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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 교수 피로 본부 물들여…' 서울대 본관 점거 학생들 남긴 글 논란

중앙일보 2017.03.31 19:28
본관을 점거했던 서울대 학생들이 떠나고 한 보직교수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던 문구. [사진 서울대]

본관을 점거했던 서울대 학생들이 떠나고 한 보직교수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던 문구. [사진 서울대]

‘보직교수단 모두의 피로 본부를 빨갛게 물들이는 날까지 투쟁!’
‘자본에 굴종하는 서울대 보직교수 처단!’
‘자본주의 철폐! 사회주의 건설!’

시흥캠퍼스 조성에 반대하며 153일간 서울대 본관을 점거했던 학생들이 떠난 뒤 한 보직교수의 사무실 안 화이트보드에 남아있던 문구다. 학생들이 작성한 서류에는 ‘(본부를) 학내에서 어떤 사업도 추진할 수 없는 식물 상태로 만드는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서울대 본부는 그간 본관을 점거했던 학생들이 저지른 불법행위 등이 낱낱이 정리된 A4용지 24장 분량 문건, ‘시흥캠퍼스에 관해 알려 드립니다’를 지난 30일 학내 포털 사이트에 게시했다. 문건에 따르면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는 동안 보직교수의 이메일 아이디를 불법적으로 도용해 120건의 메일을 열람했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댓글 작업팀을 구성해 시흥캠퍼스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도 문건을 통해 제기됐다. 본관에서 발견된 학생들의 언론대응팀 회의 안건지에는 ‘한 조당 2~3명으로 나눠 기사를 확인하고 댓글을 달기로 정함’, ‘여러 명이 댓글 단 것처럼 보이게 하고’, ‘너무 서울대 학생이 쓴 것처럼 쓰지 않기’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를 접한 서울대생들은 본관 점거 학생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서울대 학생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사회주의 건설 등) 소수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고서야 점거가 길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런 거였다. 진정으로 시흥캠퍼스에 반대하던 학생들의 목소리까지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위 내용과 관련된 학생들을 학교에서 하루 빨리 징계(퇴학)해주길 바란다”는 강경 의견도 나왔다.  

이에 본관 점거 학생 측은 “‘사회주의 건설’같은 문구는 놀러 온 학생이 낙서처럼 적은 것이다. 문구가 적힌 화이트보드가 있던 방은 잘 안 쓰던 방이어서 대부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메일 등의 자료 열람에 대해서는 “해킹을 한 것은 아니고 일부 학생이 교수 컴퓨터가 있으니 호기심에 열어본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의견이 나온 건 사실이나 회의에서 기각됐기 때문에 실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서울대 총학생회와 본부점거본부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전면 철회하기 전에는 본부와 어떤 대화도 거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자연대, 공대 등 단과대 학생회장단 46명은 자보를 통해 “시흥캠퍼스를 철회하라는 요구가 오히려 학교 본부와의 협상을 막아왔다. 다가올 4월 4일 학생총회에서 실시협약 철회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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