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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합창 돋보이는 민중적 오페라의 탄생

중앙선데이 2017.04.16 00:02 527호 6면 지면보기
연습실에서

연습실에서

지난 정권 실세들이 줄줄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걸 보고 있자니 절대 권력을 얻는다는 게 반드시 축복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또 다시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대선 정국을 보면, 권력을 향한 욕망과 그 비극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끝없이 돌고 도는 법인가 보다.  
 

국내 최초로 제작하는
러시아 대작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최초로 도전하는 러시아 대작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4월 20~2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그런 세계를 그린다.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동명 희곡을 원작삼아 무소륵스키가 완성한 유일한 오페라로, ‘러시아판 맥베스’라 불릴 만큼 권력의 비극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솔로 가수의 화려한 기교와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가 중심인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또다른 주역인 민중들의 장엄하고 숙연한 합창과 중창이 두드러지는 무대다. 1989년 러시아 볼쇼이극장이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지만 국내 프로덕션은 처음이다.  
 
17세기 초, 이반 4세의 어린 아들 드미트리를 살해하고 왕좌에 오른 보리스 고두노프는 민중의 기대와 의심을 동시에 받으며 내내 시달린다. 죽은 드미트리를 사칭하는 젊은 수도승 그리고리가 폴란드 군대를 앞세워 나타나자 보리스 고드노프는 스스로 무너지지만, 민중들은 가짜 드미트리를 환영하며 새로운 비극을 예고한다.  
 
러시아가 아직 통일국가로 탄생하지 못하고 유럽의 변방에 머물던 시대적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 군주들의 권력 쟁탈전과 외세의 위협에 노출된 가운데 국가의 통일과 강력한 리더쉽을 기다리는 민중의 염원도 꼭 닮았다. 귀족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적 화합을 향한 강력한 의지가 내재된 민중적인 오페라라는 점도 시의적절해 보인다.  
 
김학민 예술감독은 “러시아 오페라는 민족주의 오페라부터 소개해야 한다는 게 음악사적 입장”이라며 “무소르그스키가 그 정수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 민족주의 오페라의 바이블입니다. 제정시대 민중의 삶과 고통을 노래한 정서와 합창, 대륙의 느낌이 엑기스로 모아져 있죠. 크렘린궁의 시계종 소리까지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음악적인 러시아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장 유명한 러시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작곡한 차이콥스키가 서양에 동화된 작곡가임에 비해,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해 “뼛속까지 러시아스러운” 음악을 만든 민족주의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작품이 러시아 오페라의 차별성을 제대로 보여줄 것이란 얘기다.  
 
2015년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미장센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세계적인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의 창조적인 재해석도 관전 포인트다. 포다는 연출은 물론 무대·안무·조명·의상까지 도맡아 일관된 조형미 속에 긴장감 넘치는 심리극을 펼친다. “러시아라는 특별한 민족의 한을 이야기하는 ‘보리스 고두노프’는 역사를 거대한 프레스코화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그는 무대 3면이 벽화처럼 온통 키릴 문자와 라틴 문자로 도배된 공간들을 교차시켜 러시아 내부와 외세 폴란드의 상반된 세계를 구현한다. “당대도 현대도 아닌 초월적 공간에서 음악이 가진 마법을 보여드리려 한다.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미적인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는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보다도 복잡한 인간의 심리가 존재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1874년 ‘보리스 고두노프’가 초연됐던 마린스키 극장에서 최근 이 작품을 지휘하기도 한 스타니슬라브 코차놉스키를 비롯해 베이스 오를린 아나스타소프와 미하일 카자코프,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 등 동구권 음악가들이 대거 기용됐다. 최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주역 데뷔한 테너 신상근과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 등 국내 성악가들도 함께 한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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