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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의미 두 토끼 잡은 唱과 劇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30면 지면보기
‘창극’이라 하면 판소리 다섯 바탕을 그대로 재현하는 따분한 공연이라고 여겼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이다. 그런데 이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국립창극단 신작이 나온다고 하면 왠만한 뮤지컬 못지않게 이목이 쏠린다. 소재와 표현의 경계를 과감히 없앤 창극이 연출적 역량을 맘껏 펼칠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자, 관객들은 오래된 소재와 장르의 참신한 재해석에서 색다른 묘미를 찾게 된 것이다.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씨’
기간: 4월 5~16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문의: 02-2280-4114

‘흥보씨’도 개막 전부터 화제였다. 무려 16년 만에 선보이는 뉴 버전의 창극 흥보가인데다, ‘원전 비틀기의 고수’ 고선웅 연출과 ‘창작 판소리의 원조’ 이자람 작창의 첫 만남, 젊은 남창들의 대거 기용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과연 재미있을까. 인과응보·권선징악라는 동화적 교훈을 얼마나 비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흥보씨’는 재미와 의미를 다 잡았다. 창(唱)과 극(劇) 양쪽에서다. 먼저 극(劇)부터. 고선웅 연출은 ‘비틀기 유단자’답게 지루하고 늘어지는 흥보가의 서사를 B급 언어유희와 디테일한 유머코드가 쉴새 없이 휘몰아치는 깨알재미로 도배했다. ‘혼외자 놀보’와 ‘업둥이 흥보’라는 출생의 비밀이 시작부터 흥미를 돋구고, 춤꾼 ‘강남제비’의 ‘가운데 다리’ 부상이란 설정도 기막히다. 키치적 분장의 외계인이 ‘우주의 도움’을 외치는 것도 풍자와 해학의 센스다. 순진무구한 동화를 삼류 치정극의 한 장면으로 반전시켜 버리는 이런 장치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해묵은 교훈을 신선한 색깔로 살려내는 효과를 봤다.  
 
그런데 이렇게 도처에 배치된 깨알재미가 단순히 말초적 웃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로 수렴해 가기 위한 노정이란 게 핵심이다. 바로 ‘비워야 울린다’는 깨달음이다. 제비 다리 하나 치료해 주고 부자가 되는 게 영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한 고 연출은 ‘우주의 도움’에 의존하는 대신 흥보를 스스로 수양하게 했고, 그 결과 흥보는 흔한 물질이 아니라 귀한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의 노선은 기독교와 불교, 우주교까지 아우른 ‘유니버설 종교’다. 흥보가 장자권을 양보하거나 각양각색 거지들을 돌본다는 기독교적 설정에서 난데없이 외계인의 계시를 받아 싯다르타처럼 보리수나무 아래 수양을 하더니, 결국 ‘내게 강같은 평화’를 얻어 놀보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골로가는 언덕’ 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결국 ‘손해보고 살자’는 권유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와 상관 없이 현대인들에게 잊혀진 가치다.
 
이런 극적인 재미와 의미를 든든히 받쳐주는 게 창(唱)을 제대로 살린 음악이다. 이자람 음악감독은 저 유명한 눈대목들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압축하고 재편성해 판소리의 음악적 매력 자체를 세련되게 디스플레이했다. 판소리 원형을 존중해 작창한 곡들은 눈대목들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고, 국악기 중심에 건반과 타악 정도 더해진 반주도 전통적인 듯 현대적인 사운드로 무대를 감쌌다. 많이 듣던 눈대목들이 살짝 리듬 변화를 주자 랩스타일로 자연스레 이어질 땐 판소리가 얼마나 현대적인 예술인지 무릎을 치게 됐다.  
 
모든 출연진이 완창하듯 부채를 들자 소리의 질도 달라졌다. 흥보·놀보는 물론 제비·원님·외계인·놀보처 등 씬스틸러들도 ‘소리꾼의 자존심’인 부채를 쥐고 저마다 개성을 어필했고, 앙상블들까지 적당히 한 소절 때우는 게 아니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소리 배틀 구도, 군무와 어우러진 참신한 판소리 합창도 눈과 귀를 붙들었다.  
 
텅 빈 무대에서 부채는 시각적으로도 변화무쌍한 맹활약을 펼쳤다. 장자권을 넘기는 계약서로 시작해 2개로 원을 만들어 북춤을 추기도 하고, 박 타는 톱이 됐다가 형장의 채찍도 됐다. 시시때때로 천장에서 내려와 각종 영상을 투사해 장면 전환을 도맡은 반원형 스크린도 커다랗게 펼쳐진 부채 모양이었다. 부채 하나로 혼자서 버라이어티한 서사시를 펼쳐내는 판소리에 대한 커다란 경의의 표현이 아니었을지.
 
국립창극단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80대 소리꾼 윤충일 옹의 특별출연도 의미심장했다. 마치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듯 누구보다 우렁차게 소리를 하며 현란한 발재간까지 과시한 그의 각설이 타령은 초반 살짝 낯선 분위기를 방방 띄워준 일등공신이었다. 혁신을 내세우지만 오래된 것에 대한 존경도 잊지 않는 창극의 방향성을 되새기는 듯해 가슴 훈훈해졌다.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익숙한 음악으로 감싸는 또 다른 창극의 탄생에 객석에선 웃음과 추임새가 끊이지 않았다. 소리꾼도, 관객도 “한바탕 자알 놀았다”며 돌아 나오는 길이 조금도 허하지 않은 건 여느 뮤지컬 못지않게 귓전을 맴도는 ‘킬링 넘버’ 때문일 게다. “비워야 하리 텅텅텅~ 그때서야 울리리 텅텅텅~.”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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