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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내 무상교육 추진 … 아베의 포퓰리즘?

중앙일보 2017.04.04 02:15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 3월 기자회견 중인 아베 총리. [AP=뉴시스]

지난 3월 기자회견 중인 아베 총리. [AP=뉴시스]

“원한다면 누구나 고등학교·전문대·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국회 시정연설)
 

총리 직속팀 꾸려 ‘교육국채’ 검토
일각선 “장기집권 위한 표심 잡기”
유치원~대학까지 무상교육 하려면
50조~60조원 필요 … 재무성도 우려

지난 4년간 아베노믹스로 일본 열도를 달군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총리가 이번엔 ‘무상교육’ 카드를 꺼냈다. 이른바 ‘교육국채’ 구상이다. 당장 돈 나올 곳이 마땅치 않으니 빚을 내서라도 무상교육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현재도 일본의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배가 훌쩍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독한 ‘교육 포퓰리즘’이다.
 
교육국채 발안자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자민당 간사장 대행(전 문부과학상)이라고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최근 전했다. 지난 연말 시모무라 대행이 총리 관저를 찾아가 아베 총리에게 교육국채 안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역시 (무상교육) 재원론은 중요하다”며 맞장구를 쳤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이후 총리 직속 특명팀(T/F)이 꾸려졌고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선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의무 무상교육을 실시 중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고교 무상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데 5조~6조엔(약 50조~60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의 올해 방위비 예산(5조1251억 엔)에 맞먹는 규모다.
 
닛케이에 따르면 교육국채의 성격은 도로 등을 짓기 위해 발행해온 건설국채와 비슷하다. 건설국채 도입의 논리는 “장래 세대도 사용하는 도로 건설인 만큼 반드시 현 세대의 세금으로만 지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논의를 교육으로까지 확대한 셈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재정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막대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통계로만 따져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47% 수준이다. 급기야 지난 연말에는 사상 최고치인 1066조4234억 엔(약 1경670조원)을 기록했다. 석 달 새 늘어난 빚만 3조8488억 엔(약 38조5000억원)이다.
 
제1야당 민진당도 비슷한 ‘어린이국채’ 공약
 
일각에선 교육국채를 아베 정권이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위해 내놓은 포퓰리즘 카드로 보고 있다. 사실상 다음 중의원 선거를 겨냥한 표심 잡기용이란 해석이다. 포퓰리즘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동안 자민당의 정책을 교육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온 제1야당 민진당 역시 이름만 다른 ‘어린이국채’ 안을 내놨다.
 
실제 일본 학부모들은 학자금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지난 2월 소니생명보험이 대학생 이하 자녀를 둔 학부모(30~59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교육자금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민당 내에서조차 교육국채에 대한 우려가 높다. 급기야 당내 ‘2020년 이후 경제재정 구상 소위원회’는 다른 방식의 교육 재원 마련안을 지난달 28일 내놨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도록 사회보험료를 올려 재원을 충당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어린이보험’ 안이다. 노동자나 기업으로부터 보험료를 받아 재원을 만들고,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를 키우는 세대에 ‘아동수당’ 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올해 일본의 사회보험료율은 15.275%. 우선 개인 부담과 사업자 부담을 각각 0.1%포인트씩 올리면 약 3400억 엔(약 3조4000억원)의 재원이 나온다. 앞으로 보험료율을 0.5%포인트까지 끌어올려 최종 약 1조7000억 엔(약 17조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어린이보험’은 교육국채에 비하면 재원이 부족해 대학 교육은 제외하고 유아교육과 보육에 재원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교육국채에 부정적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도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어린이보험은 건설적인 안”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담당 부처인 일본 재무성 내에서도 교육국채 발행에 대한 불안감이 높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재무성의 한 간부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일본의 교육지출은 적지 않다”면서 “꼭 해야만 한다면 증세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에 치명적인 증세론을 아베 정권이 취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연내 평화헌법 개헌’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돌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돌파구용 카드로 교육국채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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