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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정치와 학문은 병행할 수 없을까

중앙일보 2017.04.11 12:00
지식인과 정치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그 이중성을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이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각각 『자유론』과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사상사의 세계적 고전을 펴냈으면서 현실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다. 밀은 3년, 토크빌은 13년 동안 하원의원 등을 역임하며 직업 정치인으로  분투했다. 그들의 정치 참여의 결과는 어땠을까.  
 

서병훈 숭실대 교수
"정치사상사 고전 남긴 밀·토크빌
하원의원도 지냈지만 결과는 미미
지식인의 현실 정치 참여 딜레마"

지난 10년 동안 두 인물을 연구해온 서병훈(62)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그들의 저술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 비하면 정치 참여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미미하다는 얘기다. 작은 이야깃거리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정치 생활을 되돌아보며 동일한 회한에 잠겼고, 지식인은 역시 글을 써서 역사에 보답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주었습니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학과 교수.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의 사상과 현실 정치 참여 결과 등에 대한 연구를 지난 10년가 해왔다. 강정현 기자

서병훈 숭실대 정치학과 교수.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의 사상과 현실 정치 참여 결과 등에 대한 연구를 지난 10년가 해왔다. 강정현 기자

 
 
밀과 토크빌을 개별적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많아도 두 사람을 비교 연구하며 그들의 정치 참여 결과까지 되새겨보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을 평가받아 서 교수의  연구는 서양 지성사 관련 최고의 권위지로 꼽히는 ‘History of European Ideas‘(영국 라우틀리지 출판사, 2016년)에 실렸고, 최근 『위대한 정치』(책세상)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돌아온 대선, 정치의 계절에 ‘위대한 정치’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희망일 것이다. 과연 위대한 정치를 이루기 위해 지식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 대선 캠프에 많은 대학교수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 교수님도 어디 들어가 계신지요.
“아니요, 요청 받은 적 없습니다. 각 정당이 주최하는 행사에 일절 응하지 않으니까 아예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학과 교수라면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잖아요. 신문은 글쓰는 것이니까 젊어서는 제법 기고를 많이 했지만, 방송은 요청이 와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서 교수는 지식인의 범주를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 지식인”으로 비교적 좁게 설정하면서 주로 대학교수를 염두에 두고 말을 이어갔다. 서 교수가 보는 지식인의 현실 정치 참여 방법은 네 가지다. 1.대중 정치인으로의 변신 2.공직 진출 3.언론 투고나 시민운동 4.시대적 문제의식을 글쓰기로 표출. 이 가운데 1번과 2번이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4번의 연구와 글쓰기만 하고 있다. 3번의 경우도 젊은 시절과 달리 10년 전부터는 안하고 있는데, 3번과 4번을 병행하기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언론 투고나 시민운동의 어떤 점이 힘든가요.
“그같은 사회적 발언을 하면 들뜨게 되죠. 반응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스스로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아요. 10년 전 밀과 토크빌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이건 아니잖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힘 있을 때 자기 공부를 더해야 뭔가 성취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 아닌가요.
“지식인이 자기 이익만 챙기며 기능적 지식인으로 안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런 사람보다는 폴리페서라고 비난받는 일이 있더라도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지식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좀 더 고민하는 일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이 현실 정치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당시에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회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의무라고 간주됐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겁니다. 그런데 사회적 의무로 참여 하더라도 ‘내가 정치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밀과 토크빌 두 사람 다 없었습니다. 아직 대중민주주의가 본격 등장하기 이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대중을 설득해서 정치를 한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 주변 동료나 지식층 인사를 설득하면 그게 정치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좌절감을 느낀 건가요.
“둘 다 대중에 대한 접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 지식인 고유의 고집이 있죠. 대중을 설득하기보다 자기 고집을 밀고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밀도 토크빌도 ‘역시 나는 글을 써서 국가에 봉사하는 게 더 크고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길이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토크빌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정치 참여 결과를 실패라고 보는 건가요.
“실패라고 하면 너무 일방적일 겁니다. 혼자서 정치 다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밀은 분투를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명성에 비하면 그 성과라는 게 미약하다는 얘깁니다. 토크빌은 13년 동안 정치를 했는데 별로 이루는 게 없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면 잘 관철이 안 되고, 어쩌다 관철이 되면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하니까 좌절을 느끼게 되죠.”
 
밀과 토크빌이 활동한 19세기와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상황이 많이 다를 텐데요.
“21세기 대중정치에 그들은 참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천하의 토크빌이라도 요즘 같은 정치에는 참여 안했을 거예요.”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공의, 정의의 도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지식인이라면 지향하는 이상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일 테니까요. 이런 말이 너무 이상적인가요? 우리 국민들이 폴리페서라고 정치 참여 지식인들을 욕하는 이유가 권력의 도구로 보이기 때문 아닌가요? 지적인 이념적인 비전이 있어야하는데, 권력자에 충언하는 지식인을 보기 힘들잖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누군가 몸을 던져 막은 지식인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밀과 토크빌은 많은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정치에 대한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그 성과가 약했습니다.”
 
지식인은 정치 현실에 초연하면서 자기 연구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제가 글을 쓰거나 하는 일이 정치에 무관하냐, 그건 아니죠. 저는 지금 ‘포퓰리즘과 한국정치’(가제)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왜 한국정치는 비대위가 상시 가동되며 새정치 찾는 일이 반복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겁니다.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글을 쓰는 것도 정치활동이지요. 이렇게 글쓰기와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한 ‘참정치’입니다. 그것이 지식인이 할 일이라고 보는 거죠. 그것이 더 의미있는 참여라는 겁니다. 저는 제 분수를 아니까 현실 정치 참여는 안하는 것이고.”
 
현실 정치에 참여할 특별한 분수가 뭔가요.
“제 말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유인의 도리’라는 명언을 남겼어요. 국가와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자유인의 도리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교육에 몰두함으로써 그 도리를 다했습니다. 지식인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는 것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대중정치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이나 분수는 어떤 겁니까.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국회의원이 되잖아요. 대학 강의 하듯이 하면 안 되잖아요. 스킨십도 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게 중요한 것인데 지식인의 한계이자 딜레마라고 할까요, 자기 확신이 없으면 지식인이라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확신이 강하면 독선으로 가고….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나눠서 얘기했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안 따라와서 그렇다고말하는 것이 신념윤리죠. 베버는 책임윤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신념윤리가 강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보면 대중과 보조를 맞추기 어렵죠. 밀과 토크빌도 주변 동료 정치인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습니다. 대중보다 반발 정도 앞서가야 하는데 너무 앞서가고….”
 
싱크탱크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 현실에서 지식인들의 대선캠프 참여는 불가피한 현상 아닐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급조되고, 갑자기 끌어 모으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기에 무슨 큰 틀의 장기적 비전이 있겠어요.”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교수 같은 데요….
“요즘은 대학교수 일도 많아서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참여하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자기 할 일에 물이 새지 않는지 정말 잘 살펴봐야합니다. 현실 정치 참여와 학문을 병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불교 수행자를 이판, 사판 둘로 나누지 않습니까.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바깥일에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저는 학문의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식사회의 현실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선진 외국에서 학문까지 다 수입해서 쓰는 우리 지식사회의 현실도 되돌아봐야 합니다. 언제까지 서양학문 수입만 하나요. 대등하게 경쟁하려면 한눈 팔 시간 없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들며 대학 내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 학자들 보면 참 후줄구레하죠. 대학교수하면서 돈 벌 생각 안하고, 오로지 학생지도와 연구가 본분이라고 생각하며 전문가의 길을 가는 겁니다. 정치 기웃거리는 사람들 대학 내에서는 대접 못 받습니다. 대학 내에서 은근슬쩍 배제시키죠. 밖에서 많이 대접받으면서 대학 내에서도 왜 대접받으려고 하나 그런 거죠. 전문가의 길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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