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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숨은코드 읽기]'바둑 4단' 文의 포석…洪 ‘팻감’으로 활용해 安 ‘단수’ 몰기

중앙일보 2017.04.04 15:55
정치를 흔히 바둑에 비유한다. 선거구도를 만드는 치열한 수싸움이 바둑과 유사하다. 특히 5ㆍ9 대선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아마4단의 실력을 갖춘 고수다.
문재인 후보는 아마4단의 바둑 고수다.

문재인 후보는 아마4단의 바둑 고수다.

 
3일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문 후보는 안 후보와의 맞대결에 앞선 포석(布石)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대선 패배를 복기(復棋)해 만들어낸 문 후보의 전략은 안 후보를 꺾기 위한 ‘단수(單手)’와 이를 만들기 위한 ‘팻감’으로 요약된다.
 
◇안철수 겨냥한 ‘단수’=바둑에서 단수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완전히 둘러싸이기 전 상태’를 뜻한다. 장기의 ‘외통수’와 비슷하다.
 
문 후보는 3일 “나와 안 후보의 양자구도가 된다는 것은 안 후보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대표하는 단일후보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구 여권 정당들과 함께하는 후보라면 바로 적폐 세력들의 정권연장을 꾀하는 후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가 4일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그의 말은 20% 남짓의 지지율로 ‘미생(未生·돌이 완전히 살아있지 않음)’ 상태인 안 후보가 단일화를 통한 ‘완생(完生)’으로 대세론을 위협하는 국면이 전개되는 걸 경계하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속내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까지 모두 출전하는 ‘다자대결’로 몰고가자는 데 있다는 의미다.
 
문 후보는 현재 40%를 넘나드는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상의 ‘고정 지지층’이다. 지지율이 일정하기 때문에 문 후보는 여러 후보가 출마해 표를 나눠가질 수록 유리해진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4일대전 한밭체육관에서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까지 포함된 ‘5자 대결’은 문 후보 43%, 안 후보 22.7% 순으로 나타났다. 홍준표 후보를 포함한 ‘3자 대결’에서도 문 후보는 46.1%를 확보해 지지율 변화가 없었다. 반면 양자대결에선 변수가 생긴다. 지난달 29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문재인ㆍ안철수 후보의 양자대결 결과는 41.7% 대 39.3%였다.
 
문 후보측의 핵심 관계자는 “원내 39석의 국민의당이 국정을 운영하려면 한국당(93석)과 바른정당(33석)과 연대해 의미있는 의석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폐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집중 공격해야 한다”며 “안 후보는 국민의당 자력으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폐청산 프레임에 막혀 다자대결로 가는 자강론을 펴는 ‘단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는 이날 충남대 강연에서 “여러 차례 누구를 반대하기 위한 공학적 연대에 반대하고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누차 말씀드렸다”며 “문 후보가 (정치공학적 연대를) 가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허깨비를 만들어 허깨비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홍준표는 키워주는 ‘팻감’=안 후보를 단수에 빠드리는 전략의 핵심은 ‘팻감’의 활용이다. 바둑에서 팻감은 ‘큰 패(覇)싸움을 벌이기 위해 한 번 다른 곳에 두는 수’를 뜻한다. 문 후보에게 이번 대선 구도의 팻감은 한국당 홍준표 후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4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구미=프리랜서 공정식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4일 경북 구미시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구미=프리랜서 공정식

 
홍 후보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문 후보를 맹공격해왔다. 그의 공격은 막말의 경계를 오르내릴 정도로 강력하다.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문 후보의 집권은 ‘뇌물정권 2기’”이라는 식이었다. “TV토론에서 붙으면 10분만에 (문 후보를) 제압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다 한국당 후보로 확정된 뒤부터는 포문을 안 후보에게로도 열었다. '얼치기 좌파'라면서다. 보수층을 총결집시켜 문 후보와 ‘보혁대결’을 꾀해보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문 후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캠프 내부에선 “굳이 막말에 반응하며 홍 후보를 키워줄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 홍 후보가 “문 후보는 세월호 사건을 일으킨 유병언의 파산관재인을 맡았다”는 허위주장을 한 뒤부터 반격을 펴기 시작했다. 홍 후보가 한국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시점부터였다. 그러나 문 후보 측의 반격은 문 후보 본인이 아닌 대변인 또는 부대변인 논평으로 이뤄졌다.
 
이는 ‘상대가 강한 곳에선 가볍게 두라’는 유명한 바둑격언을 연상시키는 대응이었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적폐세력을 대표하는 홍 후보에 대해 굳이 문 후보가 직접 언급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후보 선출 뒤 첫 행보로 찾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후보 선출 뒤첫 행보로 찾은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문 후보로선 바둑으로 치면 안 후보와의 싸움이 ‘대세점(大勢點)’이다. 이 싸움을 바둑에서 말하는 '꽃놀이패'로 만들기 위해선 홍 후보가 필요하다.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정치학)는 “홍 후보가 지지율을 높여야만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어려워진다”며 “문 후보 입장에선 홍 후보가 보수 지지층을 총결집시켜 안 후보의 중도ㆍ보수로의 확장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반문 단일화’를 통한 위협을 타개(打開)하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홍 후보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바둑으로 치면 안 후보의 연대를 막기 위한 ‘팻감’인 셈이다.
 
문 후보는 이날 후보 확정 이후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 역시 안철수ㆍ홍준표 후보를 묶어 놓고 자신은 중원의 ‘대마(大馬)’를 잡기 위한 수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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