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누가 공화국을 어린애로 만드는가

중앙일보 2017.04.01 02:13 종합 24면 지면보기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변혁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 대변혁의 시기는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잠재되어 있던 다양한 목소리가 마구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자기 검열과 통제를 벗어난 목소리들은 징후로만 존재하던 어떤 ‘현실’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사회의 일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우리가 아직도 먼 봉건의 시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쏟아지는 봉건의 기표들
동일시와 떼쓰기는 유아적 행위의 전형적 특징

봉건 담론의 한 특징은 권력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리더란 선거를 통해 국민의 권력을 한정된 기간 동안 이양받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것도 국민이고, 그가 국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지 감찰하는 것도 국민이다. 먼 봉건 시대에는 권력자와 ‘백성’ 사이에 이런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봉건 권력은 그 자체 절대적이어서 사회의 구성원들은 권력자를 자신과 동일시했다. 권력자의 안위는 곧 자신의 안위였고, 그의 몰락은 자신의 몰락이었 다.
 
최근 파면된 대통령을 대하는 사회 일각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매우 퇴행적이다. 한 정치인은 그의 구속을 반대하면서 그를 “궁궐에서 쫓겨나 눈물로 지새우는 여인”이라고 묘사하였다. 공화국의 대통령이 공무를 수행하던 공간을 “궁궐”로 묘사할 때, 우리는 21세기 탈근대 한국 사회에 재림한 조선 왕국을 목격한다. “눈물로 지새우는”이라는 표현은 공적인 사건을 신파화함으로써 공화국 시민들의 이성적 사유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게다가 “여인”이라니. 봉건적 이념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여인”을 배려했나. 전직 대통령에게 부여된 “여인”이라는 용어는 바로 그 전직 대통령에게도 모욕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전직 대통령을 고작 가부장제 사회가 만든 젠더로서의 “여인”을 뛰어넘지 못한 한심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를 폄하하는 발언이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파면에까지 이르게 한 우리 국민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고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것이 일개 국회의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변혁기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공간에서 발견된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세조에 맞서 단종을 지키려 한 사육신에, 더 나아가 의병에 비유하기도 했다. 궁궐, 세조, 단종, 사약이라는 봉건의 기표들이 21세기 한국 사회에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향해 절을 올리고 울부짖으며 외친 “죄송합니다, 마마”라는 문장은, 어렵게 미래를 향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머리채를 뒤에서 섬찟하게 잡아당기는 봉건의 언어다. 전직 대통령을 ‘동정녀 마리아’에 비유할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 몰락한 종교의 막장 드라마를 목격한다.
 
대통령을 국가 그리고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범주의 오류’는 대통령의 파면을 곧바로 자신과 국가의 몰락으로 읽는 오독(誤讀)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보라. 대통령의 파면 이후 코스피 지수는 장중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고,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이 워낙 예측하기 어려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헌법에 의한 대통령 파면이 곧바로 국가의 몰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오히려 부패한 정권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사회적 투명성이 확대됨으로써 경제의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는 물적 표증인 것이다.
 
몰상식한 정치가들과 무지몽매한 “백성”들만이 아니라 집단지성의 표본이 되어야 할 언론인들도 봉건적 동일시와 탈이성(脫理性) 담론의 생산에 일조하고 있다. 어떤 종편의 한 출연자는 영장심사 후 피의자가 대기할 공간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떻게 전직 대통령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느냐”고 염려했다. 개인에 대한 사적인 연민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방송은 대표적인 공공 기제의 하나이고 피의자에 대한 예우는 공적인 문제다. 이러한 범주의 혼란과 동일시, 그리고 책임 전가와 떼쓰기는 유아적 행위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봉건적 잔재, 역사의 유년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역사적 ‘퇴행’이라고 부른다. 누가 성숙한 공화국을 어린애로 만드는가.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