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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벌타에 눈물 흘린 톰슨 … 32개월 만에 눈물 씻은 유소연

중앙일보 2017.04.04 01:12 종합 24면 지면보기
LPGA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유소연이 가족들과 함께 호수에 빠지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며 자축하고 있다.

LPGA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유소연이 가족들과 함께 호수에 빠지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며 자축하고 있다.

렉시 톰슨(22·미국)이 12번홀에서 홀아웃하는 순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의 경기위원인 수 위터스가 그를 불러세웠다.
 

올해 첫 LPGA 메이저 대회 명승부
톰슨, 전날 퍼팅 때 공 다시 놓기 위반
뒤늦게 밝혀져 다 잡은 우승 놓쳐
차분히 타수 줄여 선두 오른 유소연
연장승부 끝에 ‘호수의 여왕’ 등극
“시청자가 경기 좌우 안 돼” 논란도

“렉시, 어제 17번 홀에서 말입니다. 퍼트하기 앞서 공을 잘못된 위치에 리플레이스 했더군요. 오소 플레이로 2벌타, 스코어카드 오기로 2벌타, 합쳐서 4벌타를 부과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톰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뭐라고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4벌타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톰슨. [JTBC골프 화면 캡처]

4벌타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톰슨.[JTBC골프 화면 캡처]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 하는 상황. [JTBC골프 화면 캡처]

3라운드 17번홀에서 마크 하는 상황. [JTBC골프 화면 캡처]

그러나 위터스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전날인 3라운드 17번 홀(파3)에서 톰슨은 40cm 거리의 파 퍼트를 앞두고 마크를 한 뒤 공을 집어들었다. 잠시후 다시 공을 놓은 뒤 파 퍼트를 성공시켰지만 리플레이스 과정에서 원래 위치보다 2.5cm가량 홀에서 가까운 곳에 공을 내려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은 전날 TV를 지켜본 시청자의 이메일 제보로 알려졌다. LPGA투어 사무국 측은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발표하며 벌타 상황을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라운드 12번홀까지 톰슨은 2타차의 단독선두를 달리며 시즌 첫 메이저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었기 때문이다.
 
톰슨은 이 사건으로 결국 ‘원구와 다른 잘못된 위치에서 플레이하면 2벌타를 받는다’는 골프규칙 20조7항과 ‘잘못된 스코어카드를 내면 2벌타를 받는다’는 6조6항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져 4벌타를 먹고 경기를 계속해야 했다.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끝난 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 최종 4라운드에서 일어난 일이다.
 
톰슨이 벌타를 먹고 주춤한 사이 유소연(27·메디힐)이 차분하게 타수를 줄이며 선두로 뛰어올랐다. 결국 유소연은 합계 14언더파로 톰슨과 공동선두를 이룬 뒤 연장 첫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이 대회 우승상금은 40만5000달러(약 4억5000만원). 박인비(29·KB금융그룹)와 호주동포 이민지(21),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나란히 13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올랐다.
 
톰슨은 벌타 소식을 접한 뒤 눈물을 흘리면서 경기를 계속했다. 속개된 13번홀에선 버디를 잡아내 공동선두에 복귀했다. 14번홀에서도 버디를 추가하며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향한 유소연의 열망도 강했다. 지난 2014년 8월 캐나다 여자오픈 우승 이후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유소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끝에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62경기, 32개월 만에 통산 4승째를 수확한 유소연은 단숨에 상금 순위 1위(79만2166달러)로 올라섰다. 세계랭킹도 2위로 한 계단 뛰었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18번홀 그린 주변의 연못에 뛰어드는 세리머리를 펼친 유소연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아 기쁘다. 찬 물에 샤워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18번홀) 연못에는 100번도 더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마지막날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잡아내는 눈부신 플레이를 펼친 끝에 우승했지만 대회가 끝나고도 ‘벌타 논란’은 계속됐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2·미국)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대회를 마친 뒤 톰슨은 “리플레이스를 잘못한 건 100% 고의가 아니었다. 이 대회를 통해 많이 배웠다. 나를 응원해 준 많은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톰슨에게 벌타 소식을 직접 전했던 수 위터스 LPGA 경기위원은 “톰슨에게 벌타 소식을 전하는 일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오늘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ANA 인스퍼레이션(전 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린 미션힐스 골프장은 2012년 김인경(29·한화)이 마지막날 18번홀에서 30cm거리의 챔피언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국내팬들에게도 익숙한 장소다. 당시엔 김인경이 손쉬운 퍼트를 놓친 뒤 연장전을 벌인 끝에 유선영(31)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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