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민우의 블랙코드] 일개 대변인의 논평

중앙일보 2017.03.31 03:01 종합 32면 지면보기
최민우문화부 차장

최민우문화부 차장

자유한국당으로선 뿔다귀가 날 만도 했을 듯싶다. 오죽했으면 방영을 나흘 앞둔 28일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강수를 두었을까. 근데 상대가 지난해까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한도전’이니 뒷감당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4월 1일 방송 예정인 ‘무한도전-국민내각’ 편은 일자리·주거 등에 대해 국회의원과 일반 시민이 얘기를 나누는 내용으로 녹화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의원 5명은 형평성을 고려해 5개 정당에서 한 명씩 섭외했다. 말썽이 난 건 자유한국당 몫의 김현아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런데 구 여당 분당 과정에서 바른정당 행사 사회를 보는 등 바른정당 쪽에 섰다. 비례대표는 당을 떠나면 금배지도 떨어진다. 김 의원은 당적은 자유한국당, 활동은 바른정당이라는 ‘양다리’를 걸친 셈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당원권 3년 정지’를 김 의원에게 내렸다. “사실상 자유한국당 출연자 없이 바른정당 2명만 나오니 방송의 공정성에 위반한다”는 반발이 나오게 된 이유다.
 
형식적 균형만 갖춰 논란을 자초한 ‘무한도전’에도 일부 책임은 있다. 하지만 ‘소송의 자유’가 있다 해도 굳이 법정까지 끌고 가야 했을까. 방송 자체가 편향성이 없다면 “다음엔 우리 신경 좀 써 줘요”라며 쿨하게 넘어갈 만한 사안이었다. “자유한국당이 노이즈마케팅을 해 주는 꼴”(정수연 한양대 겸임교수)이라는 평가다. 관련 키워드는 30일 온종일 검색어 상위권이었다. 7주 만에 방송을 재개하는 ‘무한도전’ 측도 내심 반긴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30일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 의원을 출연시킨 건) 일개 PD 한 명이 강제로 한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개 PD가 설마 ‘국민 PD’로 불리는 김태호 PD를 가리키는 말일까. 정 대변인의 공식 논평은 이렇다. “이런 황당한 섭외는 MBC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제작담당자의 불순한 의도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검사 출신의 정 대변인은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측의 금태섭 변호사에게 “시중에 안 좋은 소문이 많아. 출마 안 하는 게 좋을거야”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요즘은 어지간한 정치인보다 종편 등에 출연하는 인기 패널이 더 영향력 높은 실정이다. 그런 판국에 “일개 PD” 운운하고, “제작자의 불순한 의도”라고 떠드는 대변인을 보니 외려 안쓰럽기까지 하다. 세상과 격리된 채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다 퇴화한 부류가 떠올라서다. 
 
최민우 문화부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