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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연애가 곡 쓰는 비결 … ‘널 사랑하지 않아’ 말로는 못했죠

중앙일보 2017.04.04 01:35 종합 22면 지면보기
K팝 히든 프로듀서 ③ ‘어반자카파’ 권순일
어반자카파의 권순일. 

어반자카파의 권순일.

지난 1월 열린 제31회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3인조 혼성그룹 어반자카파가 디지털 음원 부문 본상을 받은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이돌 일색의 가요계에서 댄스·힙합·발라드 등 특정 장르를 무기 삼아 견고한 벽을 뚫고 들어온 적은 있어도 소위 ‘인디’로 분류되는 뮤지션이 본상을 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솔직담백한 노랫말, 웅장한 멜로디
독특한 감성 보컬의 인디 뮤지션
음반 작업 땐 3명이 5곡씩 만든 뒤
함께 들어보며 추리고 보완해 완성

이는 순전히 노래의 힘이었다. 지난해 5월 발매한 미니앨범 ‘스틸’의 타이틀곡 ‘널 사랑하지 않아’가 월간 가온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차트에서 빠질 줄 모른 채 장기 체류한 덕분이었다. 권순일(29)이 작사·작곡한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솔직담백한 노랫말과 어쿠스틱하면서도 웅장한 멜로디는 그대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반자카파의 권순일·조현아·박용인(왼쪽부터).

어반자카파의 권순일·조현아·박용인(왼쪽부터).

대중에게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어반자카파는 고삐를 놓치지 않고 달려나갔다. 8월엔 조현아(28)가 힙합가수 빈지노와 함께 만든 ‘목요일 밤’으로 차트를 점령했고, 권순일과 박용인(29)은 각각 드라마 OST ‘그런 밤’(‘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와 ‘소원’(‘도깨비’)으로 실력발휘를 했다. 멤버 모두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조합이기에 가능한 전개였다. ‘감성 보컬 그룹’의 1인자로 자리 잡은 이들이 만든 음악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서울 논현동 메이크어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권순일은 “사실 다들 회사랑 사무적인 일을 하기 싫어해서 제가 리더를 맡은 것뿐 음악적 지분은 비슷하다”고 했다. 일찍이 인천 제일고 1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로 만난 두 사람이 실용음악학원에서 발견한 1살 어린 동생을 섭외해 만든 ‘동네 친구들’인 만큼 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서열 관계는 없단 얘기다. 하지만 2009년 소속사도 없이 자비로 다 함께 만든 ‘커피를 마시고’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그날에 우리’ 등 타이틀곡을 주로 써온 그에게 가장 ‘어반자카파스러운’ 색이 묻어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5월이 목표다. 데드라인이 없으면 움직이질 않아서….”
 
음반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나.
“정규를 낸다고 하면 각자 5곡씩 숙제처럼 써온다. 모여서 들어보며 추린다. 녹음하다 잘 안되면 서로 편곡을 하거나 가사를 써주거나 하면서 완성시켜 나간다. 혼자 하다보면 막힐 때도 많은데 멤버들이 있으니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고 의지도 많이 된다.”
 
예를 들면.
“3집에 ‘어떤 하루’라는 곡이 있는데 가사가 너무 안써졌다. 그날이 녹음 마지막 날이어서 완성이 안되면 앨범에 못 들어갈 상황이었다. 막판까지 낑낑 대다가 현아에게 생각나면 한 번 써보라고 했더니 30분 만에 쓰더라.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다. 진작에 줄 걸 싶었다.”
2AM

2AM

 
멤버별로 곡 쓰는 스타일이 다른가.
“곡마다 다른데 저랑 현아는 멜로디를 먼저 쓰는 편이다. 생각날 때 틈틈이 녹음해 놓는다. ‘널 사랑하지 않아’는 가사를 먼저 써놨는데 멜로디가 계속 안떠올랐는데 과음 후 침대에 누웠는데 이거다 싶어 음성메모를 재빨리 켰다. 다행히 술 깨고 들어도 노래가 괜찮았다. 용인이는 반주를 먼저 쓰더라.”
 
곡 쓰는 비결이 끊임없는 연애라고.
“연애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쓸 말이 없다. 그 친구한테도 실제로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진 못했다. 그런 상상을 많이 했을 뿐. 그런데 어디를 가도 노래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게 끝없는 복수가 될테니까. 가끔 주변 사람들 연애도 써 먹고, 친구가 실연당해 울고 있으면 그걸 보면서 쓰기도 한다. 직업상 어쩔 수 없긴 한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슈퍼주니어

슈퍼주니어

권순일은 의외의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SM 연습생 출신으로 동방신기·슈퍼주니어 멤버들과 함께 연습한 사이다. 수능 공부를 위해 3년간 연습생을 그만둔 뒤 경희대 통번역학과에 들어갔을 만큼 팝송 가사에 빠지기도 했다. 간혹 수록곡 중 영어 노래가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국어 가사가 막히거나 영어 발음이 더 잘 어울려서”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그 모든 것이 음악에 녹아들어 인디와 오버를 오가며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됐다.
 
“너무 트렌디하거나 우리랑은 안 어울려서 못 부르는 곡이 많은데 버리긴 아까워서” 2AM의 ‘추억 다 지워’가 탄생하고, “동해 형이 함께 음악 작업하자고 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여한 곡이 슈퍼주니어의 ‘하루’가 되는 식이다. 데뷔곡 ‘커피를 마시고’는 채 10년이 되지 않은 노래임에도 긱스와 방탄소년단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는 “현아는 힙합 곡에도 피처링을 많이 하고 용인이는 수컷 냄새 나는 거친 보컬도 좋아한다”며 “다른 사람들과 컬래버 작업이 어반자카파 음악을 하는데도 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아마 그때 댄스가수로 데뷔했다면 지금만큼의 간절함은 없었을 것 같다. 이렇게 자유롭게 곡을 쓰지도 못했을 테고”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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