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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끝맺음

중앙일보 2017.04.04 03:33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스토리가 있는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장르에서는 결말이 분명하다. 보통 주인공들의 행방으로 그 결말이 결정된다. 주인공들은 죽거나, 행복한 결합을 하거나, 소원을 성취하거나, 악을 무찌르고 승리한다. 스토리와 주인공이 없는 기악곡의 경우는 끝맺음이 쉽지 않다. 그래도 기승전결의 느낌, 특히 부족함 없는 완결의 느낌은 필요하므로 작곡가는 이런저런 장치를 사용해 곡을 끝맺는다. “아, 이제 곡이 끝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 그리고 청중의 예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즈음에 곡을 끝내는 것은 감상자들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곡을 듣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없고 예기치 못한 때 느닷없이 곡이 끝나는 것처럼 허탈한 일도 없다.
 

종결구의 의미는 곡의 존재 기반 재확인하는 것
이번 사태 종결에 ‘상식과 정의’의 화음 울리길

청중에게 결말을 예상케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끝남을 알리는 화음 진행을 몇 번 강조해 들려주는 것이다. 이것을 종지형이라고 하는데 딸림7화음과 으뜸화음(혹은 이 앞에 버금딸림화음을 덧붙인) 진행의 반복이다. 말로 “짠-짠, 짠-짠, 짠-짠, 짜자안-” 해도 웬만한 이들은 감이 잡히는 기본화음의 상투적인 표현이다. 어떤 작곡가들은 종지형을 좀 더 늘려 종결구를 만들기도 한다. 분석해 보면 이것은 종지형의 화음을 반복하면서 그 위에 ‘끝내주는’ 선율을 얹은 것이다. 종지형이나 종결구의 의미 혹은 목적은 분명하다. 그 곡의 조성, 즉 그 곡의 존재 기반을 확인·재확인하는 것이다.
 
종지형과 종결구라고 아무 때나 나와서 사람들에게 끝맺음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앞서 충분히 곡의 진행을 거쳐서 이제 끝나도 좋겠다는 기대감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를 만들어 주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긴장감의 고조와 이완이다. 우리 음악에는 ‘조임과 풂’이라는 매우 적절한 용어가 있는데, 이에 의하면 음악은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긴장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서서히 풀어 이완의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대체로 더 빠른, 더 강한, 더 격렬한 가락과 장단을 더 복잡하고 더 혼란스럽게 엮음으로써 음악을 조이고 그 반대를 함으로써 푼다.
 
근대 이후 서양 음악에서 즐겨 사용했던 장치로 ‘조성의 일탈과 회귀’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음악은 조성이 벌이는 일종의 여행 혹은 가출이다. 음악이 시작되면 조성은 원래의 집(으뜸조)을 나와 어디론가 떠난다. 이 떠남은 소풍이기도 하지만 고난이기도 하다.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이 방황은 계속된다. 방황의 끝에 으뜸조로 돌아오는데 회귀라고는 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회귀한 조성은 과거의 그것이 아니라 일탈과 고난을 통해 거듭난 조성이다.
 
곡의 규모가 커지고 다루는 음악의 내용이 깊고 복잡해지면서 작곡가들은 종지형이나 종결구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규모 있는 종결 부분을 발전시켰다. 코다(꼬리라는 뜻)라고 부르는데 작곡가들은 여기서 앞에 나왔던 여러 주제를 회상하기도 하고 강조하기도 하며 종합 혹은 요약하기도 한다. 워낙 길고 파란만장한 곡이라면 이러한 장치가 곡 전체를 다시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극이나 음악 작품에서는 끝맺음이 꼭 있지만 인간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월의 표현을 빌린다면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간다고 흘러도 연달아” 흐르는 것이 역사의 강물이다. 우리가 기승전결을 가려내서 ○○사건, ○○스토리라고 따로 떼어 부르는 것은 우리의 시야와 기억이 삶의 파노라마를 통으로 보고 다룰 만큼 넓고 크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지난주 한 여인이 구치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한 드라마 혹은 한 역사가 그 결말에 이르렀음을 느낀다. 그간의 혼란이 점점 정돈되면서 ‘조임에서부터 풂’으로 진행한다는 느낌, 일탈과 방황의 끝을 지나 조성이 원래의 집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코다가 있을까?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가 혹 코다에 해당되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오히려 앞강물을 따라가는 뒷강물의 시작일 게다. 어쨌거나 나는 이 끝맺음에서 우리 삶의 존재 기반을 확인해 주는 기본화음의 종지형이 “짠-짠, 짜짜안--” 하고 우렁차게 울렸으면 좋겠다. 상식과 정의라는 기본화음이.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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