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년중앙] 안전해진 롱고롱고 69와 찾지 못한 노래

중앙일보 2017.04.11 09:30 14면
 80화

학교 대회의장에서는 수리와 사비, 마루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수리 책임이잖아요? 수리가 꿈인지 생시인지, 거인들을 만났다는 둥, 이상한 문자를 봤다는 둥, 헛소리하더니 결국 그웨고난 뱀 안개를 끌어들인 거 아닌가요? 우리가 계속 이 꼴을 봐야 합니까?"
유키 엄마는 분노로 부르르 떨었다. 수리 엄마는 내심 미안했지만, 자존심도 있었다.
"수리가 그웨고난 뱀 안개를 끌어들였다는 증거 있습니까? 뱀 안개는 스스로 온 거라고요. 제발 뱀 얘기 좀 하지 마세요."
수리 엄마는 일단 발뺌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뭐요? 뱀 같은 얘기? 이제 말을 막 하시네. 한동안 우리 학교가 엉망이 된 이유는 바로 수리·사비·마루 때문이라고요!"
유키 엄마의 목소리가 완전히 삐딱해졌다.  
"그럼 증거를 대세요. 우리 수리가 그웨고난 뱀 안개를 끌고 왔다는 증거를 대시라고요."
수리 엄마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고, 뻔뻔해라. 댁의 그 못난 아드님이요. 인정한 거잖아요?"
유키 엄마가 수리 엄마의 가슴을 팍팍 긁었다.  
"어머머…못난 아들이라뇨?"
수리 엄마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저희도 듣는 얘기가 있어요. 댁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아빠도 제멋대로 집을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고, 뭐 물론 소문이지만요."
유키 엄마의 독한 말에 마을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네' 등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요? 뭐요? 이봐요, 어머님!"
수리 엄마가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키 엄마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당신 어머님이 아니고요, 수리·사비·마루 다 마찬가지예요. 떠나기 전부터 남편들과 만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면서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빗나갈 수밖에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그저 졸거나 자거나. 성적도 아마 꼴찌죠? 아이들은 엄마가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으니까 아빠들 연구실에 숨어 있다가 뭔 문명인지 찾으러 떠났다는 그런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잖아요? 어때요? 이게 판타지 소설인가요? 사실이죠?"
유키 엄마는 의기양양했다. 이제 다른 엄마들이 유키 엄마 뒤에 둘러섰다. 유키 엄마는 이제 단상까지 진출해 있었다. 마이크를 잡았다.  
"오메가 마을과 오메가 고고학교는 이 가족들이 모두 망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가족들의 추방을 제안합니다."
엄마들은 옳소, 옳소 저마다 손을 들어 외쳤다.
"추방. 추방."
유키 엄마는 악을 썼다. 다른 엄마들도 '추방, 추방'을 외치며 악을 썼다.  
그때 수리 엄마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추방당하기 전에 한마디만 할게요."
모두 수리 엄마를 주목했다.
"고고학자의 아이들답게, 그리고 고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답게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 떠난 게 어떻게 판타지 소설 같은 얘기인가요? 댁의 아드님, 따님도 모두 고고학자가 되려고 오메가 고고학교에 온 것 아니었어요? 그저 성적이 안 돼서 하늘대학에 못 가니까 스펙이라도 만들려고 오메가에 왔나요? 맞아요? 유키 엄마? 그러니까 이 학교와 마을을 떠난다는 말을 참 쉽게 하겠죠. 안 그래요?"
수리 엄마는 당당해지려고 애썼고 시원시원하게 사이다 같은 발언을 하고 있었다. 유키 엄마도 지지 않았다.
"게다가 골리 쌤까지 납치해 갔다면서요?"
이제 엄마들이 아우성이었다.  
"납치라뇨? 골리 쌤 덩치를 보세요. 애들이 어떻게 그 덩치를 납치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그런 애들 아닙니다. 말조심하세요!"
마루 엄마가 나섰다. 한 덩치 하는 몸매였다.
"아, 기간제 교사라고요? 그럼 신경 쓸 필요 없네요. 납치되든가 말든가."
수리 엄마는 계속 떠들어대는 유키 엄마를 한 대 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세 아이들에게 징계를 줄 것인가에 대해 먼저 결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 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였다. 수리의 동생 모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모리는 유키 엄마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유키 엄마는 황당한 표정으로 모리를 노려보았다.  
모리는 야무졌다.  
"오메가 고고학교는 고고학자를 키워내는 학교예요. 그런데 왜 학생들을 학교에 가두고 있었어요? 학교가 도서관인가요? 주입식으로 듣고 외운다고 고고학자가 되는 거예요?"
유키 엄마도 다른 엄마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그리고 오메가 고고학교는 여러 대학에 있는, 흔한, 그저 그런 고고학과가 아니잖아요? 진짜 판타지 소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잃어버린 문명, 사라진 문명을 찾으려는 고고학자를 양성하는 곳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학교 수업시간에 잡아두는 거예요? 학교에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라도 있나요? 혹시 유물을 감추어 두셨어요?"
모리의 팩트 폭격에 모두 킁킁 헛기침만 했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으쓱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정의 평화가 뭐죠? 제시간에 일어나고, 제시간에 밥 먹고, 제시간에 학교 가고, 제시간에 집에 오고? 그러면 평화로운 건가요? 그건 지루한 거잖아요?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고고학자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인재로 성장시키고 싶으세요? 학교에서 통제하기 쉬운 바보 같은 모범생을 만들고 싶으세요?"
엄마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매우 조용했다.  
"난 수리 형이 자랑스러워요. 사비 누나, 마루 형도 자랑스러워요. 더더욱 우리 아빠가 제일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엄마 사랑해요."
갑자기 엄마들이 훌쩍거렸다. 수리·사비·마루 엄마도 눈물을 흘렸다.  
"그웨고난 뱀 안개를 수리 형이 데려온 게 아니잖아요? 이 모든 게 그웨고난 뱀 안개의 치밀한 계획이거나 또 다른 무서운 운명의 계획일지 어떻게 알아요?"
엄마들의 훌쩍거림이 멈추더니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리 형이 그웨고난 뱀 안개를 처치하러 갔잖아요? 전 아빠들이 그웨고난 뱀 안개의 계략을 미리 알고 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국은 오메가 마을과 오메가 고고학교를 구했잖아요? 게임 끝이죠?"
엄마들이 열렬히 박수 쳤다.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고 길어지자 교장선생님도 하는 수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수리 엄마는 모리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자 마을 엄마들이 더 크게 박수 쳤다.  
"모리, 그런데 너 어디서 나타난 거야?"
수리 엄마가 모리의 뺨에 뽀뽀를 했다. 모리가 웃었다.
"아, 그럼 수리와 사비, 마루의 퇴학은 취소하는 걸로…."
교장선생님이 멋있는 발표가 엄마들의 함성 소리에 그만 묻혀버렸다.  
 
 
탑에 갇힌 삼총사 
수리와 사비, 마루는 벌 받는 아이들을 가두는 탑 방스텔라에 갇혀버렸다. 좁은 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별빛이 번쩍했다. 테라쎄 별이었다.
"아빠…보고 싶어요. 아빠…."
아이들은 모두 아빠를 떠올렸다.
"테라쎄 별 자체가 하나의 교신체계였어요. 레뮤리아 땅에 거대 전력발전소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황금을 이용한 우주통신이요. 아빠, 테라쎄였어요. 테라쎄요. 그런데 테라쎄와 교신하는 우주가 어떤 곳인지 다 알아내진 못했어요. 아빠들의 숙제예요. 꼭 알아내세요."
수리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우주머리 아저씨도 잘 계시죠? 아저씨 덕분에 롱고롱고 69개가 위험한 포스가 되지 못했어요. 아 참, 내 덕분인가? 아니, 우리 덕분인가? 하하. 저의 뇌 속에 이 아다마가 있는 한, 아저씨가 있는 한, 롱고롱고 69-포스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어요."
수리가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를 했다.
"아빠 덕분이지. 아빠들이 먼저 훔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팬옵티콘의 손에 들어가 있겠지."
수리는 일어나서 아빠들이 계실 것으로 추정되는 테라쎄 별을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아빠. 기다려요. 우리는 곧 탈출할 거예요. 볼트가 코를 더 길게 키우고 있어요."
마루는 볼트의 코를 쭈욱쭈욱 늘이고 있었다. 볼트의 긴 코는 좀 더 길어져 있었다. 나비는 볼트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볼트가 라푼젤이야? 어떻게 코를 동아줄 삼아 저 아래로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냔 말이야?"
사비가 마루의 뒤통수를 퍽 때렸다.
"그런데 아빠가 말한 노래가 뭐지?"
수리는 아직도 노래를 찾지 못했다.  
수리와 사비, 마루 엄마는 이제 가게를 지상으로 옮겼다. 멀리서 온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이 가게를 많이 찾았다.
가게 이름은 'song of'였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카툰연구소 들어가서 다 뒤집어 놓았을 때, 찾았던 건 어디에 감춰 놓았어요. 사비 엄마?"
수리 엄마가 주변 눈치를 보며 슬쩍 물었다. 사비 엄마는 베개를 가져왔다. 베갯잇을 열자 그 안에 황금, 수정이 반짝이고 있었다. 수리 엄마, 사비 엄마, 마루 엄마는 키득키득 낄낄 웃었다.  
  반복한다, 반복한다.  
  4월 5일 04시 45분
  다시 반복하겠다.
  1967년 6월 5일  
  요나구니 근처 바다에 추락했다.
 
<끝>
지금까지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를 읽어주신 소년중앙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