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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보통사람' 오연아, 이 배우의 존재감

중앙일보 2017.04.04 18:00
어떤 영화 안에서 한 배우가 발휘하는 존재감은 결코 출연 분량에 비례하지 않는다. ‘보통사람’(3월 23일 개봉, 김봉한 감독)의 오연아가 그렇다. 그는 ‘보통사람’에서 1980년대 신문사 사진기자 박선희를 연기한다.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웠던 그 시절, 선희는 기자로서 사명감을 잃지 않았던 선배 추재진(김상호)을 존경하고 따르는 인물이다. “캐릭터에 점차 동화되면서 분량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는 오연아. 그는 소신 있는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적은 분량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영화는 재진의 입을 통해 “보통 사람으로, 상식이 통하는 시대에 살고 싶다”는 주제를 전한다. 하지만 그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은, 재진이 아니라 그를 따르던 선희다. “기자로서 사명감을 잃지 말라”는 재진의 가르침을 받은 선희는, 진실을 위해 억울하게 죽은 재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고, 정의와 시대정신으로 시위 현장 의경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넨다. 보통 사람의 힘이 세상을 바꾸던 그때, 굳게 다문 입술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선희의 얼굴이 긴 여운을 남긴다.
배우 오연아 / M 207호 / 사진=라희찬(STUDIO 706)

배우 오연아 / M 207호 / 사진=라희찬(STUDIO 706)

손현주가 인터뷰에서 “오연아를 꼭 눈여겨보라”고 극찬하더라. 

“TV 드라마 ‘시그널’(2016, tvN)을 본 손현주 선배가 ‘오연아에게 연락해 보라’고 김봉한 감독님께 말씀하셨단다. 그 덕분에 김 감독님을 만나게 됐고, ‘보통사람’에 캐스팅됐다. ‘아수라’(2016, 김성수 감독)도 정우성 선배 추천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희한하게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제 막 열심히 활동하는 단계라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손현주 선배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 감독과 꽤 여러 차례 미팅을 했다고 하던데. 

“첫 미팅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나갔다. 그랬더니 만날 때마다 하나씩 주문하시더라. ‘다음에는 속눈썹 붙이지 말고 나와라’ ‘머리카락을 묶었으면 좋겠다’ ‘평소 모습을 보고 싶다’ 등등(웃음). 여러 모습을 보신 후, 내게 ‘함께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극 중에서는 거의 맨 얼굴로 출연하던데. 얼굴의 반을 덮는 1980년대 스타일 안경도 잘 어울리더라. 

“의상과 헤어스타일 선택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안경도 100여 개 중에서 고심 끝에 고른 거다. 당시 사진·영상 자료를 보면서 촬영 직전까지 의상을 점검했다.”

 
시나리오보다 출연 분량이 늘어났다고. 

“내가 맡은 캐릭터와 나의 비슷한 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김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며, 내 안의 선희를 끄집어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선희라면 이 장면에서 어떻게 했을까’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연 분량이 늘었다. 김 감독님 역시 극 중에서 재진과 선희의 끈끈한 정(情)이 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보통사람

보통사람

-재진 역을 맡은 김상호와 친해지는 게 중요했겠다.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영화인) ‘소수의견’(2015, 김성제 감독)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국민참여재판을 많이 보러 다니며 애드리브 소스를 얻기도 했다. 이번 영화는 공부하기보다 감정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김상호 선배와 친해지는 일이었다. 우리 둘이 친해질 수 있도록 손현주 선배가 술도 많이 사 주셨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역시 술자리만한 것이 없나 보다. 

“후배인 나에게는 술자리가 배움의 장소였다. 김상호 선배는 캐릭터에 깊게 빠져서 정말 그 사람이 된다. 술자리에서도 재진이 선희에게 이야기하듯 말씀하셨다. 당시 기자들의 억울함이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선희의 마음으로 김상호 선배를 바라보게 됐다.”

 
간접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 본 소감은. 

“솔직히 힘들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개인적으로 살았더라. 나라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그런 큰 틀에 대해 잘 몰랐다. 그 시절을 소신 있게 살았던 사진기자를 연기해야 하는데, 내 안에 그만큼의 열정이 불타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몰랐던 선희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선희는 정치·사회에 대해 아무런 개념과 상식을 갖고 있지 않던 인물이다. 그러다 재진 선배를 존경하게 되면서 진정한 기자로 거듭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나도 ‘왜 저들이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내는지, 왜 우리가 대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점점 선희에게 동화됐다.”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아도, 임팩트가 강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죽은 재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을 찍기 전, 술자리에서 김상호 선배가 이런 말을 해 주셨다. ‘내가 고문당해 누워 있다면, 나를 따르던 후배인 너는 아파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재진 선배가 살아 있다면 분명 ‘선희야, (사진을) 찍어! 찍어서 알려라. 지금은 아파할 때가 아니란다. 기자는 아파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을 거라 생각했다.”

 
원테이크 장면이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김상호 선배가 숨을 참느라 엄청 힘들어하셨다. 사실 누워 있는 김상호 선배의 모습이 카메라에 함께 찍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본인이 숨을 쉬면 내 연기에 방해가 된다면서, 1분 30초 넘게 숨을 참으시더라. (자연스러운 감정 연기를 위해) 김 감독님은 카메라 리허설에 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그날은 촬영 시작 전, 김상호 선배와 나는 만날 수도 없었다. 부검대 위에 누운 김상호 선배의 모습을 처음 보는데, 저절로 감정이 생겨 ‘눈물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눈물 트라우마라니. 

“한동안 우는 연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지문에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적혀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눈물이 나지 않더라. 김 감독님은 아예 시나리오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를 지우셨다. 내 감정이 가는 대로 연기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눈물이 나더라. 대체 무슨 청개구리 배짱인지 모르겠다(웃음). 예전에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사람’을 통해 선배에게 의지하는 법, 다른 사람과 감정 나누는 법을 배웠다. 이제 잘 운다.”

 
의경에게 카네이션을 주는 마지막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과거 영상을 보는데, 기자들이 ‘촬영’이라 적힌 완장을 차고 사진을 찍더라. ‘나는 시위대가 아닌 기자’임을 보여 주는 거지. 그런데 극 중에서 선희는 완장을 차지 않는다. 선희는 그 시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감독님과 선배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그 장면을 급히 넣게 됐다. ‘우리가 한 곳을 바라보는 순간, 다른 한쪽을 놓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자’는 의미로.”

 
제대로 얼굴을 알린 ‘시그널’부터 영화 ‘소수의견’ ‘아수라’, TV 드라마 ‘굿와이프’(2016, tvN)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 SBS), 최근 종영한 ‘피고인’(SBS) ‘보이스:놓치지 말아야 할 소리’(OCN), 현재 방송 중인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2016~, MBC)까지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쉼 없이 활동 중인데. 

“나는 캐릭터를 고르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비슷한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이 힘들지, 경험한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 1년간은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작품을 거의 다 하고 싶다. 이런 뜻은 소속사에 전한 상태다. 그동안 줄곧 연기에 갈증을 느꼈거든.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난다.”

 
2008년 ‘추격자’(나홍진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감독)으로 데뷔했다. 올해로 10년 차 배우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처음에는 겁이 하나도 없었다. 모르니까 그냥 즐겼다. 그러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으니 솔직히 무섭더라. 그때 이런 말을 들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에게는 극기 훈련을 시킨대. 귀신의 집에 보내고, 무서운 놀이 기구도 태우는 거지. 무서운 것을 경험한 선수들은 시합에서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즐기지.’ 나도 무서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두렵거나 긴장되는 상황을 즐길 만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배우로서 이 순간을 더 열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지.”

 
오연아를 각인시킨 세 가지 장면
1‘시그널’ 
사이코패스

시그널 오연아(사진=TVN)

시그널 오연아(사진=TVN)

간호사 윤수아 오래전 돈 때문에 여자아이를 유괴하고 살해한 수아. 그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눈앞에 두고 붙잡힌다. 하지만 심문 과정에서 경찰이 자신을 잡아들일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순간 수아는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섬뜩한 말투로 “못 찾았구나,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며 형사들을 조롱한다.


2‘소수의견’
국민참여재판 전담 검사 유인하 
소수의견

소수의견

강제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한 진실 공방이 펼쳐진 국민참여재판 첫날. 인하는 배심원단을 향해 “식사는 하셨습니까”라는 예의 바르지만 얄미운 인사를 전한다. 또한 증인으로 나온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에게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은 서울대 의대에서 법의학을 전공했다”며 학벌주의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3‘굿와이프’
얄미운 푼수 변호사 이수현 
굿와이프(사진=TVN)

굿와이프(사진=TVN)


임신 18주차에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인 여성의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수현. 그는 만삭의 몸으로 재판 내내 상대측 약점을 찾아 쏘아붙이며 상대 변호사의 기를 죽인다. 그리고 ‘임산부’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이 불리해지면 재판 중간중간 진통을 호소해 시간을 벌기도 한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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