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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2017년 한국에 주는 메시지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2면 지면보기
사설
오늘은 부활절이다. 부활은 ‘신국(神國)’(신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과 더불어 가톨릭·개신교회·정교회·성공회 등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지만, 기독교인들조차 믿기 힘든 게 부활이다. 오늘날 상당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믿더라도 기적·부활 같은 비과학적인 것들은 빼고 믿자’고 주장한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일인 부활절을 앞두고 달걀 모양의 경기도 양평 청란교회를 찾은 신도들이 교회와 교회 옆에 만들어진 ‘달걀 트리’를 둘러보고 있다. 부활절에는 새 생명을 상징하는 달걀을 삶아 예쁘게 그림을 그리고 포장해 서로 나누는 풍습이 있다. 김경빈 기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일인 부활절을 앞두고 달걀 모양의 경기도 양평 청란교회를 찾은 신도들이 교회와 교회 옆에 만들어진 ‘달걀 트리’를 둘러보고 있다. 부활절에는 새 생명을 상징하는 달걀을 삶아 예쁘게 그림을 그리고 포장해 서로 나누는 풍습이 있다. 김경빈 기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부활은 못 믿겠다’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바울이 굳게 믿은 예수의 부활은, “사람은 모두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가장 유명한 삼단논법 사례를 무력화한다. 예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다음처럼 새로운 논법을 제시한다. “예수는 부활했다. 예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
 
세속·과학의 관점에서 황당한 주장이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예수 부활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전개할 수 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신이 주권을 지닌 신국(神國)’을 간절히 소망했다. 예수에게서 그들은 거대한 비전을 보았다. 그들에게 예수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복원할 ‘제2의 다윗’이었다. 예수가 죽자 그들은 절망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망에서 ‘제자들 누구누구 앞에 나타나셨다더라’는 풍문이 생겨났을지 모른다. 결국 부활은 사실이 됐다.”
 
절망에서 싹튼 희망을 거대한 운동으로 전환한 것은 바울이었다. 바울은 예수가 ‘제2의 다윗’이 아니라 ‘제2의 아담’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아담 때문에 영생을 상실했고 예수 덕분에 영생을 회복하게 됐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수를 믿기 이전에 부활을 먼저 믿은 바리사이파 사람이었다. 바울에게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었다.
 
바울을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은 근·현대 서구 문명의 뿌리이자 배경이 된 그리스도교를 정립했다. 기독교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해 왔지만, ‘예수의 부활’이라는 개념 때문에 기독교는 불교·유교 같은 ‘합리적인 종교’와 달리 ‘믿기 힘든 것을 믿어야 하는 종교’다. “나는 그것이 터무니없기 때문에 믿는다”는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55년께~240년께)의 말은 기독교 신앙의 비합리적 일면을 함축한다.
 
겉보기엔 터무니없는 비전이 세상을 바꾼다.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잘못된 것’이라는 기독교적 인식을 현대 과학이 바통을 이어받아 영생을 추구하고 있다. ‘신국’에서는 가난이나 독재가 있을 수 없다. 서구 세속 사상은 가난과 독재를 퇴치하는 ‘민주적 자본주의’를 낳았다.
 
2017년 대한민국에 ‘부활’만큼 절실한 것도 없다. 부활에는 ‘쇠퇴한 것이 다시 성하게 됨’의 뜻도 있다. 절망과 포기, 안타까운 사연이 하루라도 매체에 나오지 않는 날이 있을까. 1970년대 우리나라가 추구한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는 터무니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한 세대에 달성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날 확률’을 깨고 세 번째 여야 간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다.
 
주위에서 “이게 나라냐” “헬조선”이라는 탄식이 들린다. 우리는 예수 시대 유대인들과 같은 심정이다. 그때 유대인들은 ‘제2의 다윗’이건 ‘제2의 아담’이건 누군가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주기를 희구했다.  
 
대선일인 5월 9일은 우리 후손들이 우리나라가 새로운 나라가 된 것을 축하하는 기념일이 돼야 한다. 진영에 의한 편가르기, 정경유착, 부패로 얼룩진 비정상의 나라를 청산해야 한다. 법의 지배가 확립되는 정의로운 나라로 부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게 기본이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이게 나라다는 신화로 다시 태어나는 부활절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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