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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대가 말하는 대한민국 교육ㆍ저출산 현실은...

중앙일보 2017.04.04 15:46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 전후 풍경. 귀가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늦은 시간이지만 거리는 붐빈다. [중앙포토]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 전후 풍경. 귀가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늦은 시간이지만 거리는 붐빈다. [중앙포토]

"학교에선 사교육 시키지 말라 얘기하지만 이미 아이들 수준이 높아져 있어요. 그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가야 하는데, 못 하면 자기가 뒤처진다고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46세 여성·딸 둘 워킹맘)

결혼도 학력주의 연장선...대학생의 기대 배우자는 최소 '대졸'
자녀 수보다 질 중시, 주변과 비교돼 '아이 낳지말자' 이야기도
'올인'하는 한자녀 가정, '사면초가'거나 '일거양득' 다자녀 가정
"아이 많은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함께 성숙해져"


"공부는 작은 아이보다 큰 아이를 먼저 시키는 거 같아요. 그러면 이제 둘째가 따라오고 보면서 '엄마, 나는?' 이런 질투심도 많이 생기고. '나 할 거야' 오는 경우도 많아서 대부분 둘째 아이는 거저 키운다는 게 있죠."(36세 여성·딸 하나, 아들 하나 전업맘)


자녀를 둔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부모가 흔히 하는 생각들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결혼-출산-양육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특히 아이가 많은 집일수록 교육이 갖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아이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감정 때문에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기도 하지만, 양육 과정서 적은 투자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미혼 남녀 25명과 예비 신혼부부 3커플, 유자녀 부모 12명을 익명으로 심층 인터뷰한 보고서를 4일 공개했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과 저출산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이들 20~40대의 목소리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신랑과 신부가 부케를 잡고 있는 모습. 한국 사회에선 결혼도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앙포토]

신랑과 신부가 부케를 잡고 있는 모습. 한국 사회에선 결혼도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앙포토]

 
#결혼
"저는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제 능력은 안 되고...전셋집 구할 정도의 돈은 모아놔야 하지 않나. 근데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일만 하다가 죽을 것 같아요."(25세 남성·항공물류관리직)


 '교육 공화국'은 출산에 앞서 결혼부터 쉽지 않다. 미혼 남녀는 고학력을 통해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이는 취업·결혼 연령의 상승을 가져오고 연쇄적으로 저출산을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미혼의 고학력 여성들은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느낀다.
 
"결혼과 직장, 두 가지를 양립하기 어렵다면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면 '가보지 않은 길'보다 '내가 예측할 수 있는 현재 직장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좀 더 현실성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30세 여성·대학 연구직)


 교육열에 따른 '학력주의'는 결혼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생들이 기대하는 배우자의 학력은 최소한 대졸. 전문대졸도 아니라는 응답이 많았고, 학벌이 비슷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 그런 대학이 있어'라고 하는 대학보다는 선호하지 않더라도 '그런 대학은 있어'라고 하는 대학을 최소한 나왔으면 좋겠어요."(21세 남성·대학생)


"학력은 웬만하면 엇비슷했음 좋겠어요. 왜냐면 친척 분들도 그걸 보실(거 같아요). 주위 시선 때문에 그런 걸 약간 의식할 수 있는 거 같고."(21세 여성·대학생)


특히 미혼 남성은 노골적으로 학력을 배우자의 조건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맞벌이 여성'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말 서울 중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말 서울 중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저출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뉴시스]

 
#출산
한국의 교육열은 결국 자녀의 수(quantity)를 질(quality)로 대체하려는 의지로 이어진다. 자녀 수는 부모의 기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소 자녀에 최대 지원'이란 선택이 이뤄질 개연성이 크다. 그러면 자녀의 출산 조건은 경제력, 특히 사교육비 부담이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원래 꿈꿨던 추가 출산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제가 오남매거든요? 의지하고 사는 게 나쁘지 않거든요. 저는 3명 낳고 싶었어요. 그런데 경제력이 딸려서 안 되더라고요. 둘째 태어나고 4세 되고부터 식비고 교육비고 나가는 게 눈에 보이니까..."(36세 여성·딸 하나, 아들 하나 전업맘)


 주변의 가족을 돌아보면 현실은 더 괴롭다. 유아 때부터 명문대 진학 등 '로드맵'이 갖춰져 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쓰고 있는 집을 보면 둘째까지 낳아 교육시킬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아이 친구는 훨씬 바빠요. 매일 영어유치원 가고 또 오후에 새끼학원이라 해 가지고 영어 학원을 또 간대요. 그러면 어떻게 둘째를 낳아요..."(41세 여성·아들 하나 전업맘)


행복한 미래를 꿈꿔야 할 신혼부부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모습, 명문대 진학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교육 현실에 '아예 자녀를 낳지 말자'는 대화를 하곤 한다.

"우리나라는 대학도 스카이...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공부해서 합격하고 그 다음에 또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29세 여성·신혼부부 아내)
"어차피 애가 그렇게 고생할 거라면 세상의 더러운 꼴을 보여줄 필요가 뭐가 있겠냐고. 애를 굳이 안 낳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30세 남성·신혼부부 남편)

스케치북에 'NO'라고 쓰는 여자아이의 모습. 교육 문제는 한 자녀를 키우는 가정과 두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의 양육 방식도 구분시킨다. [중앙포토]

스케치북에 'NO'라고 쓰는 여자아이의 모습. 교육 문제는 한 자녀를 키우는 가정과 두 자녀 이상을 둔 가정의 양육 방식도 구분시킨다. [중앙포토]

 
#양육
교육 문제는 한 자녀만 키우는 가정과 두 자녀 이상을 키우는 가정의 양육 방식을 갈라놓는다. 자녀가 한 명인 집에선 아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올인'하는 투자가 이뤄진다. 부모의 역할은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절대 조력자가 된다.
 
"경제적 지원이라고 한다면 능력이 있는 한 계속이라고 생각하구요.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니겠지만 아이가 정확한 플랜과 비전을 보인다면 적극 지원할 거 같아요. 파트너나 투자자의 개념이 아닐까합니다."(45세 여성·딸 하나 전업주부)


그러다보니 한 자녀 부모들은 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기준도 ‘최고와 명품’을 추구하게 된다. 좀 더 좋고, 좀 더 비싼 곳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아이가 5세 때는 사설 유치원에 보내다보니까 특활비까지 들어가면 60만원 정도. 그 다음에 집에서 홈스쿨링했던 거까지 하면 아이한테 들어갔던 비용이 한 80에서 100은 썼던 거 같은데요."(37세 여성·아들 하나 워킹맘)


반면 두 자녀 이상인 집은 전반적으로 보육·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양질의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성비’를 중시한다. 경제력을 감안해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는 등 사교육비를 최대한 줄이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명문대 진학,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앞서가는' 부모들을 보며 다자녀 부모들은 '내 아이만 뒤처지면 어떡하나'란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고 심리적 압박을 갖는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위축된 부모들은 불안감이 높아지는 동시에 자녀들을 충분히 지원해 주지 못 하는 미안함, 죄책감이 더해진다.


"내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다는 거를 다 시킬 수도 없는거고...엄마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스트레스 받아요, 솔직히. 저건 꼭 시켜야 되는데...돈은 없고, 어떡하지? 고민에 빠지는거죠.”(35세 여성·아들 셋 전업맘)


저출산과 교육 들여다보니
 
다만 양육 경험은 다자녀 가구가 더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아이에게 집중하며, 전업주부는 부모와 자녀가 '동시간대'를 보내게 된다. 육아가 즐겁기보단 '힘든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랑 저랑 한글 쓰기를 해 보는데 규칙적으로 안 되더라고요. 애도 스트레스. 그런 학습을 하면서 힘든 거는 '바르게 앉아라'. 그래야지 글씨도 어떻고 잔소리가 많이 돼서. 요즘에 그게 힘든 것 같아요."(41세 여성·아들 하나 전업맘)


반면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는 대체로 첫째에게 집중하면서 키우다보면 둘째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 같다는 양육 경험을 이야기한다. 한정된 자원 범위 내에서 최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 자녀 이상인 가구는 경제적 지원을 충분히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자녀들간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놀이를 통해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정서와 사회성을 키우는 과정이 나타난다.
 
"형제들이 잘 지내는 거 같아요. 아...갑자기 웃음이 나오는데. 막 엄청 싸우고, 잘 놀고, 화해하고, 안아 주고...그러더라구요."(35세 남성·아들 셋 회사원)


여기에다 다자녀 부모들은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함께 성숙해진다는 깨달음도 얻곤 한다. '저출산' 가정에선 모르는, 다자녀 가정만 알 수 있는 장점이다.
 
"아이들 어떻게 키울까? 겁이 났거든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사실은 같이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하고. 저희가 (아이들을) 만들어서 결혼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 키우면서 같이 큰다는 생각을 해요."(41세 여성·아들 넷, 딸 하나 전업맘)


활짝 웃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 다자녀 부모들은 결국 부모도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입을 모아서 강조한다. [중앙포토]

활짝 웃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 다자녀 부모들은 결국 부모도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입을 모아서 강조한다. [중앙포토]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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