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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유력주자 없는 선거는 처음" 흩어진 TK 민심…누구 뽑을까

중앙일보 2017.04.07 00:01
지난 4일 오전 대구 중구의 서문시장 2지구 앞. 몇몇 상인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화제는 다가오는 19대 대선이었다. 상인들은 다 함께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지난 17·18대 대선에서는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인 이명박·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정치적 주류였던 TK…탄핵사태 이후 위축
87년 직선제 이후 유력주자 없는 첫 선거
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에 불편한 시선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모(61)씨가 “그래도 홍준표(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찍어야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불가게를 운영하는 정모(59)씨가 “홍준표도 어차피 박근혜(전 대통령) 욕하던 사람이다. 어제 왔던 유승민(바른정당 대선후보)이만 대구사람이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최모(60)씨는 “문재인(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 당선을 막으려면 안철수(국민의당 대선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노점상을 운영한다는 김모(65·여)씨는 “아들 말 따라서 문재인을 선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4인 4색이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가 지난 3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구=최우석 기자

유승민바른정당 대선후보가 지난 3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구=최우석 기자

 
대선을 약 35일 앞두고 벌어진 서문시장 상인들의 '정치 대화'는 현재 대구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항상 보수 후보에게 몰표 주기를 해온 상인들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서로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서문시장은 소위 ‘보수의 성지’로 불린다. 가깝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다. 
 
친박계 한 인사는 탄핵 전 “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문시장만 찾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2007년 서문시장에서 유세했고,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서문시장을 다시 찾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4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4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이번 대선은 이전과 크게 다른 분위기다. 보수 후보들은 서문시장에서 환호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4일 오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서문시장을 찾았다. 지난달 18일 서문시장에서 대선 출정식을 한 지 18일 만에 다시 방문했다. 하루 전인 지난 3일에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서문시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홍 후보와 유 후보는 각각 "보수의 적자는 나”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날 홍 후보가 지나가자 한 시민은 “경남도지사가 여기는 와(왜) 왔노”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 상인은 “(홍 후보는)막말 좀 그만 하이소”라고 소리를 질렀다. 유 후보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물세례를 받을 뻔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30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안 후보는 “야물딱지게 하겠심다. 팍팍 밀어주이소”라며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30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안 후보는 “야물딱지게 하겠심다. 팍팍 밀어주이소”라며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보수후보의 부진으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도 TK에서 지지세를 넓혀가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TK에서 소위 ‘전략적 선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보수주자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보수층이 문 후보를 이길 상대로 안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탄탄한 지지세는 아니다. 보수 후보 중 대안이 있을 경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분위기다. 
 
 6일 오후 만난 서문시장 1지구 상인 반정숙(58·여)씨는 “문재인 후보를 이기기 위해 안 후보를 뽑겠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당이 호남정당으로 여겨 싫어한다”고 말했다. 류성재 서문시장 상인연합회 부회장도 “최근 안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렇지만 안 후보가 좋아서는 아니고 문 후보가 싫어서 그렇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 후보의 경우 연령대에 따라 선호도가 엇갈린다. 중·장년층 이상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윤옥선(62·여) 서문시장 1지구 침구류 상인은 “문 후보는 말도 꺼내지 마라. ‘대통령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간다’고 한데다 각종 나쁜 소문이 합쳐지면서 중·장년층 이상은 대부분 싫어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문시장 2지구 상인 이모(29)씨는 “젊은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싫어해서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26일 대구를 방문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대구=최우석 기자

26일 대구를 방문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대구=최우석 기자

 
보수의 본산인 TK(대구·경북) 민심이 이처럼 하나로 응집되지 않는 현상은 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이다. 1987년 벌어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대구에서 70.69%를 득표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15·16대 대선에서 7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69.4%의 지지를 받았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구에서 80.4%를 득표했다. 매번 단일화된 목소리를 내온 것이다.
 
정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충격과 강력한 TK 후보의 부재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현장에 나가보면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지 혼란을 겪고 있고 투표를 포기한다는 사람이 많다. 투표율이 예전보다 낮을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전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TK는 항상 정치적으로 주류였으며 대선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강력한 후보가 항상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후보가 없고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충격도 많이 받았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구=최우석 기자
choi.wooseok@joona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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