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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연명치료 거부 ‘웰다잉 서약서’ 20만 장 휴지조각 될 판

중앙일보 2017.03.31 01:58 종합 16면 지면보기
서울 서대문구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무실에 1만 여장의 의향서가 보관돼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서울 서대문구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무실에 1만 여장의 의향서가 보관돼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유명숙(70·여)씨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3년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s, 이하 AD)’를 썼다. 앞으로 임종이 닥치면 자신에게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명절 때 집에 온 자녀에게 맡겼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 입법 예고
민간 단체 통해 이미 작성한 20만 명
새 법정 양식으로 제출해야 효력
“기존 서약서 자동전환 되게 지원을”

유씨는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이하 사실모)의 설명을 듣고 AD를 알게 됐다. 하지만 서류를 받아놓고도 1년 넘게 망설였다.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무섭기도 했고요.”
 
유씨는 자녀와 상의했다. 자녀들은 “괜찮다”며 용기를 줬다. 주변에서 AD를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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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Well Dying)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2010년 이후 사실모를 통해 AD를 작성한 사람이 약 20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AD가 무용지물이 될 상황에 부닥쳤다. 정부가 지난 22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하고 새 AD 양식(법정 양식)을 제시하면서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 중단은 내년 2월부터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시점 이후에 법정 양식에 맞게 작성한 AD만 유효하다는 것이 보건복지부 입장이다. 이렇다 보니 이미 AD를 작성한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다. 유씨는 “정말 힘들게 작성했는데 새로 써야 한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황당해했다.
 
홍양희 사실모 공동대표는 “그동안 민간에서 경로당·복지관 등을 돌며 연명의료 중단의 의미를 설명하고 AD 작성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20만 명의 AD를 무효로 한다고 하니 납득이 안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대표는 “민간의 노력 덕분에 연명의료결정법도 만들어졌다. 20만 명의 AD가 법정 양식으로 자동 전환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도 “어떻게 법을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존 AD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황의수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민간에서 작성한 AD와 법정 양식의 내용이 일부 다르다. 더욱이 민간에 AD를 낼 때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대로 승계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황 과장은 “법적 효력이 생기려면 법정 양식에 맞춰 새로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달라지는 제도를 문답으로 풀어본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를 하지 않고 인공호흡기 착용을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자는 취지다. 법정 AD 서류에는 네 가지 행위를 할지 여부, 호스피스 이용 계획 등을 표기한다. 네 가지 외 통증완화 치료, 영양·수분 공급, 단순 산소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지금 AD를 작성하면 안 되나.
“되도록이면 내년 2월에 법정 양식으로 작성하는 게 좋다. 그때 생기는 등록기관(보건소·의료기관·민간단체 등)에 등록하면 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새로 생길 예정)이 이걸 갖고 있다가 연명의료 중단 상황이 오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AD 작성 후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좋다. 본인이 의사를 표하기 힘들 때 가족들이 활용할 수 있다. 민간 AD는 등록할 수 없어 활용에 한계가 있게 된다.”
 
AD를 작성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의사가 말기환자 등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하고 환자가 서명하면 된다. 서명할 수 없는 상황이면 육성을 녹취해야 한다. 가족이 대신할 수 없다.”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면.
“가족 2명이 ‘우리 아버지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전문의가 확인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의사가 가족의 서명을 받아 ‘환자 의사 추정서’를 작성해야 한다. 환자의 뜻을 모르면 가족 전원이 찬성해야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자 가족 결정 확인서’를 작성한다. 실종선고를 받았거나 의식 불명인 경우, 성년 후견인을 둔 사람은 가족에서 제외해도 된다.”
 
8월 4일 호스피스 이용이 쉬워진다는데.
“지금은 말기 암 환자만 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8월에는 만성간경화·에이즈·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환자도 이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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