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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넌의 몰락, 트럼프 사위에 밀렸나

중앙일보 2017.04.14 01:26 종합 14면 지면보기
트럼프의 ‘극우 책략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백악관에서 밀려나는 스티브 배넌. [워싱턴 AP=뉴시스]

트럼프의 ‘극우 책략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백악관에서 밀려나는 스티브 배넌. [워싱턴 AP=뉴시스]

백악관의 막후 실세 스티브 배넌(64)이 추락할 지경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초만 해도 트럼프 정권의 핵심 실세로 분류됐던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배넌이 향후 거취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의 후원자인 로버트 머서의 딸 레베카 머서와 비밀리에 만났다”고 전했다. 배넌이 백악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급히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배넌은 허버트 R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갈등을 빚으며 NSC 상임 위원에서 밀려났다. 지난 6일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선 거의 테이블 끝 쪽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누가 봐도 계속 ‘뒤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배넌이 곧 축출될 것이란 전망은,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포스트와 나눈 인터뷰에서 “나의 전략가는 나 자신”이라고 밝히며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석전략가인 배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트럼프는 ‘배넌을 여전히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배넌이 내 선거 캠프에 매우 늦게 합류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은 워싱턴 아웃사이더들로 채워진 ‘트럼프의 사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 선택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해군 장교 출신에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그는 인종 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강경 보수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뉴스를 설립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매체를 통해 지난해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뉴스를 쏟아냈고, 트럼프 선거 캠프에 합류해서는 트럼프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를 구해냈다.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될 때 외려 더 보수적인 이민 대책을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는 식이었다. 그런 그에겐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 책략가’란 별칭이 붙었다. 여러 잡음에도 트럼프가 배넌을 수석전략가 자리에 앉힌 이유였다.
 
그러나 배넌은 트럼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반이민 행정명령’ ‘트럼프 케어’ 등 배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정책이 계속해서 어긋났기 때문이다. ‘반이민 행정명령’은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 부닥치며 법치주의 앞에서 좌절됐고, ‘트럼프 케어’는 여당인 공화당 내부 강경파들의 반대로 의회 표결조차 거치지 못하고 무산됐다.
 
결정적으로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사이가 어긋나며 상황은 더욱더 배넌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쿠슈너는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디나 파월 NSC 부보좌관 등과 함께 ‘백악관 내 민주당원’이라 불릴 만큼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다.
 
그런 쿠슈너는 외교 문제는 물론이고 이민 정책, 인권 문제 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배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불화가 심해지자 급기야 트럼프가 ‘화해’를 지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8일 “트럼프가 쿠슈너와 배넌에게 ‘견해차를 해결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승자는 쿠슈너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배넌의 위기를 두고 “백악관 내 핵심 참모들 사이의 불화를 알고 있던 트럼프가 그 책임을 배넌에게 돌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배넌의 몰락은 일종의 ‘토사구팽’(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쓸모없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는 자신의 맏딸과 사위인 이방카(백악관 보좌관)-쿠슈너 부부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트럼프가 취임 100일도 안 돼 개국공신을 버리고 친인척을 택했다는 분석이 워싱턴 정가를 달구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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