의 충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것이란 뭘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수말스런 표정으로 아내가 말했다. “내일 화전 한 번 더 부칠까요?” “내일 또?” “네, 당신 친구들에게도 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요,”  
 
“고맙소. 진달래꽃은 내가 뜯어오겠소. 분주하게만 살던 내 친구 녀석들 무척 좋아할 거야.”  
 
그래, 우리가 누리는 한가로움을 벗들과도 나눌 수 있다니 정말 기쁘다.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 한가로움을 말이야! 
 
고진하

고진하

 
고진하 목사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김달진 문학상과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주 한살림 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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