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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양보 5년 후 돌아온 강철수…"이제 안철수의 시간이 왔다"

중앙일보 2017.04.04 19:18
 
2012년 11월 23일 오후 8시 20분 서울 공평동 진심캠프.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퇴선언이었다.그는 “국민에 드린 (문재인과의)단일화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했다. 눈물이 그렁한 채 4분 40초동안 905자 선언문을 읽으며 울음을 참느라 대여섯 차례 어금니를 악물었다. 2011년 9월 6일 활짝 웃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포옹을 통해 후보직을 양보할 때와 사뭇 달랐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라이프 스토리

 
 
그날 사퇴 선언문에서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습니다”고 약속했다. 그러곤 1593일이 지난 2017년 4월 4일. 진짜 안철수의 시간이 시작됐다. 안 후보는 중앙일보에 “의사에서 ITㆍ과학기술자→벤처창업ㆍ경영자→대학교수를 거쳐 다섯 번째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데 이제야 제 인생이 하나의 완성된 원(圓)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① 피를 질색하는 의대생, 컴퓨터에서 구원찾다


  
 
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안영모(87)씨가 49년을 운영한 범천의원 3층에서 자랐다.  
 
안철수 후보의 유년시절

안철수 후보의 유년시절

어린 철수는 숫기없는 아이였다.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기보다 병아리나 토끼와 놀기를 즐겼다. 동생이 실수로 키우던 병아리를 밟아 날개가 부러졌다. 아들이 너무 슬퍼하자 부친이 병아리 깁스를 해줬다.  
 
철수는 만화에서 보던 ‘인류를 구하는 과학자’를 꿈꿨다. 눈에 보이는대로 시계ㆍ라디오ㆍ전축처럼 전자제품을 분해해버려 친척들에게까지 요주의 대상이 됐다. 초등학교 성적표엔 수ㆍ우보다 미나 양이 더 많았다. 그런데 학년을 거듭할수록 수직 상승해 부산고 3학년 때 이과 1등을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활자로 인쇄된 것은 메모지까지 읽는 독서습관,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를 집중력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안철수 후보 제공]

안철수 후보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안철수 후보 제공]

고3 철수는 원래 지망이던 서울 공대가 아니라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1980년이었다. “장남이 가업을 이으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다”는 이유였지만 의대 생활도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어릴 때부터 피를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그에겐 만만치않은 하루하루였다. 동물해부를 시작한 본과 1학년때부터는  일상이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학업을 포기할 뻔 했던 적도 있었지만, 82년 하숙집 친구의 애플 컴퓨터를 처음 접하면서 인생의 탈출구가 열렸다.  
 
 
 
② 컴퓨터 백신 무료 배포하다 안랩 창업자로  
 
1988년 7월 서울의대 박사과정일 때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감염되는 ‘C브레인 바이러스’가 유행했다. 자신의 컴퓨터를 직접 진단해보니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틀 밤을 매달려 치료법을 개발해 배포했다. 이때부터 7년 간 ‘낮엔 의사, 밤엔 컴퓨터 바이러스를 백신 개발자’로 백신 무료 배포 일을 계속했다. “사람을 고치는 의사로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일이 나한테 꼭 맞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한다는 데 만족과 보람도 느꼈다”고 그는 말한다.
1991년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당시 컴퓨터 통신을 통해 배포한 치료법에 ‘백신Ⅲ’로 명명한 게 V3의 시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91년 2월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당일 아침까지 미켈란젤로 백신에 매달려 PC통신에 업로드하느라 아내(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인사도 못하고 입대했다”고 한 게 2012년 대선 때 일부 논란이 됐다.    
 
안 후보와 부친 안영모씨, 딸 설희양, 모친 박귀남씨, 부인 김미경 교수.[안철수 후보 제공]

안 후보와 부친 안영모씨, 딸 설희양, 모친 박귀남씨, 부인 김미경 교수.[안철수 후보 제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기승을 부렸던 건 같은 해 4월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에 안랩 측은 “입대 당일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원형인 스톤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고, 넉달 뒤 군의관에 임관해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배포했다”고 해명했다. 서울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 교수는 “남편이 PC백신 개발에 몰두하느라 입영 날짜도 얘기해주지 않아 함께 입대하는 다른 선배들에게 들었다”고 했다. 군의관에서 제대한 이듬해 안철수는 의사 10년 생활을 접었다. 95년 3월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전신)를 창업했다.  
 
③ 안랩 CEO 사임, 청춘콘서트가 만든 안철수 현상  
 
안랩 초창기 벤처기업인의 삶은 고달팠다. 개인에겐 무상 배포되는 V3를 굳이 돈을 주고 사려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 월급을 마련하느라 매달 은행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일상이었다. 김미경 교수의 월급도 직원 월급에 써야 했다. 1999년 4월 체르노빌 바이러스 사태로 전국에서 30만대 이상 컴퓨터가 일시에 먹통이 된 게 도약의 계기가 됐다. 연 10억~20원을 머물던 매출이 그해 100억원을 돌파했다. 2001년 9월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2011년 4월 충남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안철수 후보 제공]

2011년 4월 충남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 [안철수 후보 제공]

 
정치권도 안철수를 주목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들어 비례대표 의원이나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제안 받았지만 고사했다. “당시 정치를 잘 할 자신이 없고 ‘힘’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는 이유였다. 대신 2005년 3월 안랩 창립 10주년을 맞아 돌연 CEO직을 사임하고 부인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어대학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과정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2008년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거쳐 2011년 5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됐다. 그해 5~9월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법륜스님과 함께 아픈 청춘을 위로하려 만든 청춘콘서트는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2011년 9월 지지율 50% 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인 그가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 시장에 후보직을 양보하자 다음날 그는 대선 지지율 1위 후보로 바뀌었다. 소위 ‘안철수 현상’이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011년 9월 9일 경북대 청춘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011년 9월 9일 경북대 청춘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④ “안철수의 시간 시작됐다” 교과서 철수에서 강철수로 변신  
 
안철수는 2012년 9월 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문재인 후보에 양보하며 주저앉고 말았다. 안철수 현상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두 번(서울시장과 대선 출마)의 양보에 빗대 ‘간(간보는) 철수’‘또 철수’라는 비아냥도 들끓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2011년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직후 박원순 후보와 포옹하는 모습.[중앙포토]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2011년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직후 박원순 후보와 포옹하는 모습.[중앙포토]

대신 안철수는 뚜벅 뚜벅 한 걸음씩 자기 길을 갔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 탈당→2016년 2월 국민의당 창당에 이어 20대 총선에서 3당체제(38석)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 교과서에까지 등장했던 ‘모범생 철수’는 강(强)철수, 독(毒)철수로 변했다. 지난해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이 ‘분열세력’이라고 자신을 공격하며 야권통합을 제안해오자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면서 버텼다. 문재인 후보 측에서 “안 후보가 지난 대선때 적극적으로 돕지 않아 졌다”고 하자 그는 “후보를 양보한 것만 해도 고마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그런 말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독기서린 반격을 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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