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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소설, 시대의 거울

중앙일보 2017.04.01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4월 주제는 ‘소설, 시대의 거울’입니다.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소설 세 편을 골랐습니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오늘의 모순과 애환을 마주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낼 기회겠지요. 그 속에서 희망과 위로도 찾길 기대해 봅니다. 
 
꿈도 포기하고 애 키웠는데 ‘맘충’이라니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192쪽, 1만3000원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통계청), 여성부 출범(여성가족부 누리집), 고용 노동 백서(노동부), 호주제 폐지(참여정부 정책보고서), 경력단절 여성 지원정책의 현황과 과제(보건복지포럼), 전업주부의 종말(한겨레21)….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이런 참고 자료를 문장 곳곳에서 인용한다. 딸 하나를 키우는 서른 네 살 김지영 씨 얘기를 하는데 왜 논문 같은 대목이 보이고 보고서 읽는 기분이 들까. 『82년생 김지영』은 고백과 고발을 축으로 보편성을 추구하기에 새로운 형식의 페미니즘 소설이라 부를 만 하다.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165쪽)
 
육아와 살림에 치여 지내면서도 평가는커녕 ‘맘충’이라 불리는 여성이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내뱉는 탄식은 그 맘충이 너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불러온다. 엄마를 부르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과잉 엄마를 가리키는 말로, 이제 여성혐오의 한 대명사가 되었다.
 
조남주 작가. “쓰는 내내 주인공 김지영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다”고 했다. [사진 민음사]

조남주 작가. “쓰는 내내 주인공 김지영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다”고 했다. [사진 민음사]

그래서 이 소설의 작품 해설은 문학평론가가 아니라 여성학자 김고연주 씨가 썼다. 소설이 그리는 에피소드는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험들이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에 그려질 정도라며 ‘82년 생 김지영’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소설의 목적을 함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이 땅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오래오래 힘들었고, 어쩌면 영원히 힘들 것이다.
 
“김지영의 삶이 여성 독자들의 삶과 이토록 닮은 이유는 무엇일까? 동시대 여성이기 때문일까? 시대의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의 딸들은, 김지영의 딸 정지원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헛된 희망이 아닐까.”(181쪽)
 
작가 또한 같은 연대감으로 오늘을 비관한다. 혼인신고서를 쓰면서 주인공은 독백한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132쪽)
 
전업주부를 대하는 이 사회의 이중적 태도는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각종 증상을 여성 책임으로 떠넘긴다. ‘집에서 논다’고 후려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그 비용은 좀처럼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고령화 속도는 최고인데 출산율은 최저인 나라에서 ‘결혼시장 이탈계층 방지 대책’ 같은 황당한 보고서나 내고 있으니 ‘82년생 김지영’이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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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지영. 1982년 4월 1일 서울에서 말단 공무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2녀 1남 중 둘째 딸로 탄생. 다섯 살 터울 남동생을 비롯해 남자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살이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았음. 억척 엄마 덕에 97년 외환위기와 아버지의 명예퇴직 와중에도 어려움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 소재 한 대학 인문학부 합격. 연애, 동아리 활동 등 평범한 3년을 보내고 취업준비를 시작했으나 채용 추천은커녕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에 체념할 즈음, 한 홍보대행사 입사. 연봉 차이, 승진 차별 등 남자 동기들조차 ‘갑’이 돼버린 현실에서 습관처럼 회사에 나가게 됨. 서른 살 되던 2012년, 동아리 3년 선배와 결혼해 서울 변두리 아파트 24평형 전세를 얻고 소꿉놀이 같은 신혼을 보낸 뒤 딸 출산과 동시에 퇴사. 일과 꿈을 포기하고 아등바등 살던 어느 날, 유모차를 밀고 간 공원에서 1500원 짜리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는 그를 보고 직장인들이 ‘맘충(Mom蟲)’이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 이상증세 보임.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며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는 중.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세월호의 아픈 상처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돌베개
352쪽, 1만3000원
 
‘한꺼번에 다 같이 나갈 순 없어. 차례차례 잠수사들이 너희들을 모두 모시고 나갈 거야. 이 아저씨가 약속할게. 그러니 우선 너부터 나가도록 하자. 친구와 맞잡은 오른손부터 놓아줘. 그리고 친구의 어깨를 두른 왼손도 거둬들여 주렴.’
 
칠흑 같은 바다 밑 객실. 잠수사의 간절한 염원이 통한 걸까. 엉겨 붙은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아이들이 서로에게서 슬며시 떨어진다. 잠수사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분명히 느꼈다고. 한 아이의 설명에 동의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몸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작가 김탁환(49)씨가 그린 세월호 피해 학생 수습 장면이다. 그의 이번 세월호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할’의 한 대목이다.
 
가슴 속 피멍이 아직도 시퍼런 참사에, 예술의 이름으로 무얼 더 보태겠다는 걸까. 인간의 초라한 언어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일인 걸까. 김씨는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는 듯 꾸역꾸역 쓴다. 사찰을 찾아 열 시간씩 절하며 딸을 잃은 슬픔을 삭이는 어머니(‘눈동자’), 친구의 희생으로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괴로워하는 승태(‘마음은 이곳에 남아’), 참사 후 11년이 지나도록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2025년의 현진(‘제주도에서 온 편지’)…. 신문의 조각 글이나 방송의 비통한 화면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상처의 빛깔과 두께를 선명하게 복원 시도한다.
 
사고 이후 세 번째 봄.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 그들을 돕는 이들의 수고로운 땀방울에 대해 얼마나 관심 있나. ‘세월호=참사’로 편리하게 정리한 후 마음보다는 논리로, 공감하기보다는 효율을 따져가며 수습책을 논하고 앞날을 얘기하지 않았나. 소설은 다시, 어쩌면 한 번이라도 제대로, 그들의 아픔을 바로 보자고 말한다. 읽다가 여러 번 울컥했다. 엇비슷한 고통을 반복해서 읽는 일은 고통스럽다.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가진게 돈밖에 없다는 할머니와 손녀가 사는 법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해냄
272쪽, 1만2000원
 
이른바 ‘헬조선’에 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작가가 지난 10여년간 쓴 단편 곳곳에 그 파편이 존재한다. 2000~2010년 문학지에 발표해 이상문학상·21세기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등을 휩쓴 5편의 단편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헬조선=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가령 ‘부활’은 13살 때부터 식모살이를 다닌 순례가 주인공이다. 부자 동네 분당에 살지만 지지리 복도 없는 농사꾼 아버지가 개발될 줄 모르고 땅을 다 팔아버리는 바람에 딸 둘 다 남의집살이를 전전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이 마흔에 “저 여자는 저렇게 많이 갖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없는지 억울해서” 주인집 명품 가방을 훔친 동생 정례를 보며 “아버지가 애쓰지 않았더라면, 그저 게으른 농부였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라고 신세를 한탄한다.
 
인용구인터뷰부제 컴포넌트반면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는 강남 사거리 빌딩에서 수금하며 먹고 사는 열아홉살의 내가 등장한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지만 할머니의 돈 앞에서 모두 고개를 조아리는 비정상적인 삶 속에서 “‘가진 것이 돈밖에 없다’는 말은 돈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돈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수가 라는 뜻”이라며 자조한다. 더 가지나 덜 가지나 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란 걸까.
 
내 옆에도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인물들 사이로 작가 자신도 종종 출연한다. “내가 정말 공지영이 아니라 최인향이라면, 공지영 마리아가 아니라 최인향 테레사라면”(‘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이라는 설정은 작가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글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이것도 소설인가, 누가 이것은 소설이고 이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가”(‘월춘장구’) 등 근원적 고찰을 통해 경계가 확장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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