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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뛰어봤습니다] 국제 수직마라톤 ‘스카이런’ 미리 뛰어보니

중앙일보 2017.04.11 07:00
 
 3월24일 오전 11시쯤 택시를 타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향했다.  택시 기사에게 불쑥 말을 던졌다.  “롯데월드타워를 계단으로 오르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기사는 황당하다는 듯 훑어보며 답했다.  “저길요? 왜 올라가요?”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툭 내뱉었다.  “2시간 걸리지 않을까요.”
 
기사의 말을 뒤로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2시간이란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지천명ㆍ知天命)’는 50을 앞에 둔 나이, 일주일에 두세번 가량의 잦은 술자리, 그래도 몸을 챙기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은 피트니스센터를 찾는 나는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이다. 마라톤을 해 본 적도 없고 등산을 즐기지도 않는다. 다만 수영을 좋아해 틈 날 때마다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그런 내가 충청남도 칠갑산(560m)과 비슷한 높이의 롯데월드타워(555m, 계단이 있는 123층까지 높이는 500m)를 뛰어서 오르려고 한다.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 하나’라는 질문에 ‘산(에베레스트)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말로리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나도 ‘롯데월드타워가 거기 있으니까’ 또 한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도전한다.  보통 사람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123층짜리 빌딩을 뛰어오르면 완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디쯤에서 지쳐 쓰러질까. 이런 호기심에 수직 마라톤이 열리는 4월 23일보다 한 달 앞서 미리 체험해 보기로 했다.
 
출발 지점인 스페인 설치미술가 하우메 플렌자의 작품 ‘가능성’ 앞에서 롯데월드타워 꼭대기를 쳐다봤다. 아득했다. 먼 하늘에 점 하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 쳐다보니 현기증마저 났다. “내가 오를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출발’ 소리가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내달렸다. 그런데 걱정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20F
5층에 오르니 벌써 숨이 찼다. 10층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고 심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100m 달리기를 한 뒤 느껴본 그런 통증이었다. 로비가 있는 부분이어서 그런지 층고가 일반층보다 훨씬 높았다. 20층에 오르니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빠른 걸음이다.
 
 
 
 40F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도 심장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빠른 걸음으로 가기가 버거웠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데…”이때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돌연사!’ “이러다 내가 죽겠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고 계단을 뛰어오르다 쓰러질 순 없지….” 어느새 나는 걷고 있었다.
 
 
 
 63F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높았던 빌딩과 같은 63층에 올랐는데 겨우  목표 층수의 절반만 올라왔다니….” 눈 앞이 깜깜했다. 머리는 멍했다.  “그래 너무 무리하면 완주를 못하지. 잠깐 쉬었다 가자.”  2~3분가량 쉬니 가슴 통증은 약간 사그라졌다.
 
 
 
 86F
다시 오르기 시작했지만 3~4개층을 오르니 고통은 나의 심장, 허벅지, 종아리를 또다시 괴롭혔다. 허벅지는 돌덩이처럼 딱딱해졌고 발은 부들부들 떨렸다. 발을 뗄 기력조차 없었다. “아직도 37층이나 올라가야 한다니….” 난간을 잡으며 한 층, 한 층 올라갔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 어제 내가 왜 술을 마셨던가.” 천식에 걸린 사람처럼 기침도 했다.  “그래도 조금만 힘을 내자….”  
 
 
 
 117F
한 층 오르고 쉬고, 한 층 오르고 쉬고 하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117층에 도착했다. 벽에 칠해진 페인트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구나. 다 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안내요원이 최종 목적지는 123층으로 6개 층을 더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이때 안타까움이란….
 
 
  
 123F
두세 계단 오르고 쉬고 서너 계단 오르고 쉬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한 층 한 층 오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5개 층 남았다. 4층, 3층, 2층, 1층…. 드디어 정상이다. 계단을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들과 딸의 이름을 외쳤다. “○○아, ○○아 아빠가 해냈다!”
 
 
 
롯데월드타워 123층까지 계단 수는 2917개다. 계단 너비를 30cm라고 보면 직선거리는 불과 875m 정도에 불과하다. 롯데월드타워 밖 평지에서 출발한 점을 고려해도 실제로 뛴 직선거리는 950m~1km를 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를 가는데 41분이나 걸렸다니….  123층을 오르는 건 인생 같았다. 초기에는 20대처럼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지만 중간쯤에는 완급을 조절하며 걸었고 마지막에는 주변도 돌아보며 쉬엄쉬엄 올랐다. 결국은 주변을 둘러보며 더불어 가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창규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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