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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고립’서 ‘관여’로 전환, 긴장 해소할 기회 삼아야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3면 지면보기
북 태양절 이후, 위기의 한반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플로리다 회담은 향후 4년간 미·중 관계는 물론 세계 질서를 설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감행된 미국의 시리아 폭격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는 듯했다. 북한 문제를 무게 있게 다룰 것이라던 우리의 기대도 흐지부지됐다. 역설적이지만 이 폭격은 앞으로 세계가 움직일 방향을 가늠케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고립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국제주의로 방향을 트는 신호가 된 것이다.

트럼프의 시리아 폭격 승인은
‘동맹과 문제 해결’의 역설적 신호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지하면
사드 배치 유보의 명분도 생겨

중국에 사드 해결 나서라 압박하고
미국엔 제재 완화 카드 설득해야

 
붉은 페인트통 안에 몇 개의 붉은 선을 긋는 것만큼 복잡하다는 중동에선 군사 개입을 시작했고,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무역 개선 ‘100일 계획’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휘나 몸짓과는 별도로 국제 문제에 적극 관여하는 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동으로 유턴하려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협력을 더 필요로 한다. “나토는 쓸모없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동맹 없이 미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중국이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나서겠다”고 했는데, 이는 중국의 협력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판단의 다른 표현이다. 시 주석의 면전에서 시리아를 폭격한다고 통보한 것은 마치 북한을 겨냥한 살계경후(殺鷄警: 닭의 목을 쳐서 말 안 듣는 원숭이를 겁주는 것)의 경고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혼자 해결할 수 있었다면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시절 그의 전임자들이 벌써 했을 것이다. 시리아 폭격에 이어 남중국해에 있던 칼빈슨 항모전단을 한반도 해역으로 항진시킨 것을 두고 험악한 위협들이 머리 위로 오가고 있다. 항모 배치는 대북 군사행동의 준비 단계라기보다는 미국이 중동과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동시에 관리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북 핵실험 징후, 트럼프·시진핑 긴급통화
플로리다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송유관을 막아서라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시 주석은 최선을 다할 테니 미국도 북한과 대화나 군사훈련 조정 같은 ‘당근’을 써 보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는 협박에 굴복해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며 우선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를 선언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고, 시진핑은 미국도 상응하는 협상카드를 준비하기를 기대한다며 대화를 마쳤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중국은 대북 압박을 가중시키기로 합의했다는 가설은 성립되기 어렵다. 북한 비핵화는 공동 목표이지 거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담 후 북한이 15일의 김일성 생일(태양절)이나 25일 건군절에 즈음해 핵이나 장거리미사일을 실험할 것이라는 징후가 포착됐다. 북한이 실험을 강행하면 트럼프는 난처해진다. 전면전을 준비할 때나 가능한 선제타격을 할 수도 없고, 바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긴급 전화통화가 이뤄진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막지 않으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 겸 ‘부탁’을 했을 것이다. 중동에서는 시리아 문제로 러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 문제로 중국과 각각 충돌하는 상황을 미국은 원치 않는다.
 
중국은 적절한 경로로 북한에 플로리다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말도록 종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핵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됐거나 시리아처럼 당하고 있을 것이라 항변하고,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고 적대정책을 포기할 것을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중·북 사이의 쳇바퀴는 20여 년째 계속 돌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또는 핵·미사일의 실전 배치나 사용 임박이라는 몇 가지 단계 사이 어디쯤에 물리적 수단으로 넘어가는 레드라인을 긋고자 할 것이다. 4·12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레드라인의 윤곽을 제시하는 동시에 대북 협상의 문틈도 보여 줬을 가능성이 있다. 소위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개념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하려면 중국도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일 정도의 명분이 서야 한다. 
북한은 그런 명분을 주지 않는 선에서 모험을 계속하면서 유리한 협상 기회도 노린다. 군사행동의 명분이 확보된다고 해도 북한이 감히 저항할 엄두를 못 낼 만큼의 막강한 화력을 현장에 배치한 후 개시할 수 있다. 미국의 오랜 군사독트린이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때 미국은 미루나무 한 그루를 자르기 위해 전쟁 준비상태인 데프콘2를 발동시키고 미드웨이 항모전단과 B-52 핵 폭격기 3대를 배치했다. 지금 북한의 대남 반격 능력이나 중국의 위상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이런 이유로 선제타격이란 ‘고위험 군사행동’보다는 마른 수건을 짜내듯 제재 수위를 올리고 그때그때 군사력을 시위하는 ‘저비용 저위험 조치’에 머물러 왔다.
 
북한은 어떤가. 아직 폐장입유(廢長立幼:왕조국가에서 장자가 아닌 동생이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김정남 독살사건이 단적인 예다. 그런 만큼 태양절이나 건군절을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를 위한 상징적 계기로 활용하려 한다. 어제 태양절 열병식에서는 핵·경제 병진정책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신형 미사일 등 군사장비를 공개하고 평양의 번듯하게 보이는 외관을 드러내고자 했다. ‘외세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기개’를 내외에 보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북한의 도발→대북제재→북한의 반발→긴장 고조의 사이클은 이어지고 한반도 위기는 일상화되고 있다.
 
기대해 볼 수 있는 현실적 시나리오는 무엇일까. 우선 핵·미사일 실험부터 중지하라는 미국의 요구와 군사훈련과 경제제재부터 먼저 중단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중국이 엮어 내는 것이다. 아마 중국은 미·북 또는 중국을 포함한 3자회동을 성사시키려 할 것이다. 북한은 5월 9일 이후 들어설 새 정부의 대북 성향과 관계없이 한국을 배제시키려 할 것이다. 과거 이런 경우 미국과 중국은 무력충돌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한국이 ‘수모’를 감수해 줄 것을 설득했다. 중국의 주도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서 한국도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여기까지 가려면 당장 남·북·미·중을 얽어매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북 추가 도발 땐 물리적 수단 동원 태세를
미국은 만약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밀린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한다. 반면 중국은 사드 배치를 용인하면 미국의 근접 감시를 용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면 사드 배치 유보의 명분도 생긴다. 우리가 중국을 사드 갈등의 해결 주체로 나서도록 압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의 대북 설득을 위해 제재 완화와 군사훈련 조정 같은 카드를 제공하자고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70년에 걸쳐 성숙돼 온 한·미 동맹은 이제 한반도 긴장의 고착이 아니라 그 해소를 위해 본격 가동돼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이런 고단위 외교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지 못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하면 사드 배치는 물론이고 더 강력한 물리적 수단도 동원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미·북 수교와 북한의 핵 포기라는 외교의 목적지로 가는 길 자체가 한반도 평화의 과정이다. 한·미가 중국을 설득해 이 과정에 들어섰는데도 북한이 기어이 이탈하면 그런 북한 정권과 한반도에서 공존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외교가 실패로 끝나는 곳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에도 준비해야 고단위 외교도 설 자리가 생긴다.
 
미국은 시리아 폭격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 현존 최대 파괴력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다. 지상군이 개입하지 않는 작전들로 이를 한반도에 대입시키기는 어렵다. 한국은 이런 전황들을 한반도에 연결시켜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트럼프의 정책이 고립에서 관여로 전환되는 기미를 건설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대북정책은 전 정부 정책의 뒤집기를 반복해 왔다. 마치 ‘지우개 정부’가 바통 터치해 온 모습이었다. 새로 들어설 정부도 그런 유혹에 빠질 소지가 크다. 새 정부는 신장개업 회사의 축하 화분 같은 정책을 진열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5년 후 떠나고 나면 폐기 처분된다. 5년 단위로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대증요법식 정책으론 북핵의 해결과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게 명확해졌다. 반짝 피는 ‘화분의 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과실을 맺는 나무’를 심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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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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