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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전환 멈추고, 컨트롤타워는 없고 … 계열사는 눈치만

중앙일보 2017.04.04 01:21 경제 3면 지면보기
‘그룹 차원에서 진행해온 모든 업무와 활동의 폐지.’
 

분담금 65% 납부하는 삼성전자
‘그룹 역할 대행’ 오해 살까 몸조심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악영향 우려
“미전실 부활은 절대 없다” 못 박아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사라진 지 한 달, 삼성의 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1일 자로 미전실 폐지, 8인 팀장 사퇴, 대관 업무 폐지, 계열사별 자율 경영 등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내놨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던 인사·광고·홍보 등의 업무를 각 계열사가 필요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삼성은 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도 3일 자로 폐쇄했다. ‘마지막 남은 그룹 업무’로 불리는 상반기 공채 관련 정보만 남겼다. 공채 업무는 전자로 소속을 옮긴 옛 ‘인사지원팀’ 직원들이 처리하고 있다.
 
미전실 해체 여파

미전실 해체 여파

사회공헌 활동인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이나 연말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 같은 행사는 그룹을 대신해 전자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그룹 차원에서 지출하던 기부금이나 홍보비 등은 각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분담금’을 재원으로 했다. 이 분담금의 65%가량을 삼성전자가 냈다. 하지만 미전실이 사라지면서 삼성전자가 분담금만큼을 직접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분담금을 할당하던 미전실이 사라지면서 각 계열사가 관련 비용을 줄이고 있다.
 
또 최순실 등에 지원이 문제가 되면서 삼성전자 등은 지출과 관련한 내부 규정을 까다롭게 바꿨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4일 이사회에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0억원 이상의 모든 지출을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고 외부에 공시하도록 했다. 또 1000만원 이상의 모든 후원금·기금은 심의회의를 거쳐 지출하도록 했다. 역할이 커지면서 삼성전자가 실제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독보적이고 채용 규모, 비용 지출 규모가 많아 미전실 업무가 삼성전자로 이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계열사로 이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전실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서도 삼성전자 관계자는 “단언컨데 부활은 없다”며 “미전실 부활에 대한 외부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악화된 삼성에 대한 여론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미전실 업무를 이어받는다는 오해를 살까봐 전직 미전실 임직원들에게 업무관련 문의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삼성이 미전실을 둘러싼 외부 시선에 민감한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무관치 않다. 재판은 법리적 판단을 토대로 진행되지만 여론의 향배도 무시할 수 없다. 미전실 재판 대응팀은 현재 삼성전자로 소속돼 기존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재판 대응팀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들이 미전실 부활이나 삼성전자가 미전실을 대신한다는 의혹이 퍼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거대 그룹을 컨트롤타워 없이 계열사 자율로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을 맡고 있는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청문회 당시 이 부회장이 미전실 폐지를 언급했을 때만 해도 지주사 전환이라는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간 미전실이 비판을 받아 온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 그룹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을 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지주사에서 경영 전반을 챙기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없다.
 
문제는 지주사 전환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데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여러 여건 상)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조 교수는 “계열사·관계사·협력업체까지 무려 2000여 개에 달하는 기업을 코디네이션(조정) 기능 없이 경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지주사 전환도 못하면서 컨트롤 타워도 없이 경영해야 한다면 ‘잘못된 과거’에 두고두고 발목 잡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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