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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 … “삼수는 없다”

중앙일보 2017.04.04 03:10 종합 4면 지면보기
문재인

문재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스스로를 ‘고구마’에 비유한다. 경쟁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톡 쏘는 ‘사이다’ 발언으로 각광을 받자 그는 “사이다는 시원하지만 고구마처럼 속을 든든하게는 못한다”고 응수했다. 이 한마디에 문재인 정치가 추구하는 핵심이 담겨 있다.
 

문재인 라이프 스토리
경남고 수석 입학, 사법연수원 차석
노동자 돕는 재야 인권 변호사로
80년대 후반 안기부의 시찰 대상

◆흥남철수와 호송차 틈으로 본 어머니=문재인은 1953년 거제도에서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미군선을 탔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인 ‘흥남철수’ 때였다. 그는 부산 명문 경남고(25회)를 수석 입학했다. 하지만 술·담배에 손을 댔고 싸움을 하다 정학도 당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72학번)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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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준비 대신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로 송치되던 날 호송차 철망을 통해 어머니를 봤다. 나를 보고 막 뛰어오며 손을 내미는데 차는 점점 멀어져 가고…”라고 회상했다. 석방되자마자 강제징집됐다.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이었다. 제대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시위로 구속됐다. 2차 시험 합격증은 그래서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3차 면접 시험을 앞두고는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이 “데모할 때와 생각이 같은가”라고 물었고 고심 끝에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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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m 크레인 오른 인권 변호사=희망했던 판사가 되지 못했다.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82년 부산으로 낙향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을 만났다. 변호사 노무현이었다. 80년대 후반 부산에선 4명의 재야 인권 변호사가 안기부의 요시찰 대상이었다. 김광일·이흥록·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이었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잘 모르거나 돈이 없어 애태우는 근로자를 돕고자 한다. 상담료는 받지 않는다’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녔다.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농성 때는 82m의 크레인 꼭대기까지 올라가 변론했다. 주변의 만류에 “거기에 노동자가 있고 나더러 도와 달라 하는데 가봐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검은 봉투에 속옷만 싸서 상경한 민정수석=그가 중앙 무대에 데뷔한 건 2002년 대선 직후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정수석으로 끝낸다”는 조건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검은 비닐 봉투에 속옷·양말만 싸 들고 상경했다. 하지만 총선 출마 압력을 받자 1년 만에 청와대를 나왔다. 그러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접한 대통령 탄핵 소식에 변호인단 간사로 돌아왔다. 2007년에는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됐다. 그 사이 스트레스로 치아 10개를 뽑았다.
 
2009년 5월. 문재인은 노무현 국장(國葬)의 상주였다. 국장에 참석한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게 백원우 전 의원이 “여기가 어디라고…. 사죄하시오”라고 외치다 끌려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MB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닥치고 정치』에서 “타고난 애티튜드(Attitude·태도)의 힘을 느꼈다”고 적었다.
 
 
◆최다 득표 낙선=대선을 앞둔 2011년 그는 노무현을 향해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습니다”라고 고백한 후 정계에 입문했다. 2012년 총선(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됐다. 18대 대선에선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 끝에 단일 후보로 나섰지만 역대 당선자를 능가하는 득표(1469만 표·48%)를 하고도 낙선했다. 문재인은 대선 패배의 반성문 격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노무현을 넘어서는 것이 그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가 탈당한 상태에서도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문재인은 어느덧 대세 주자로 떠올랐다. 그는 “새 시대의 첫차가 되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쓴다. 스스로 “삼수는 없다”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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