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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아픈 남편 갈등 극복] 철저히 고독하라, 그리고 냉철하라

중앙일보 2017.04.01 00:02
행복·불행은 착각 속에서 자라나 … 현재에 집중하되 아픈 이별도 고려해야
서양화가 염성순씨의 작품 ‘고독’

서양화가 염성순씨의 작품 ‘고독’

명문대를 나왔고, 잘 생긴 얼굴에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뭇 여성이 선망하는 남편감이었다. 중매로 만나 6개월 연애 끝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며 그와 결혼했다. 결혼 초 불임(不任)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됐다. 남편은 특히 신장이 안 좋았다. 5년 전부터는 혈액투석이 시작됐고, 최근에는 상태가 더 나빠져 신장이식을 앞두고 있다. 남편은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 뒀다.

그녀는 지방 근무를 한다. 얼마 전 지방 발령이 났다. 주중에 한번이라도 혼자 지내는 남편을 만나러 상경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할 일이 많아 야근도 잦지만, 지금이 그녀에겐 승진을 앞둔 중요한 시기여서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요즘 남편은 짜증과 화가 부쩍 많아졌다.

출근 전과 퇴근 후 반드시 영상통화를 하고, 업무 도중 틈틈이 메신저로 대화를 한다. 얼마 전 중요 프로젝트 때문에 밤 10시까지 정신없이 일하다가 전화를 하지 못했다. 남편은 무시 무시한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놀라서 전화를 했더니 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픈 남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더 예민해지고, 더 나빠지는 남편의 언행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
 
불완전한 인간의 뇌
아내는 행복하지 않다. 마음이 아프다. 원래 그녀만의 꿈이 있었다. 뭇 여성이 기대하는 소박한 삶을 바랐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든 사랑에 안 빠졌어야 했다. 마음이 슬프다. 어느 날, 차창에 비친 초췌한 얼굴을 본다. 나와 같이 쭉 살아온 창밖의 여자는 누구인가?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어쩌면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 화가 난다. 연애 시절, 똑똑하고 잘나가던 남자였다. 그는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 무섭도록 고독하다. 어떻게든 아이라도 가졌어야 했다.

행복은 착각이다. 인간의 경험은 영화와 같다. 마음대로 확대되고, 임의대로 축소된다. 성냥팔이 소녀가 한 개비의 불꽃에 행복을 느끼고, 남부럽지 않은 백만장자가 공허하다며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마음대로 편집하고, 임의대로 구성한다. 상상하는 과정에서 현실감을 살리려고 없는 정보를 넣고 있는 정보를 뺀다. 과거는 보다 아름답게 기억되고, 미래는 보다 멋지게 기획된다. 망가진 사랑은 더욱 아프고, 못 이룬 꿈은 더욱 슬프다.

남편은 불행하다. 몸이 아프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뭇 남성이 희망하는 야심 찬 삶을 바랐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떻든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마음이 슬프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초라한 얼굴을 본다. 나와 함께 쭉 살아온 거울 속의 남자는 누구인가?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어쩌면 결혼한 게 다행이다. 화가 난다. 연애 시절엔 야무지고 괜찮은 여자였다. 그녀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처절하게 고독하다. 어떻게든 아내라도 붙들어야 한다.

불행은 착각이다.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느낀다. 현재가 아프면 과거도 아프게 보이고, 현재가 슬프면 미래도 슬프게 보인다.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과거와 미래는 착각이다. 인간의 뇌는 바보스럽다. 현실과 상상에 대해 똑같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바보 뇌는 현실과 상상의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강한 감정의 사건을 더 현실적으로 느낀다. 내가 슬플 때 세상도 슬퍼 보이고, 내가 화가 날 때 남도 화난 것처럼 느낀다.

인생은 착각이다. 유명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다. 주인공들은 50년째 고도가 오기를 기대하며 산다. 그런데 아무도 안 나타난다. 그들의 행동은 반복된다. 행여 고도가 오기를 희망하지만 안 나타난다. 고도는 ‘Godot = God Idiot = 바보 하나님’이다. 인생은 꿈이다. 과거는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 우리는 착각 가운데 불행을 느낀다. 미래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산다. 우리는 착각 가운데 행복을 느낀다.
조금 더 솔직해야
자, 그녀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어떻게든 살아보자. 직장에선 집을 잊자. 업무 중엔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받지 말자. 각자의 삶을 살자. 영원한 싱글처럼 지내자. 어쩌겠는가? 남편이 독립해야 한다. 주말 부부로 지내고, 주중엔 한두 번 만 소통하자. 따로 따로 살자. 돌아온 싱글처럼 지내자. 어쩌겠는가? 남편도 적응할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현재(Now)에만 집중하자. 때로는 망각이 약이다. 니체는 말한다.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집에선 충실하자.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 주자. 순정을 가지고 돌보자. 봉급 받는 간병인처럼 잘 살피자. 어쩌겠는가? 이틀만 견디면 된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 주자. 애정을 가지고 돌보자. 매주 방문하는 도우미처럼 하자. 어쩌겠는가? 이틀을 참으면 된다. 인간은 무대 위의 배우다. 여기(Here)에 집중하자. 때로는 고통도 약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끈기를 낳고,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

둘째, 이혼도 생각해보자. 일요일 오후, 남편과 오랫동안 못 갔던 카페로 가자. 차 한 잔 마시며 진지하게 토론하자. 결혼이란 무엇인가? 헤어지는 것을 제안하자. 누군가 만날 때마다 아프다면 헤어지고 싶다. 그녀에겐 잘못이 없다. 충분히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 사랑했고, 사랑한다. 그러나 계속 매여서 살 수는 없다. 이제, 내 길을 가고 싶다. 토요일 저녁, 남편과 오랫동안 안 갔던 레스토랑으로 가자. 술 한 잔 마시며 솔직히 의논하자. 부부란 무엇인가? 정리하는 것을 제안하자. 누군가 함께 살 때 슬프다면 정리하고 싶다. 남편도 잘못한 건 없다. 병이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충분히 사랑과 희생으로 돌봤다. 사랑했고, 사랑한다. 그러나 계속 하기엔 너무 지친다.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셋째, 철저히 고독해지자. 아픔을 당하면 고독해진다. 아픔의 꼭대기에서 존재의 높이를 경험하자. 아픔은 굳어진 자아의 껍질이 깨어지는 것이다. ‘혼자 간다’는 인간 본래의 고독을 씹어보자. 희로애락, 모든 게 다 고(苦)다.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슬픔을 겪으면 고독해진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존재의 깊이를 체험하자. 우물 속 깊이 내려갈수록 별빛이 또렷해진다. 마음을 열고 나의 작은 따스함을 나눠보자. 슬픔은 지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르는 원천이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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