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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명상을 위해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27면 지면보기
스페인 출신 호르디 사발이 자신의 오케스트라 Le Concert Des Nations을 이끌고 작품 탄생지인 산타 쿠에보 성당에 가서 연주한 ‘일곱 말씀’. CD와 DVD로 발매됐다.

스페인 출신 호르디 사발이 자신의 오케스트라 Le Concert Des Nations을 이끌고 작품 탄생지인 산타 쿠에보 성당에 가서 연주한 ‘일곱 말씀’. CD와 DVD로 발매됐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의 사형도구였다. 서울의 밤하늘을 붉게 수놓는 십자가는 너무 흔하기도 해서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지도자는 우리에게 배우 커크 더글러스로 기억되는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한 로마공화국 정부는 포로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수도 로마에서 남쪽으로 뻗은 아피아 가도에 수많은 십자가를 세우고 노예들을 매달았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1번 국도를 형장으로 택한 것은 공포심으로 저항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였다.  
 

an die Musik :
하이든 ‘십자가 위 구세주의 마지막 일곱 말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기 전, 지중해 동쪽 유대에서 예수라는 사내가 십자가로 처형됐다. 유대는 제정으로 이행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로마총독 필라투스(빌라도)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유대교 기득권층이 강요한 일이었다. 이로써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되어 온 세상의 교회 꼭대기를 장식하게 되었다.  
 
참혹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산 사람의 손바닥과 발목에 대못을 박아 고정시킨 다음 십자가를 세운다. 대못만으로는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 팔목을 밧줄로 묶고 발 받침대도 붙여 준다.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못이 관통한 손과 발목의 통증이 다가 아니다. 탈진해서 몸이 아래로 늘어지면 내장이 찢어진다. 성미 급한 까마귀가 눈알을 파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목숨은 쉬 끊어지지 않는다.  
 
배우 출신 영화감독 멜 깁슨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쿼바디스’ ‘벤허’에도 예수가 등장하지만 상징적으로 드러내거나 뒷모습만 보여준다. 멜 깁슨은 예수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몇 시간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큰 희생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물론 아름다움도 지녀야 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그런 신념으로 제작됐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고증은 치밀하다. 낭창낭창한 나무 회초리로 예수의 벗은 몸을 힘껏 내리치며 키득거리는 로마 병사들의 이가 누렇다. 칫솔 치약을 모르던 고대인의 치아는 그랬다. 예수를 때리는 가죽채찍의 갈래 끝에 날카로운 금속이 붙어 있다. 맨살을 찢어 출혈로 죽게 만드는 그 채찍은 로마시대에 실제로 있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유대인 제사장들이 나귀를 탄다. 로마 장교가 말을 타는 것과 비교되는데, 이 또한 정확한 고증이다.
 
놀라운 것은 예수 시대의 언어를 되살린 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아람어와 라틴어를 한다. 아람어는 예수가 일상적으로 썼던 언어로 히브리어와 비슷한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10년차 유대 총독 빌라도는 아람어로 예수에게 묻는다. “그대가 유대인의 왕인가?” 예수는 라틴어로 대답한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유대 북부 나사렛 출신 예수가 라틴어를 구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이 영어로 대화했다면 고대극의 사실성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극사실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DVD로 본 뒤 오래도록 다시 꺼내지 않았다. 너무 처참하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대속(代贖)에 나의 죄도 포함되는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부터 운명할 때까지 일곱 마디 말씀을 한다. 로마 병사들이 낄낄대며 자신의 몸에 대못을 박는 고통 속에서 예수는 외친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 예수는 고통스러워한다. “목이 마르다”고 호소하고,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원망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안식에 든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이든은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스페인 대서양 항구도시 카디즈의 산타 쿠에보 성당의 의뢰를 받았다. 하이든은 교향곡과 현악사중주의 아버지이지만 나는 그의 음악을 별로 듣지 않는다. 후배들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위 구세주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듣는 순간 좋아하게 되었다. 하이든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일곱 곡의 느린 음악을 텍스트 없이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기 다른 조성(調性)을 선택해 주제를 드러내고 리듬으로 변화를 주었다. 하이든은 관현악곡으로 작곡한 뒤 현악사중주와 오라토리오 버전까지 만들었지만 오리지널 관현악 버전이 풍성하면서 은유적이라 가장 좋다. 멜 깁슨의 일곱 말씀은 가슴을 후벼 파지만, 하이든은 명상하게 한다. 둘 다 좋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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