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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

중앙일보 2017.03.31 02:56 종합 33면 지면보기
스테판 해거드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표현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퇴영적이다. 이 말 속에는 쇠퇴하고 있는 미국의 지위를 다시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함축됐다. 그렇게 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경제 발전의 몇 가지 교훈, 특히 인적 자본 투자의 중요성을 배워야 한다.
 

미국 정치를 질식시키는 것은
불평등이 낳은 분노와 양극화
성장은 교육과 건강에 달렸다
한국에는 총체적인 개혁 필요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과거는 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수 백인 노동자라는 트럼프의 정치 기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 년간은 미국 10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높은 임금을 주는 자동차·철강·가전 같은 산업 분야에 취업할 수 있었다.
 
지난 35년은 특히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미국 백인 노동자들에게 가혹했다. 이 기간 동안에 미국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임금은 추락했다.
 
트럼프는 세계화와 동아시아·멕시코 탓을 한다.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실 트럼프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특히 미·중 무역에서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스킬을 요구하는 기술의 발전이다. 미국에서 ‘더 많이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 간의 불평등은 한국의 경우보다 더 빨리 심화됐다. 불평등 심화는 미국 정치를 질식시키는 분노와 양극화를 낳았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트럼프는 건설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는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는 보다 크고 강한 군사력을 건설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제조업과 석탄 산업 등 채굴 산업을 재건설하려고 한다.
 
그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선진국에서 제조업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는 15%가 안 된다. 한국은 예외적인 사례다. 제조업 고용은 감소했지만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이례적으로 높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세는 뚜렷하다. 우리는 오래전에 서비스업이 지배하는 탈산업화 세계로 들어섰다.
 
문제는 서비스 분야 고용에서 고숙련·저숙련이 각기 차지하게 될 비중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노동력의 교육과 건강 수준이다. 이 두 측면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미국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 교육을 받은 25~64세 인구를 보면 한국과 미국은 선진국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자 비율에서 한국이 선진국 중 6위인 반면 미국은 25위다. 미국은 20여 년 전부터 고등학교 졸업자 비율의 증가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차이는 널리 알려져 있다. 표준화된 과학 시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70개국 중 11위다. 한국은 1~10위 국가들과 점수 차이가 크지 않다. 미국은 25위다. 수학은 한국이 7위, 미국은 40위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과학이나 수학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읽기 시험에서 한국이 7위, 미국은 24위다.
 
보건 분야를 들여다보면 미국의 처지는 더욱 암울하다. 미국은 그 어떤 다른 선진국들보다 의료·보건 분야에 돈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한참 밑이다.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인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미국 내 건강 문제는 바로 트럼프의 지지자들에게 집중돼 있다. 미국의 중년 백인들은 “절망사(?望死·dying of despair)”로 내몰리고 있다. 케이스와 디턴은 선행 연구에서 마약, 음주, 자살, 만성 간 질환, 간 경변을 중년 백인 미국인들의 사망률 증가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들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중년 백인은 이들 질병뿐만 아니라 사실상 다른 모든 질병의 발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다. 한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선진국의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만 뒤처지고 있다.
 
교육과 보건 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어렵다. 한국 또한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대졸자 실업률은 OECD에서 최고 수준이다. 한국이 당면한 도전이다. 대졸자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선 교육 개혁을 넘어서는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훈은 명확하다. 한국의 장기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꾸준한 교육 투자였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이후 한국은 점진적으로 보편적인 의료보험 제도를 발전시켰다. 한국은 의료 분야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남성 사망률과 여성 사망률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 자살률도 이상하리만치 높다. 백인 중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한국인들, 특히 남성들은 ‘절망사’를 체험하고 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진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는 미래의 노동력이 요구하는 고숙련과 건강·보건 분야에 보다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한·미 양국에서 사회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한·미 양국의 장기적 성장이 주는 교훈을 놓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성장은 잘 교육받고 건강한 노동력에 달렸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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