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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이야기] (26) 도널드 트럼프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2017.04.01 01:00 종합 17면 지면보기
우리 내면에 ‘내가 우선’ 심리 잠복 … 남을 재단하려는 유혹 버려야 
한국이 빛나는 결실을 향해 풍랑을 헤쳐 나가고 있는 요즘 프랑스에서는 대선 열기가 한창이다. 포퓰리즘의 열기가 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내 권좌에 올라 거만한 태도로 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하루는 친구 한 명이 내게 말했다. 트럼프 때문에 요즘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다고. 저런 미친 짓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정말 궁금하다고. 데카르트의 주장대로 이럴 때일수록 철학이 나서 편견 없는 자율적 사고에 입각한 관점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지혜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억만장자가 이토록 마구잡이로 세상을 주무르게 된 원인은 대체 어디 있을까. 혹시 우리들 각자 내면에 작은 트럼프가 있어 ‘미국이 우선이다(America first)’가 아닌 ‘내가 우선이다(Me first)’를 악착같이 외쳐댔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심리가 우리 일상 곳곳에 잠복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하철 정거장에 늘어선 줄에서 내가 먼저라는 폭군적 발상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녀석은 잘못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다는 식의 오기를 부린다. 자기가 세상 중심인 양 툭하면 남에게 손가락질이다. 일단 그 톡 쏘는 맛을 알고 난 다음의 마음속 독재자를 폐위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회만 있으면 돈과 명예, 특권과 권력을 좇는 우리 안의 욕심쟁이들은 또 어떤가. 평소 죄의식과 자책이 심한 나 같은 사람은 트럼프의 행동거지를 보며 나도 저렇게 남의 눈치 안 보고 막무가내로 살아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자각들이 트럼프라는 흥미로운 인물에게서 우리 각자가 구할 교훈일지도 모른다. 때론 통념에 반하더라도 자기만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러나 통념이란 원래 다이너마이트와 같아 소홀은커녕 매우 조심스레 다뤄야 할 무엇이다. 하물며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를 마구 무시한 데서야 말이 되는가. 그는 장애가 있는 어떤 기자를 어눌한 말투와 뒤틀린 동작을 흉내 내 가며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프랑스에서 선거에 나선 후보가 그런 행동을 취했다면 굳이 비난을 부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을 것이다.
 
지혜롭기 위해 일정량의 대담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작정 통념을 무시해서가 아닌, 당장은 안 보여도 분명 존재하는 진실로 나아가기 위한 대담성이어야 한다. 세간의 평판에 무신경한 차원을 벗어나 자기 안에 존재하는 불가침의 영역, 그렇게 지킬 만한 진정한 가치에 눈뜨는 대담성이어야 한다.
 
자유란 선물이자 은혜요, 일상의 수련이다. 모든 사회적 태도를 취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양심 앞에 발가벗고 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타인의 시선에 광대가 되지 않고 남의 손끝에 꼭두각시 노릇을 안 할 수 있다. 니체는 누구나 예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작정 튀어 보이라는 뜻은 아닐 터. 오히려 남을 자기 마음에 맞게 재단하고 자기 규범에 끼워 맞추려는 유혹을 버리라는 의미다. 영향을 미치려는 욕심 없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크나큰 자유다. 물론 트럼프 같은 인물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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