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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패션 읽기]나이 들어도 괜찮아, 노인을 위한 패션이 있으니까

중앙일보 2017.04.04 00:01
tvN '윤식당' 출연진 포스터. [사진 tvN]

tvN '윤식당' 출연진 포스터. [사진tvN]

알면서도 걸려드는 건 이런 거다. 여행과 요리, 셀레브리티까지 버무린 '나영석(PD) 표 예능'이 뻔하다 하면서도 또 빠져든다. tvN의 새로운 예능 '윤식당' 이야기다. 이번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시간 반 더 배 타고 들어가는 길리 트라왕안섬에 한식당을 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죽기 전 가봐야 할 10대 휴양섬'으로 꼽히는 그림같은 풍광에다, 한국식 믹스 커피에 김치까지 찾는 외국인 관광객 모습이 재미있는 볼거리다. "딱 한 달만 저렇게 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로망을 저격하는 구성 덕에 시청률은 2회만에 이미 10%에 육박하고 있다. 
 

'윤식당' 윤여정이 보여주는 '어드밴스드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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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역시 환상의 조합이다. 매사에 싹싹하고 순수한 함박 웃음을 머금을 줄 아는 배우 정유미, 뭐든 투덜대면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는 'tvN 공무원' 배우 이서진, 꼰대는커녕 그 어떤 젊은이보다 오픈 마인드를 탑재한 배우 신구까지 호감을 주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그 누구보다 아우라를 내뿜는 배우, 윤여정이 있다. 긴 설명 없이 "윤 선생님을 가까이 보고 싶어 출연했다"는 정유미의 한 마디는 스타들 사이에서도 그가 어떤 존재인가를 대변한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연기생활 50년의 대배우는 '윤식당'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젊음과 동안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이 시대에 늙는 게 생각보다 괜찮은 거라고, 세상에는 꼭 촌스럽고 꽉 막힌 노인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사실 그는 71세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멋스럽다. 제작진이 섭외할 당시만해도 '요리는 누가 하냐'며 심드렁했지만 막상 주방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불 앞에 선다. 명료하면서도 유창한 영어 실력은 또 어떤가. 젊은 외국 손님들 앞에서도 자연스레 주문을 받고 음식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가끔은 자식뻘 제작진에게 "이 프로 잘해서 시집가려 했다"고 농을 치며 대체 재능인지 연륜인지 모를 최상급 여유를 자랑한다.  
 
허나 '과연 윤여정'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스타일이다. 만약 '노인을 위한 패션은 있다'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무조건 섭외 1순위에 오를 만하다. 무슨 대단한 의상을 입어서가 아니다. 아니, 그래서 더 빛난다. 
촬영 차 출국 모습 [사진 중앙포토]

촬영 차 출국 모습 [사진 중앙포토]

 
출국 당일 배기팬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선 올 블랙 공항 패션은 시작에 불과하다. 섬에 오자마자 짐을 풀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반바지가 없어서 패션상은 못 받겠다"고 농반진반 속상해 하던 그가 결국 비장의 무기로 택한 건 화이트 면 티셔츠다. 화이트 티셔츠라는 게 어떤 아이템인가. 못 입으면 최고로 허섭한 옷, 잘 입어도 본전인 물건이다. 그런데 이 어르신, 여기에 도전한다. 비결은 포인트로 힘주기다. 일단 '시스루'다. 흰색 긴팔 티셔츠에 검정색 브래지어가 훤히 비친다. 요 몇 년 여름마다 유행으로 떠오르지만 2030 처자들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그 어려운 걸 해내신다. "내 연세에 숏팬츠는 너무 섹시하다"는 당신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진심 더 에로틱하다 할 만하다.  
 
이뿐이랴. 화이트 티셔츠에 화이트 데님 반바지(심지어 찢어졌다!)로 전체를 통일시키면서 선글라스로 시선을 붙잡는다. 연예인들이 흔히 쓰는 얼굴을 뒤덮는 오버사이즈 형태가 아니라 작고 동그랗다. 더구나 일반 안경에다 위에 선글라스 렌즈를 덧붙인 '클립온' 형태다. 그거 참 요긴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송 이후 '윤여정 선글라스'라는 연관 검색어가 나오고, 어느 브랜드 제품인지 수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아직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에 하나 더. 눈여겨 보지 않으면 놓칠 스타일링도 있다. 반바지에 통굽 샌들 대신 양말에 스니커즈를 신은 포스터 사진 역시 엄지 손가락을 들 만하다.  
 
블랙 브래지어가 비치는 화이트 티셔츠, 동그란 선글라스로 멋을 낸 모습. [사진 방송 캡처]

블랙 브래지어가 비치는 화이트 티셔츠, 동그란 선글라스로 멋을 낸 모습. [사진 방송 캡처]

몇 년 전 뉴욕의 한 패션 사진 블로거는 멋쟁이 할머니들의 옷차림을 집중적으로 촬영한 사진집을 내놨다. 제목은『어드밴스드 스타일』. 등장한 어르신들 평균 나이는 75세였다. 책 속에는 세월만큼 깊은 철학을 담은 그들의 이야기가 함께 실렸다. "젊을 땐 다른 사람을 위해 옷을 입지만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을 위해 옷을 입게 된다"거나 "자신의 스타일을 만든 것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라는 말은 그 어떤 패션 잡지에서도 볼 수 없는 내공의 한 줄 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격려였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늙겠죠. 걱정하진 말아요. 불안해하지도 말고." 맞다. 우리는 나이가 들 수록 더 멋있을 수 있다.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드밴스드 패셔니스타, 윤여정이라는 새로운 롤모델을 실제 보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방송 캡처,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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