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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44) 손주와 잘 놀아주는 조부모가 되라

중앙일보 2017.04.04 00:02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67)씨 부부는 ‘황혼육아’에 여념이 없다. 직장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딸 부부가 수시로 세살배기 아이를 맡겨두면서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딸 부부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를 돌봐달라면서 딸 부부가 아예 박씨네 집 근처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이같이 맞벌이 가구 상당수는 조부모에게 육아를 의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중 절반이 일정 기간 또는 수시로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실제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뉘집 아이인지, 동네 사람이 다 알았고 부모가 집을 비우면 이웃집에서 돌봐주기도 했다. 숟가락 한 개 더 얹어 밥먹는 것은 예삿일이었다.하지만 양상이 달라졌다. 마을이 오간데 없어지면서 조부모가 그 역할을 온전히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 가구 둘 중 한 집, 조부모에 아이 맡겨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조부모는 장점이 많다. 우선 꼬리를 물고 있는 육아시설의 아동 학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아이의 신체, 언어, 인지,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손주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조부모는 활력이 넘친다. 은퇴한 뒤에는 여가를 즐기며 지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더구나 친구들이 수시로 불러내는데도 손자녀를 돌보게 되면 자신의 노후를 희생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육아 방식이나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너무 오래 된 일이고 시대가 바뀌면서 육아 방법도 달라졌다. 특히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과거 세대는 자기 자식과도 정겹게 놀아준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러니 손자녀와 놀아주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법이 다른 것도 문제다.
 
|아이에게는 좋지만 '황혼 육아' 스트레스 문제 
그러다보니 황혼육아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일부 조부모는 “이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다시 아이를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육아 방식을 둘러싸고, 아이를 맡긴 자녀와의 갈등도 빚어진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손자녀를 더 잘 돌봐주려면 시군구청에서 실시하는 조부모 육아교실에 참석하는 것이 좋다. 다행스러운 것은 황혼육아가 늘어나면서 조부모 육아교실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 차원에서 실시하므로 비용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어린 손자녀와 놀아주기는 물론이고 신생아 돌봐주기도 교육 대상이다. 손자녀 출산을 앞둔 조부모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은 서너 차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성장 마사지, 안전하게 돌보기, 대화법과 동화 들려주기, 목욕과 재우기 같은 신생아 육아 기술도 가르친다. 올바른 육아 방법 교육으로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 육아로 인한 세대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다. 가천대의 세살마을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조부모 교육도 이용할만하다.
 
|조부모 육아교실…너무 젊어 엄마로 오해받아 
조부모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잘 보살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대가 바뀌면서 양육 방식도 바뀌면서다. 옛날에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컸고, 울거나 보채면 먹을 것을 주면 됐지만 공동주택 살이를 하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응급처치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재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손자녀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조부모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출근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자녀를 유치원에 보내주고 데려오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방과후 귀가했을 때 함께 놀아줄 수도 있다. 유치원에서는 요즘 조부모는 너무 젊어 할머니가 엄마인줄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녀와 멀리 떨어져 살아도 조부모의 손자녀 돌봐주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자녀가 직장을 위해 손자녀를 일시적으로 맡겨두거나 주말에 놀러오는 경우다. 요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려면 아이들 수준에 맞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도 있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장수시대가 되면서 손자녀가 대학생이 되는 것은 물론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까지 보게 된다. 아이를 잘 돌봐주면 노후에 손자녀와의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부모에게 정중하게 아이 육아 부탁해야 
자녀도 부모의 귀중한 여가 시간을 빼앗는 만큼 예를 갖춰 부탁해야 한다. 부모님이 경제적 자립 정도가 취약하다면 적정한 수준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무엇보다 육아 방식에 대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조부모는 “내가 너 키울 때는 이렇게 안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무조건 반박만 해선 안된다. 자녀들도 부모에게 조리 있게 세태 변화를 설명하면서 남을 대하듯 부탁을 해야 할 것이지, 무조건 요즘 방식을 따르라고 할 일이 아니다.
 
결국 아이를 맡기는 젊은 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퇴해 여가를 즐겨야 할 부모의 황혼 육아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부모에게 불편한 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부모 역시 자녀를 위해 손자녀 육아를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좋다.
 
 
 
 ※ 이 기사는 고품격 매거진 이코노미스트에서도 매주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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