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거진M] '시간위의 집' 김윤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파"

중앙일보 2017.04.06 00:01
4월 5일 개봉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시간위의 집’(임대웅 감독).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죄로 25년간 수감 생활을 한 주부 미희(김윤진)가, 출소 후 집에 돌아와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으로 3년 만에 한국영화에 복귀한 ‘월드 스타’ 김윤진(43)은, 주인공 미희의 중년과 노년을 넘나드는 열연으로 시종일관 영화를 긴장감 있게 이끈다.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에서 방한한 그를 magazine M이 만났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 이후 3년 만이다. 미국 드라마가 아닌, 한국영화에서 김윤진을 다시 만난 건. “잊을 만하면 한국영화에 복귀하니, 관객도 내가 덜 지겹지 않을까(웃음)?”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김윤진은 이렇게 말하며 깔깔 웃었다. 여유롭게 말을 잇는 그의 얼굴에선, 새 영화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한껏 배어 있었다.


-3년 만의 국내 복귀작이다. ‘시간위의 집’을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정말 많이 감탄했다. 한국영화 시나리오 가운데 이 정도로 탄탄하고 흥미로운 대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퍼즐 맞추듯 영화 속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도 있지만, ‘사랑이 과연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테마도 있다. 여러 면에서 ‘알맹이가 꽉 찬’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2015)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이 각본을 썼다. 

“솔직히 처음엔 몰랐다. 생각보다 구조가 탄탄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장 감독의 각본이더라. 드라마·스릴러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시간위의 집’과 ‘검은 사제들’은 꽤 닮았다. ‘하우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시간위의 집’의 카피 역시, 이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김윤진(시간위의 집)

김윤진(시간위의 집)

30대 미희와 60대 미희를 동시에 연기했다. 나이 차가 큰 두 역할을 모두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문라이트’(2월 22일 개봉, 배리 젠킨스 감독)에선 각각 나이가 다른 세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는 나오미 해리스 한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극 초반 보여 준 비정한 모습을 후반부의 미안한 감정으로 연결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젊은 미희와 나이 든 미희, 두 역할을 동시에 해야만 관객도 자연스레 감정을 몰입할 거라 생각했다.”

 
-아이돌 그룹 2PM의 옥택연이 미희의 과거를 파헤치는 최 신부를 연기했다. 후배 배우로서 어떤 잠재력을 엿봤나.

“(옥)택연씨에게 늘 잔소리처럼 말하곤 한다. ‘군대 다녀오면 무조건 할리우드에 진출하라’고(웃음). 주저할 이유가 없다. 외국 배우에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신체 조건도 뛰어나고, 미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도 잘한다. 좋은 기회를 만나 더 큰 가능성을 펼쳤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를 포함해, 모성애 강한 엄마를 자주 연기했다. 

“주변에서 ‘엄마 역할이 지겹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나는 늘 같은 엄마 역할이라도 굉장히 다양하게 연기해 왔다고 자부한다. 모성애는 세계의 어느 문화권에서든 공감하는, 가장 보편적이며 대중적인 감정이다. 향후 20년은 더 모성애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는 스토리텔링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으니까.”

시간위의 집 스틸 영화사제공

시간위의 집 스틸 영화사제공

데뷔 20년 차, 김윤진은 그동안 여러 작품 속에서 선구적인 캐릭터를 맡아 왔다. 출세작 ‘쉬리’(1999, 강제규 감독)에서는 한국영화에 없던 ‘여전사’ 캐릭터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TV 드라마 ‘로스트’(2004~2010, ABC)로, 동양인으로선 드물게 미국 드라마의 주요 인물을 맡기도 했다. 어린 시절, 미국 극장에서 중국 배우 성룡(成?·청룽)의 영화를 보며 “같은 동양인으로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는 김윤진. 수십 년이 지나 그는 자신이 동경해 왔던 그대로 미국 드라마계의 주목받는 동양계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백인 남성 배우 중심의 구도를 크게 뒤흔든 것은 물론이다. ‘판도를 바꾼 여성 배우(Game-Changing Actress)’라는 ‘뉴욕 타임스’의 표현이 적확했다.
 
-미국에 진출했던 13년 전과 비교해, 현재 미국 방송계에서 동양인 배우들의 위상은 어떤가. 

“크게 달라졌다. 2004년 ‘로스트’가 처음 공개될 무렵, 방송사 ABC의 홍보팀 직원이 이런 얘길 했었다. ‘미국 드라마 역사상 주요 캐릭터에 동양인이 두 명이나 포함된 건 처음’이라고. 그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돌이켜 보면 사실 엄청난 사건이었던 거다. ‘로스트’ 이후 미국 드라마에서 동양인 배우가 주요 캐릭터를 맡는 일이 더 빈번해졌다. ‘그레이 아나토미’(2005~, ABC)의 샌드라 오, ‘워킹 데드’(2010~, AMC)의 스티븐 연 등 한국계 스타 배우들도 대거 등장했다. ‘로스트’의 제작진, 특히 총괄 프로듀서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대단한 일을 해낸 거다. 2년 전 그가 ‘스타워즈:깨어난 포스’(2015)에 흑인 배우 존 보예가를 캐스팅하는 걸 보며, 과감한 결단과 선견지명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를 통해 대단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에 조그만 힘을 보탰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여성 배우로서 한국 영화계에 아쉬운 점은 없나. 

“젊은 후배 여성 배우들을 보며 ‘좀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도전할 만한 캐릭터가 한국 영화계에 별로 없다는 거다. ‘쉬리’ 개봉 이후, 한국영화에 총을 든 여성 캐릭터가 속속 등장했다. 결국, 감독·제작자·작가가 먼저 나서서 여성 캐릭터의 영역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나 같은 선배 배우들의 책임도 있다. 우리가 좀 더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지금쯤 여성 배우들만 우르르 나오는 영화도 나올 법한데…. 후배 여성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미국 진출을 꿈꾸는 후배 연기자들에게 조언한다면. 

“‘로스트’와 ‘미스트리스’(2013~2016, ABC), 두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기에 누군가에게 조언할 만큼 풍부한 경험은 없다. 다만, 내 지난 행보가 후배들에게 ‘열린 길’이 됐으면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하면 괜히 쉬운 일처럼 느껴지지 않나(웃음). ‘김윤진이 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란 생각을, 늘 했으면 좋겠다.”

 
-영화 속처럼 25년이 흐른다면, 미래의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됐으면 하나.

“실패할지언정 편한 길을 걷지 않았던 배우. 더 쉬운 길도 분명 있었지만, 일부러 그 길을 빙 돌아갔던 배우. 여성 배우로서 틀에 박힌 선택을 피하되, 끝까지 대담한 시도를 이어 갔던 배우.”

김윤진의 두 번째 노인 분장
사진=영화사

사진=영화사

‘시간위의 집’은 ‘국제시장’ 이후 김윤진이 60대 노인을 연기한 두 번째 영화다. 다만, 노역 분장을 하는 방식은 두 영화가 각각 달랐다. 여러 개의 실리콘 조각을 피부에 붙여 완성했던 ‘국제시장’과 달리, ‘시간위의 집’에선 얼굴에 분장용 젤을 덧발라 피부 자체를 푸석푸석하고 주름지게 만들었다. 김윤진은 “기존 얼굴 주름을 끌어모아 찡그린 채” 연기하는, 여성 배우로서는 꺼려질 만한 분장을 기꺼이 해냈다. “둘 중 어느 쪽이 좋았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다만 내 표정이 자연스레 드러났기에, 이번 노역 분장이 배우로서 좀 더 자유로웠달까(웃음).”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