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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아들 엄마의 남권 운동

중앙일보 2017.04.01 02:11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지영문화부 차장

이지영문화부 차장

학교에 오는 엄마들 얼굴을 보면 아들 엄마인지, 딸 엄마인지 단박에 구분된다는 말이 있다. 의기양양 거칠 게 없어 보이는 엄마는 딸 엄마이고, 눈을 내리깔고 조심조심 눈치 보는 엄마는 아들 엄마라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우스갯소리거니 했는데, 남매를 키우며 학부모 노릇을 해 보니 상당 부분 맞는 말이었다.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여성 상위 집단이 바로 학교 아닌가 싶었다.
 
학교 현장에서 모범생의 표준은 여학생이다. 차분하고 꼼꼼하고 제 할 일 야무지게 챙기는 학생이 교사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 남학생 중 이런 캐릭터는 소수다. 활동적이고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남자아이들은 교사의 손이 많이 간다. 뭐든지 경쟁하고 서열을 정하려는 남자아이들의 특성도 교사에게 지적당할 일을 양산해 낸다. 남학생은 산만하고 공격적인 아이로 낙인찍혀 자존감이 어그러진 채 학교생활을 할 확률이 여학생보다 현저히 높다. 평가 기준 자체가 여학생에게 유리할 때도 있다. 노트 검사로 수행 평가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그렇다. 남학생 전용 미술학원 ‘자라다남아미술연구소’ 최민준 대표는 “남자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미술활동이 ‘빈틈없이 색칠하기’인데, 초등학교에서 그림 바탕을 꼼꼼히 칠하지 않으면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이 모범생 대접을 받으려면 여성화돼야 할 처지인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학생들이 열등생 취급받는 이면에는 나날이 심해지는 교단의 여초 현상이 있다. ‘타고난 모범생’ 출신인 여교사들에 비해 과거 남자아이였던 남교사들이 남학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최근 『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을 펴낸 현직 초등학교 남교사인 이진혁씨는 “아이 문제로 고민하는 아들 엄마들에게 ‘남자애들 다 그렇다. 걱정 말라’고 이야기한다. 말썽꾸러기들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마법처럼 점점 의젓해진다”고 했다. 아들 엄마들은 이런 남자 담임 만나기를 오매불망 바란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난해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무려 87.4%에 달했다. 남자아이들의 정상적인 남성성까지 비정상 취급을 받기 쉬운, 위험한 수치다. 강제로라도 교사 성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급해진다.
 
아들 엄마 입장에서 ‘남권 운동’에 나설 일은 또 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며칠 전 입시 부담을 이야기하며 “남대는 없으면서 여대는 왜 이렇게 많으냐”는 말을 꺼냈다. 듣고 보니 이도 그렇다. 사관학교에서도 최상위권을 여생도들이 휩쓰는 마당에 여성들만 따로 모아 대학 공부를 시켜야 할 시대적 사명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남학생 엄마는 이래저래 속이 탄다.
 
이지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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