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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곳곳 ‘고통분담 먼저 보여주자’ 소식지

중앙일보 2017.03.31 02:22 종합 10면 지면보기
지난 29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선박 건조 작업장. 건조가 거의 끝난 드릴십(해양플랜트) 9척이 선주에게 인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지난 29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선박 건조 작업장. 건조가 거의 끝난 드릴십(해양플랜트) 9척이 선주에게 인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회사를 살리겠다는 처절한 노력과 고통 분담을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정부 지원 결정 이후 거제 르포
선주들에게 인수 안된 드릴십 9척
기로에 선 회사의 현실 보여줘
회사 자구 노력 보여주기 위해
거제 사택도 모두 매물 내놓아
노조도 임금 10% 삭감에 긍정적

지난 28일 오후 찾은 경남 거제시 옥포동 대우조선해양 사무실 곳곳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힌 회사 소식지가 놓여 있었다. 정성립 사장은 소식지에서 “또다시 추가 지원을 받게 돼 송구스럽다. 노사가 함께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구 노력을 이행하자”고 했다.
 
노조 사무실을 나와 해양플랜트 건조장으로 가니 작업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완성을 앞둔 드릴십(해저에서 원유나 가스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 9척만 있었다. 2010년 전후 대우조선 등 국내 빅3 조선업체들은 1척에 8000억~1조원 하는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를 경쟁적으로 수주했다. 그 해양플랜트들은 지금 조선업체 부실의 주범으로 꼽힌다. 저가 수주 논란 속에 저유가·경기불황으로 선주들이 제때 인수하지 않으면서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현장의 한 직원은 “저 드릴십들은 현 대우조선 모습을 보여준다”며 “하루빨리 선주에게 인도돼 우리도 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정부가 대우조선에 2조9000억원의 추가 지원을 결정하자 회사 임직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 듯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김영보 대우조선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임직원과 가족을 포함해 10만여 명의 생계가 달려 있어 밤잠을 못 자고 노심초사했다”며 “생사기로에서 간신히 살아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이번 지원에는 ‘모든 이해 관계자의 손실 분담’이라는 조건이 있다. 회사의 추가 자구 노력과 채권자가 채무 조정에 동참하지 않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회사 관계자는 “자구 노력이나 채무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 당국이 법원에 사전회생계획제도(법정관리+워크아웃)를 신청한다”며“이렇게 되면 인력·설비 감축 등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선박 계약 취소나 신규 수주 난관 등으로 회사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지난 1년6개월간 인력 감축과 부동산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하고 있다. 2015년 1만3000여 명(사무직+생산직)이었던 직원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3100여 명이 구조조정됐다. 같은 기간 협력업체는 180개(직원 3만8000여 명)에서 137개(2만1000여 명)로 줄었다. 남은 직원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임직원들은 월급 10~30%를 자진 반납했고 순환무급휴직, 학자금 등 복리후생비 지급 중단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한 사무직 직원은 “우리도 언제 옷을 벗을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임성일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조합원 평균 1400만~2000만원 정도 임금이 줄었다. 생계가 곤란해져 대리운전기사 등 ‘투잡’을 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에 지원 조건으로 전 직원 임금 10% 반납을 포함한 총액 인건비 25% 감축(2016년 대비)을 요구한 상태다. 회사는 물론 노조도 이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서울 중구의 본사 사옥을 비롯해 서울 지역 부동산은 거의 매각했다. 거제에서는 사원 기숙사·사택까지 매물로 내놓았다. 거제 옥포동 기숙사(5개 동 466세대·미혼 직원), 사택(10개 동·304세대·기혼), 옥림동 사택 겸 기숙사(28개 동 1298세대)가 대상이다. 기숙사는 1인당 매달 3만원, 사택은 23평 기준 보증금 1000여만원에 관리비 20만원 정도로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기숙사 등이 매각될 경우 그곳에서 생활하던 직원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한 직원은 “지금은 값싸게 살고 있는데 매각되면 비용도 더 많이 들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회사는 다음달 17, 18일 채무 조정을 위한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회사 차·부장 200여 명이 전국 회사채 보유자들을 찾아가 그동안의 자구 노력을 설명하고 만기 연장 등 채무 조정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거제는 대우조선·삼성중공업 2개 조선사에 지역 경제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며 “채무 재조정 등 후속 조치가 잘 돼 조선업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고 말했다. 


거제=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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