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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전두환·이순자 부부 회고록 후폭풍

중앙일보 2017.04.04 03:31 종합 29면 지면보기
최경호내셔널부 기자

최경호내셔널부 기자

전두환(86) 전 대통령 부부가 최근 잇따라 출간한 회고록 때문에 광주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돼 온 당사자 측이 자신들을 ‘5·18 희생자’로 표현해서다.
 
전 전 대통령은 3일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자작나무숲)에서 자신을 ‘5·18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 됐다’고 표현했다. “5·18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대통령이 된 게 원죄가 됨으로써 십자가(제물)를 지게 됐다”고도 주장했다. 자신이 5·18 직후 대통령이 됨으로써 5·18을 치유하는 희생양이 됐다는 의미다.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78)씨가 지난달 24일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란 책도 5월 광주 피해자들에게 생채기를 남겼다. 이씨는 이 책에서 “우리 내외도 사실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5·18의 책임과 당시 발포 명령자가 전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씨는 80년 당시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하야한 최규하 대통령의 퇴진에 대해서도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줄 것을 권유했다”고 서술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 전 대통령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부창부수(夫唱婦隨) 격으로 나란히 회고록을 발간해 ‘광주 진압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자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5·18에 대한 반성은커녕 회고록을 출간해 책임을 회피하고 나선 데 대해 “가해자들이 자서전을 통해 5월 영령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는 원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 부부의 주장은 80년 이후 진상 규명과 검찰 조사는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대목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5·18과 12·12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1997년 4월) 당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수차례 표현한 것도 5월 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변명록을 써 놓았다”는 지적이다.
 
5월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 부부가 잇따라 책을 출판한 시기와 배경을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구속으로 우익세력이 결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회고록은 내란 살인 범죄자의 거짓망발”이라며 “5·18 당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이제 범죄 회피까지 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5·18 영령들을 또 한번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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