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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안보에 건성인 보수도 있나

중앙일보 2017.03.31 02:54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논설위원

최상연논설위원

곧 무너질 것 같은 북한이지만 정말 곧 망할 거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을 보면 누가 봐도 북한 정세가 불안해 보이는데 김정은 통치엔 이상 징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따지고 보면 뭐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란다. 영국 학자 헤이즐 스미스는 평양에서 2년간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이 나쁜 행위자일 순 있지만 미친 행위자는 아니다”고 결론 냈다.
 

한반도 운명 가를 6차 북핵실험
보수는 왜 대선이슈로 못만들까

미 텍사스대 제이슨 브라운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45개 독재국 중 독재자가 아들에게 정권을 넘긴 세습 국가는 북한만이 아니다. 9개 나라나 된다. 세습을 시도한 경우가 23번이었다니 성공률도 꽤 높다. 세습 시도나 세습이 생각보다 일반적이란 건데 지배연합(Power Group) 합의가 ‘독재자 아들’로 모이기 일쑤여서란다. 기득권 유지에 유리하단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흔들리는 게 더 이상한 일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흔들리는 기미조차 없는 머리맡의 이 형제 나라가 나쁜 행위자를 넘어 아주 많이 위험한 행위자란 점이다. 한 손엔 깡통 들고 다른 손엔 핵을 들고, 구걸과 협박을 수십 년째 반복하는데 그것도 이젠 막바지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핵미사일이 실전 배치되고 2~3년 후엔 50기 정도로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초읽기라는 6차 핵실험에선 서너 발을 동시에 터뜨린다는 데 핵실험 완결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로도 잡을 수 없는 건 물론이다. 더 나아가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뜻이어서 미·일은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북한을 공격할 빌미를 갖는다. 직접적인 자국 방위에 동맹국 의사를 물을 이유가 뭔가. 가뜩이나 한반도 운명이 걸린 주요 외교안보 이슈에서 우리 입장이 배제되는 코리아 패싱, 말하자면 ‘한국 왕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마당이다.
 
이런 겁나는 사태가 어쩌면 벌써 시작됐다는 느낌도 든다. 일주일 뒤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 과정엔 트럼프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등장하는 모양이다. 아직 모르지만 선제타격안까지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여론조사론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이 미국은 북한 핵시설을 정밀 타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안보가 심각하다는 사람은 10명 중 9명이다. 중국 관영매체까지 잇따라 한반도 전쟁을 거론하는 심란한 상황이다.
 
당연히 정치가 풀어내야 할 숙제인데 정작 걱정이 가득한 건 국민들뿐이다. 대선판에선 쟁점은커녕 거론하는 사람이 드물다. 당장 예선이 본선이란 더불어민주당 경선전에서 외교안보와 북한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다. 한심한 건 ‘안보는 보수’라는 보수 정당의 경선전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거다. 이래서야 가뜩이나 갈린 외교안보 국론이 모아질 까닭이 없다. 미국은 우리의 이중 신호에 한숨을 몰아쉰다.
 
정치권의 안보 동맹이 당장 나와도 시원찮을 판이다. 최소한 안보 공통공약이라도 내놔야 할 보수당은 대통령 탄핵당과 반대당으로 갈라서더니 이젠 ‘가짜 보수’란 표현을 쓸 수 있네 없네 하는 소송에나 열을 올린다. 오늘 결판나는 자유한국당 경선전은 시종일관 대통령 구속 여부가 쟁점이었다. 기껏 나온 외교안보 공약이란 건 ‘집권 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겠다’거나 ‘미세먼지 책임을 물어 중국에 환경부담금을 물리겠다’는 수준 미달의 말장난이다.
 
어제 세월호가 3년 만에 팽목항을 떠났다. 같은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섰다. 이젠 이런 대형 이슈를 잊고 안보로 관심을 돌리자는 게 아니다. 지금 겪는 초유의 대란과 위기의 뿌리가 세월호였던 만큼 더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는 거다. 세월호가 보수 탓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보수 정부의 실패였다. 그럼에도 보수가 다시 정권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안보만큼은 세월호를 만들지 않겠다고 호소해야 하고 다짐엔 진정성이 느껴져야 한다. 북핵 위협에 눈감고, 안보에 건성이면 보수 정치는 도대체 왜 있어야 하는가.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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