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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몰래 ‘인형뽑기왕’ 꿈꾸는 중·고생들

중앙일보 2017.04.13 02:24 종합 12면 지면보기
최근 인형 뽑기에 빠진 중고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역 인근 인형뽑기방에서 학생들이 인형 뽑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최근 인형 뽑기에 빠진 중고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역 인근 인형뽑기방에서 학생들이 인형 뽑기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1일 오후 5시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있는 ‘인형뽑기방’. 교복 차림의 고교생 10여 명이 게임기 앞으로 모여들었다. 학생 중 하나인 이모(17)군이 게임기 중 하나를 골라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집어넣었다.
 

옷 산다고 5만원 받아 다 쓰기도
뽑은 인형은 다시 팔아 또 뽑기
“성적 스트레스 학생들 쉽게 빠져
부모가 혼내면 더 몰두 역효과”

조이스틱을 상하좌우로 흔들어 삼발이처럼 생긴 ‘집게발’을 자기가 좋아하는 피카추 인형 위로 움직였다. 버튼을 누르자 집게발이 내려와 인형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집게발이 올라가다 인형이 떨어졌다. “아, 아깝네.” 이군은 두 번이나 더 1000원짜리를 넣었다. 결국 세 번째 도전 만에 피카추 인형을 ‘득템(아이템 획득)’했다. 이군은 “일주일에 서너 번 여기에 온다”고 했다.
 
최근 들어 중·고교생 사이에서 인형 뽑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엔 인형 뽑기 고수들이 비법을 전수해 주는 강의도 있을 정도다. 인형 뽑기 기계는 20여 년 전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고시생·대학생·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 교장은 최근 2학년 학생회 임원 학생의 페이스북에서 “주말에 홍대·노량진 원정을 다녀왔다”는 게시글과 인형뽑기방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봤다. 이 교장은 “인형 뽑기 인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인형 뽑기가 청소년 사이에 번진 데엔 TV 예능프로그램도 작용했다. 일부 연예인들이 자기 취미로 인형 뽑기를 소개하면서다. 송진호 메타학습연구소 대표는 “이걸 본 청소년들이 ‘쿨하고 멋진 취미’라고 여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인형 뽑기를 잘하는 친구들은 ‘뽑기왕’ ‘프로뽑기러’ 등으로 불린다. 뽑기왕들은 ‘득템’을 자랑하기 위해 학교에 메고 다니는 배낭에 인형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기도 한다.
 
인형 뽑기는 한 판에 1000원을 낸다. 뽑기왕들은 자기가 뽑은 것을 팔아 게임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 온라인 장터엔 ‘피카추 인형 30㎝ 6000원’ ‘고라파덕 30㎝ 7000원’ 등 인형을 매물로 내놓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지난 10일 홍대 앞의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최모(고1·16)양은 “인형뽑기방에 올 때마다 1만원 정도 쓴다. 나중에 팔 것을 생각하면 2개만 뽑아도 본전이고 3개를 뽑으면 이익이다. 게임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한다”고 얘기했다.
 
이러다 보니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회사원 김모(45·서울 송파구)씨는 최근 중2인 막내딸과 크게 다퉜다. 김씨는 “교복에 걸칠 카디건이 필요하다”는 딸의 말에 5만원을 줬다. 그런데 딸이 거스름돈을 가져오지 않고 ‘사겠다’던 카디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김씨가 캐묻자 딸은 “인형 뽑기에 모두 썼다”고 실토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적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일수록 인형 뽑기에 빠져든다. 단순하면서도 결과물을 바로 손에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친구들의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경보 문청소년 교육연구소장도 “호기심에 시작한 학생에게 부모가 ‘잘못됐다’고 몰아세우면 오히려 인형 뽑기에 더 몰두하는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다양하게 열어주고 격려하는 게 낫다”고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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