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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커가 보여준 것은…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29면 지면보기
지난 4일 오후 11시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사람들 눈에 포착된 해외 스타의 이야기가 화제다. 생방송으로 진행한 홈쇼핑 방송에 미란다 커(34)가 나왔다. 레드카펫이 깔리고 쇼핑 호스트가 “이제 미란다 커님이 나오십니다”라고 외칠 때까지도 의심했다는 후기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나타났다. 까만 브래지어가 비치는 하얀색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고서다.
 

한국 홈쇼핑에 출연한 톱모델

미국 속옷 브랜드 원더브라의 GS 홈쇼핑 방송 현장이었다. 미란다 커는 원더브라의 공식 모델이다. 2박 3일로 속옷 홍보 관련 행사를 소화하러 방한한 참이었다. 그는 이날 홈쇼핑의 일일 쇼핑 호스트로서 80분 분량의 방송 중 20분가량 출연했다. “(신상 브래지어를) 나도 입고 있는데 편안하다”는 코멘트도 곁들였다. 그 결과 6000세트가 ‘완판’됐다. 10억 원어치다. GS 홈쇼핑측은 “미란다 커가 출연하기로 해서 목표치를 높게 잡아놨는데 그보다 20% 이상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다음날 반응이 재밌다.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이 왜 이 늦은 밤, 한국 홈쇼핑 방송에 나오는 거지?’ 눈을 의심했다는 후기가 다음날 SNS를 도배했다. 한 네티즌이 미란다 커의 방송 사진과 더불어 지금까지 내한했던 톱스타의 사진을 편집해 올린 글도 인기였다. ‘이거 합성 아니고 진짜인가요?’라며 한국의 아침방송에 출연한 리처드 기어, 남대문 시장에서 돼지머리 들고 있는 메탈리카 등의 사진을 잇따라 올렸다. 가짜 같은 진짜, 일상인데 상상 같은 모습에 파급력이 컸다.  
 
이런 분위기에 반색한 것은 홈쇼핑 회사다. 바이럴(입소문) 마케팅 효과 덕이다. 미란다 커의 출연에 젊은 층이 움직였다. 브래지어 소비층이 아니더라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소재가 됐다. 1995년 개국한 홈쇼핑 방송을 즐기던 당시의 30~40대 시청자들도 이제 50~60대가 됐다.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떨어지는 시청률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을 터다. GS홈쇼핑의 한 관계자는 “2014년도 원더브라 방송 때는 40대의 구매율이 높았는데 이번 방송 때는 30대가 많았다”며 “매출의 절반 가량이 모바일 주문으로 올린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에 홈쇼핑 관련 앱을 깐 젊은층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홈쇼핑 측은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접하는 젊은층을 공략할 수 있는 통로를 좀더 넓혔다는 데 의의를 뒀다.  
 
홈쇼핑 업계에서 놓친 게 아쉬웠던 방송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가수 루시드 폴의 7집 앨범 판매(2015년)였다. 가수 본인이 앨범 홍보를 위해 홈쇼핑 회사의 문을 나서서 두드렸다고 한다. 새 CD 앨범과 제주에서 직접 재배한 감귤 등을 묶어 한정판 1000세트를 준비했다. 판매량이 적고, 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첫 제안을 받은 업체에서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CJ 오쇼핑 채널에서 오전 2시에 심야 생방송을 했다. 타이틀은 ‘귤이 빛나는 밤에’였다. 주문 폭주로 9분 만에 다 팔렸다. 40분으로 예정된 방송이었다.  
 
가수로서는 앨범 홍보를 할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낸 고육지책이었고, 홈쇼핑 업체는 타깃층을 넓히기 위해 실험했고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방송은 온라인을 통해 계속 화제가 됐다. 가수는 앨범 홍보를, 홈쇼핑 업체는 젊은 층에 채널 홍보를 제대로 한 셈이다. 이번에 홈쇼핑에 출연한 미란다 커가 보여준 것은 그의 황금비율 몸매 관련 화제보다 컸다. 톱모델과 홈쇼핑, 예측 불가능했던 재미, 이를 동력으로 한 파급력, 젊은층의 움직임 등 온라인 생태계의 매커니즘이 또 한번 작동됐다. 이 생태계의 한 단면일 터다. 올드 미디어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GS홈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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