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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재수생’ 문재인, 권력의지도 여유도 함께 늘었다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4면 지면보기
[대선 D-23]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뼛속까지 서민인 건 저랑 (홍 후보나) 같은데, 왜 제가 주적(主敵)인가?

애처가지만 꽃 이름 놓곤 종종 다퉈
어눌한 말투가 공격의 빌미 되기도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듣는 걸 잘해”
비선 논란 차단용 ‘매머드급 선대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아, 친북 좌파이기 때문에.

▶문 후보=하하하.

 
지난 13일 대선 TV토론의 한 장면이다. ‘종북 좌파’ ‘친북 좌파’ 등 이른바 ‘빨갱이 프레임’은 강경 보수 유권자들이 “문재인 대통령만은 막아야 한다”는 주된 논리다. 하지만 문 후보는 천연덕스럽게 미소 띤 얼굴로 “왜 제가 주적이냐”고 되묻고는 친북 좌파라는 지적엔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대선 재수생’인 문 후보가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전사 출신 강철 체력 “밥이 보약”
문 후보가 5년 전과 가장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한층 강해진 권력의지와 여론조사상 지지도 1위 후보로서의 여유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에 안주한다는 의미의 여유라기보다 당선 이후에도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여유란 설명이다. 문 후보보다 100만 표를 더 얻어 당선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상 첫 ‘탄핵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등 떠밀리듯 출마했던 2012년 때와는 대선에 임하는 자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건 특전사 출신다운 강철 체력이다. 조기 대선인 만큼 더욱 빡빡해진 유세 일정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영양제 등 특별히 챙겨드시는 건 없다”며 “밥이 보약이란 생각으로 식사를 제때 하는 데 신경 쓰는 정도”라고 전했다. 연설 때문에 목이 아픈 것보다 문 후보를 더 곤혹스럽게 하는 건 유세 현장에서 종종 요구되는 춤과 노래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지독한 몸치에 음치”이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데다 변호사였는데 왜 말을 잘 못하느냐”는 핀잔도 종종 듣는다. 문 후보 스스로도 “저는 말을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말을 잘하는 변호사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엔 단 한 번도 손들고 대답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 앞에 서면 긴장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곤 한다. 문 후보는 “대신 저는 남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는 걸 잘했다. 말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굳이 많은 말로 변호하지 않아도, 화려한 말솜씨로 좌중을 사로잡지 않아도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대선후보들에겐 공격의 주된 빌미가 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지난 6일 문 후보 측이 양자 끝장토론 요구를 ‘기선 제압용 전략’으로 규정한 데 대해 “이제 와서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하는 것은 ‘준비된 후보’라는 주장이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렵기 때문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15일 “스탠딩 토론이든, 끝장토론이든 얼마든지 자신 있다”며 정면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아내 김정숙(63)씨는 문 후보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기본적인 내조는 물론 취약 지역인 호남 민심 잡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추석 이후 매주 호남을 찾았다. 대부분 동네 목욕탕과 경로당 등 서민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 올해 설 이후엔 1박2일 일정으로 호남 지역의 외딴섬 10여 곳을 돌았다. “공중목욕탕에서 대화를 나눴던 아주머니가 나중에 알고 보니 문 후보 부인이더라”는 주민들의 증언이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캠프 관계자는 “실제로 호남에 가면 문 후보 부인 때문에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얘길 종종 듣곤 한다”고 전했다.
 
문 후보는 소문난 애처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주말에는 아내와 같이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소박한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오래 연애를 했다. 김씨는 문 후보가 군에 입대했을 땐 ‘고무신’ 역할을,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가 수감됐을 땐 옥바라지를 했다. 문 후보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도 묵묵히 곁을 지켰다. 문 후보가 그런 아내와 유일하게 말다툼을 할 때가 있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야생화 학명을 두고 의견이 엇갈릴 때 심각하게 토론을 하는데 종종 분위기가 싸늘해지기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문 후보는 동물 애호가이기도 하다. 개와 고양이를 두 마리씩 기르고 있다. 쉬는 날은 풍산개 ‘마루’와 산책하는 게 취미다. 그래서인지 당 경선 과정에서 접수한 국민정책제안 중 반려동물 정책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실제로 15일 대선후보 등록 직후 반려동물 정책을 발표했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될수록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가 있다. 비슷비슷한 공약들,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발언들, 도를 넘은 네거티브 공방 속에서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다. 그 인생의 궤적을 따라 생겨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일지 모른다. 19대 대선이 본격화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 후보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
 
문 후보의 경남고 후배인 배경조(61)씨는 1990년대 초 당시 변호사였던 문 후보를 태우고 운전하다 충돌 사고가 난 경험이 있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왔기 때문에 100% 상대방 과실이었다. 배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속으로 그날 ‘땡 잡았다’고 생각했다. 내 차에 변호사까지 탔고 그 변호사도 ‘아이고 목이야’ 하고 나왔으니 그 친구는 오늘 제대로 걸린 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배씨의 예상과 달리 상대방의 편을 들어줬다고 한다. 초보 운전이라 실수를 한 거였는데 집안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지 않느냐면서다. 배씨는 “이후 새 차를 뽑느라 당시 돈으로 700만~800만원이나 손해를 봤다”며 “이렇듯 내가 아는 문 후보는 참으로 여리고 착하면서도 한번 이루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인들이 본 문재인 “지나칠 정도로 청렴”
경남고 동기이자 작가 겸 연극 연출가인 이윤택(65)씨는 문 후보의 청렴성 하나만큼은 보증한다고 말한다. 이씨는 86년 말~87년 초 문 후보에게 연극 표를 팔려고 세 번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한 장당 1만원 정도였던 표 100장을 부탁했다. 이씨는 “동기들 중 돈이 있는 사람은 그냥 100만원을 줬고 어떤 친구는 한 장도 안 팔아줬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64만원을 이씨에게 입금하고 36장의 표를 돌려줬다. 그 표들은 문 후보의 손때가 묻어 새까맣게 돼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직접 팔다가 미처 팔지 못한 표만 할 수 없이 돌려준 거였다”며 “문 후보는 청렴면에서는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대 총선 당시 박주민(서울 은평갑) 의원 지지 유세를 갔을 때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생긴 일이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려던 한 어르신의 숟가락이 지나가던 문 후보의 옷자락에 쓸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 후보는 어르신에게 사과하고 주변에 새 숟가락을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다. 박 의원이 급한 마음에 다른 곳으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문 후보는 “숟가락이 아직 안 왔는데 왜 가자고 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새 숟가락이 오자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에야 그 자리를 떴다. 박 의원은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게 어떤 건지 많이 깨달았다. 그날 이후 문 후보를 돕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양정철 등 최측근, 직함 달고 수면 위로
문 후보는 1000여 명의 교수와 전직 고위 공무원, 전·현직 의원 등이 총집결한 ‘매머드급 선대위’를 구성했다. 4선에 인천시장 출신인 송영길 의원이 경선 캠프에 이어 본선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총괄본부장은 강기정 전 의원이다. 두 사람 모두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연세대와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또 문 후보와 가까운 김태년 의원과 비문재인계인 민병두 의원이 공동 특보단장을 맡고 있다.
 
‘비선 실세’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최측근들도 공식 직함을 주면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문 후보 스스로 인정한 전략 참모인 노영민 전 의원은 조직 파트를 이끌고 있다. 문 후보의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 핵심 참모 중 전 의원은 조직특보를, 양 전 비서관은 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특히 양 전 비서관은 예나 지금이나 문 후보의 ‘복심’으로 꼽힌다. 비서실장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도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을 영입해 측근만 챙긴다는 논란을 피해갔다.
 
‘탕평 인사’ 원칙도 고려됐다. 논란 끝에 컴퓨터의 CPU와 같은 캠프 종합상황본부장에 김민석 전 의원을 앉힌 게 대표적이다. 김 전 의원은 한때 민주당을 탈당했던 비노·비문 진영 인사다. 대신 그 밑에는 측근들을 배치했다. 최재성 전 의원과 박범계 의원이 각각 상황1실장과 2실장을 맡았다.
 
소통 창구를 관장하는 공보단장으로는 윤관석 의원과 박광온 의원이 임명됐다. 그 밑에 유은혜·홍익표 수석대변인과 13명의 대변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김경수 대변인은 오랫동안 문 후보의 입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문 후보를 밀착 수행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고 있다.


문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은 주류 경제학자인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끌고 있다. 문 후보는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극복하고자 조 교수를 국민성장 소장으로 영입했다. 부소장은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다. 캠프 내 외교안보분과의 주축이었던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은 안보상황단장을 맡았다. 연구위원장인 김기정 연세대 행정대학원장과 경제를 맡은 김현철 서울대 교수 등도 핵심 인물로 꼽힌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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