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택희의 맛따라기] 주인도 먹고 싶어 만드는 돼지국밥·냉면…박찬일의 ‘광화문국밥’

중앙일보 2017.03.31 00:02
지난주 문을 연 박찬일 주방장의 ‘광화문국밥’ 대표메뉴 돼지국밥 한 상. 부산·경남 돼지국밥과는 많이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종류가 다른 음식이다. 국물이 맑고 맛은 깔끔하다. 박씨는 ‘서울식 돼지장국밥’이라고 해야 정확한 명칭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밥은 토렴해 나오는 게 아니라 밥이 따로 나온다. 고시히카리 쌀로 바로 지은 밥이라 밥알이 살아있고 부드럽다.

지난주 문을 연 박찬일 주방장의 ‘광화문국밥’ 대표메뉴 돼지국밥 한 상. 부산·경남 돼지국밥과는 많이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종류가 다른 음식이다. 국물이 맑고 맛은 깔끔하다. 박씨는 ‘서울식 돼지장국밥’이라고 해야 정확한 명칭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밥은 토렴해 나오는 게 아니라 밥이 따로 나온다. 고시히카리 쌀로 바로 지은 밥이라 밥알이 살아있고 부드럽다.

지금은 사라진 '무교탕반' 맥 잇는 서울식 장국밥 
박찬일(51) 주방장이 한국음식점 ‘광화문국밥(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53 동화면세점 뒤 정동주차장 안/전화 02-738-5688)’을 새로 냈다. 돼지국밥·냉면·수육을 메뉴로 내놨다. 지난 23일 문을 열자마자 연일 난리다. 오늘로 개업 9일째, 영업일 엿새. 이틀은 돼지국밥을 하루 100그릇, 나흘은 150그릇 준비했지만 먹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손님이 많다. 냉면은 스탭 구성에 차질이 생겨 아직 정상 가동을 못하고 있다(4월 6일 가동 예정). 개업 일정을 예고해 미루지 못하고 문을 열면서 ‘임시개업’이라고 응급조치를 했다.
  
그가 음식점을 낸다는 얘기를 들은 건 달포쯤 전이다. 메뉴가 돼지국밥·냉면임을 알았을 때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이었다. 그의 여러 가지 글을 통해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음식점을 차린다니 우선 놀랐다. 글과 이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음식 솜씨가 있고, 나도 즐겨 먹는 메뉴여서 반가웠다.
 
어떤 분야든 경지에 오르면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박 주방장(그는 ‘셰프’보다 이 호칭을 선호한다)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태리요리가 전공이지만 그의 글은 한국음식에 관한 것이 훨씬 많다. 특히 국수(냉면·자장면)와 국밥에 대한 기호는 집착에 가깝다. 전국 어디든 좀 한다는 집은 그의 기습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직접 만들어 주방 직원들과 밤참으로 나눠 먹는 것도 봤고, 집에서도 틈만 나면 만들어본 얘기를 연재 칼럼에 소개하기도 했다(※’국수주의자 박찬일’ 중 ‘내레 랭면 뽑아봤수다’ 한겨레 2014년 3월 13일자).
돼지국밥 국물을 먹다 보면 안에 버크셔K 다릿살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돼지국밥 국물을 먹다 보면 안에 버크셔K 다릿살이 푸짐하게 들어있다.

밥은 한꺼번에 말지 말고 두어 번 나눠서 말아야 밥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밥은 한꺼번에 말지 말고 두어 번 나눠서 말아야 밥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돼지국밥의 국물. 속이 훤히 보일 만큼 맑다. 맑다고 맛이 묽은 것은 아니다.

돼지국밥의 국물. 속이 훤히 보일 만큼 맑다. 맑다고 맛이 묽은 것은 아니다.

국수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나는 그에게 빼앗긴 듯 아쉽고 탐나는 게 하나 있다. ‘국수주의자’. 그는 ‘한겨레’ 목요일자 ESC섹션에 2014년 2월부터 한 달 한 번 꼴(연재 초기엔 격주)로 칼럼을 연재한다. 지난 23일자에 38번째 글이 나갔다. 타이틀이 ‘국수주의자 박찬일’이다. 거기에 대응하는 작명을 여러 번 생각해봤다. 더 나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작명의 선수를 뺏겼고, 응수도 실패했다. ‘의문의 2패’를 당한 셈이다.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패인은 그의 글에 답이 있다. 연재 첫 회에 “국수는 나를 위로했다”고 썼다. 나는 국수를 좋아하는 일방적 감정뿐인데 그는 위로를 받는 상호작용까지 한다. 국수와의 교감이다. 2500년 전 공자(BC 551~BC 479)의 가르침에 다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공자 가라사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옹야(雍也)편].”
이태리음식 전공인 박찬일 주방장이 새로 낸 한식당 ‘광화문국밥’ 입구. 간판이 주인의 대쪽 같은 성격대로 깔끔하고 강렬하다. 개업 전날(3월 22일) 약속을 하고 찾아가자 반갑게 맞고 있다.

이태리음식 전공인 박찬일 주방장이 새로 낸 한식당 ‘광화문국밥’ 입구. 간판이 주인의 대쪽 같은 성격대로 깔끔하고 강렬하다. 개업 전날(3월 22일) 약속을 하고 찾아가자 반갑게 맞고 있다.

메뉴판도 간판처럼 간결하고, 내용도 간소하다.

메뉴판도 간판처럼 간결하고, 내용도 간소하다.

양식 주방장인 그가 한식집을 낸 이유는, 잘하는 음식 파는 사업(서교동·광화문 ‘몽로’)이 자리를 잡았으니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본인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심산인 듯하다. 맛 좀 보자고 문자를 보내 약속을 잡았다. 개업 전날 오후 4시였다. ‘정동주차장’을 가로질러 있는 입구는 멀리서도 보였다. 네모 반듯하면서 아무 장식 없이 간결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답다. 흰 바탕에 예서 풍의 획이 강한 검은 글씨로 ‘광화문국밥’이라고 쓰고, 그 아래 줄을 맞춰 작은 글씨로 ‘본점 738-5688 일반음식점’이라고 표시했다. 1970년대 페인트 간판이 유행하던 시절 시멘트 벽을 미색으로 칠하고 검게 상호를 쓴 읍내 중국집 간판을 조금 세련되게 고친 듯하다. 안에 주방과 홀 사이 긴 벽 위에는 하늘색 바탕에 간판과 같은 서체의 흰 글씨로 ‘국·밥·수·육·냉·면’이라고 한 글자씩 간격을 맞춰 커다랗게 써 붙여놨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주인의 대쪽 같은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함께 간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와 사진을 찍으며 입구에서 서성대자 박 주방장이 환하게 웃으며 나온다. 쑥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무슨 사진을 다 찍고 그러세요”라며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내부는 긴 직사각형을 다시 길게 나눠 주방을 앉혔다. 남은 공간에 좌식·입식 두 줄로 68석을 배치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혼밥(혼자 먹는 밥)’ 자리 8석, 2인 자리 3~5개도 마련했다. 메뉴에선 주인 취향이 강렬하게 읽혔다. 돼지국밥(8000원), 술국(1만8000원), 평양냉면(물 9000원, 비빔 9500원), 수육(2만3000원, 반 접시 1만3000원), 소내포수육(2만5000원). 특이하게도 한식당에서 중국 술 연태고량주(250ml 1만9000원)를 판다.
수육 반 접시에는 삼겹살(스페인산 두록)과 앞·뒷다리 살(버크셔K) 5~6점씩 담겨 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새우젓(추젓)이 아주 깔끔하다.

수육 반 접시에는 삼겹살(스페인산 두록)과 앞·뒷다리 살(버크셔K) 5~6점씩 담겨 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새우젓(추젓)이 아주 깔끔하다.

막걸리를 권하는 박찬일 주방장. 시간이 마땅치 않아 자주 못 마시지만 그도 어지간한 애주가다.

막걸리를 권하는 박찬일 주방장. 시간이 마땅치 않아 자주 못 마시지만 그도 어지간한 애주가다.

요즘 보기 드물게 수저 집에 수저와 젓가락을 담아 내왔다. 수저통에 무더기로 담아 둬 여러 사람 손을 타게 하는 여느 식당에 비해 안심이 되는 차림이다.

요즘 보기 드물게 수저 집에 수저와 젓가락을 담아 내왔다. 수저통에 무더기로 담아 둬 여러 사람 손을 타게 하는 여느 식당에 비해 안심이 되는 차림이다.

앉자마자 술상으로 반긴다. 마주앉은 셋이 서로 애주가임을 알고 있어 자연스럽다. 하얀 수저 집에 넣은 수저와 젓가락을 먼저 내놨다. 국밥 집으로서는 신경을 쓴 깔끔한 준비다. 수저통에 무더기로 담아놔 손님마다 손으로 문지른 걸 다른 손님이 집어 써야 하는 여느 식당에 비해 얼마나 청결한가. 수저 집에는 간판 서체대로 ‘광화문국밥’을 인쇄하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본점’ 표시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분점을 낼 계획이 있나 보다. 수육 반 접시가 새우젓, 깍두기, 풋고추와 마늘, 된장과 함께 차려졌다. 삼겹살(스페인산 두록), 앞·뒷다리 살(버크셔K)을 5~6점씩 담았다. 삼겹살은 삶아서 눌러 냉면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을지면옥’ 수육과 모양이 비슷하다. 냉면 좋아하는 박 주방장이 첫손에 꼽는 냉면집이 을지면옥이다.
 
새우젓이 눈에 띄었다. 깨끗한 추젓을 독에서 꺼낸 상태로, 아무 양념도 하지 않고, 물기도 거의 없이 내준다. 새우가 작지만 모양이 또렷하게 살아있다. 다른 집에서는 대개 물을 타고 고춧가루나 다진 고추·파 등을 넣어 양념을 한다. 새우는 풀어져서 형체가 선명하지 않다. 설탕과 MSG도 들어간다. 새우젓은 박 주방장의 문창과 후배인 김민정(41) 시인 제부가 덕적도에서 운영하는 새우젓상회에서 공급받는다.
 
고기 한 점에 작은 새우 두 마리를 얹어 우물거려보니 졸깃함과 감칠맛이 입안에서 상승기류를 돌린다. 돼지 품종을 물었다. “흑돼지예요” 한다. “버크셔K 아니냐”고 묻자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냥 흑돼지라고 해요”라고 답했다. 이런 사람이다. 그는 요리사 가운데 버크셔K 선구자에 속한다. 5년째 쓰고 있다. 그가 홍대 앞에서 ‘라 꼼마’를 운영할 때 메뉴였던 된장 숙성 돼지목살 스테이크 맛을 잊지 못한다.
물냉면(9000원)의 메밀 함량은 80%, 육수는 소 사태 살과 약간의 잡뼈로 우렸다. 소·돼지·닭 국물을 섞은 육수보다 간결한 맛이다. 값은 싼 편이지만 맛은 주류 냉면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물냉면(9000원)의 메밀 함량은 80%, 육수는 소 사태 살과 약간의 잡뼈로 우렸다. 소·돼지·닭 국물을 섞은 육수보다 간결한 맛이다. 값은 싼 편이지만 맛은 주류 냉면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이어서 냉면이 나왔다. 메밀 녹쌀을 제분해 뽑은 듯 면은 깔끔한 상아색으로 하늘거렸다. 메밀 함량이 80%라고 했다. 미국산을 쓴다. 제분기까지 들일 형편이 안 돼서 공장과 계약해 매일 필요한 만큼 바로 빻은 가루를 받아서 쓴다. 육수 색은 을지면옥과 우래옥을 섞은 듯하다. 소 사태 살과 약간의 잡뼈에 무·양파·대파와 한 가마솥 당 월계수잎 1장만 넣고 끓인다. 간은 다른 냉면집보다 심심한 편이다. 염도를 0.9%~1% 정도로 잡았다. 수저로 홀짝 홀짝 떠 먹어보니 차분하게 가라앉은 고기 맛이 부드럽고 그윽하다. 소고기 한 가지로 국물을 뽑아서 간결하고 명쾌하다. 냉면 값이 9000원임을 감안하면 훌륭한 맛이다. 그는 냉면에 대해 쓴 글이 이미 많지만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냉면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전문점을 낼 줄은 미처 몰랐다.
냉면은 꼭 해보고 싶었다. 돼지국밥과 함께하면 여름·겨울 계절에 따라 서로 보완이 될 것 같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육에 술 한잔하는 여유와 낭만도 있고, 주변에 언론사(조선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경향신문·세계일보·채널A·TV조선 등에 포위된 형국)와 회사들 많으니까 그들에게 편한 음식 아닐까 생각했다. 냉면 유행의 세태에 불만도 있었다. 맛보다 허명(虛名)을 따라 몰려다니는 풍조가 싫었다. 맛이 아니라 오래된 냉면집 신화에 너무 경도되고 매몰된 것 아닌가. 실제 해보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그는 비보도를 전제로 손님들이 줄 서서 먹는 냉면 집 두 곳의 실명을 대며 내가 해도 그만큼은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도 오래 하고, 냉면집 열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국수주의자’라는 건 많이 알려졌지만 냉면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어머니가 냉면을 아주 좋아하셨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따라다니며 많이 먹어봤다. ‘후천 유전자(DNA)’인 셈이다. 어머니는 냉면 집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1970년대 후반~1980년대) 모래내시장 안쪽에서 10년쯤 했다. 돼지갈비와 된장찌개백반을 주로 팔았지만 5~9월에는 압출식 냉면기를 들여놓고 냉면을 했다. 닭뼈로 육수 뽑고 하는 거 많이 봤다. 그런 인자들이 섞여 냉면이 인생의 음식이 됐고 대물림 음식이 됐다. 그때 냉면기는 청계천에서 맞춰왔는데 툭하면 고장 났다. 주변 공장과 시장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면서 밥값을 외상 장부에 적어놓고 가는 ‘수첩거래’가 많았다. 너무 힘이 들어 10년 하다가 그만둘 때 떼인 외상이 많았다.
개업 준비를 지켜보고 있는 박찬일 주방장. 테이블은 1인석, 2인석 4인석을 고루 배치했다.

개업 준비를 지켜보고 있는 박찬일 주방장. 테이블은 1인석, 2인석 4인석을 고루 배치했다.

입구에서 바라본 실내. 입식·좌식 자리도 적절히 나눠 배치했다.

입구에서 바라본 실내. 입식·좌식 자리도 적절히 나눠 배치했다.

‘국·밥·수·육·냉·면’이라고 한 글자씩 써 붙여 이 음식점의 본색을 강렬히 드러내는 내부 장식.

‘국·밥·수·육·냉·면’이라고 한 글자씩 써 붙여 이 음식점의 본색을 강렬히 드러내는 내부 장식.

영향을 받은 냉면 집은 없나.
특별히 의식한 집 없다. 각자 만들면 자기 스타일이 된다. 냉면 하는 거 어렵지 않다. 냉면은 차기 때문에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차가운 면 요리를 안 하는 이유는 맛이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맛을 느끼기 어려우니까 알 때까지는 전통 있고 이름있는 집으로 몰린다. 계절을 많이 타기도 해서 운영이 어려우니까 냉면 하는 집이 줄었다. 그 바람에 살아남은 냉면집에 대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냉면은 신비한 음식이 됐다. 그런 맹신을 깨고 싶었다. 명색이 양식 요리사지만 나도 한다, 이걸 보여주고 싶었다. 냉면 좀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떠들어대는 것도 보기 싫었다.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면서 마치 다 아는 양, 메밀 몇 %라느니, 갓 도정해 갈아서 쓴다느니….즉석 제분한다는 집에 대해 실제 알아보니 가루 대주는 집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논란에 말참견 못하면 무딘 사람 취급하는 과도한 ‘신화화’가 싫었다. 웃겼다. 불편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하는 것이다.    
9000원이면 이 수준의 냉면 값으로는 저렴하다.
원가가 꽤 들더라. 고기가 어느 정도는 들어가야 맛이 나고, 수입 메밀도 밀가루보다 값이 1kg당 7~10배 나간다. 냉면 값이 비싸다는 불평이 많지만 넣을 것 제대로 넣고 하면 원가 자체가 비싸다. 안 보이는 손실도 많다. 기계반죽은 5~6인분 돼야 할 수 있다. 1~2인분 주문에 반죽을 해서 남은 걸 두면 삭는다. 소다 섞지 않거나 메밀 순도가 높을수록 빨리 삭는다. 냉면을 9000원 받아 부가세 빼면 8100원이다. 재료비가 30% 넘어가면 운영이 어렵다. 해보니까 30% 넘어가더라. 어떤 냉면 손님들이 올지 모르지만 1만원 받아도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9000원은 싸다. 음식점에 참여한 투자자가 1만1000원을 받자고 했지만 이 동네에선 1만원 넘으면 손님 안 온다고 9000원만 받자고 했다. (※친구와 몇 사람이 자본을 대고 박 주방장은 기술을 댔다. 지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우선 파는 게 중요하니까 개업을 서두르고 계산은 뒤로 미뤘다.)
 
냉면에 이어서 돼지국밥이 나왔다. 나는 이 집 음식을 두루 먹어보겠다고 아침·점심을 다 거른 터였다. 하얀 사기대접에 넓적하게 저민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고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맑은 국물에는 얇게 썬 파와 부추 몇 가닥이 뿌려져 있다. 국물의 김이 설핏 감도는 코끝에 육향이 서렸다. 구수하다. 국물은 ‘어~’소리가 나게 시원하고 감칠맛 있다. 맑으면서 깔끔한 자태와 맛에서 ‘서울 깍쟁이’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부산·경남 돼지국밥의 애호가가 돼지국밥 집을 냈으니 의당 뚝배기에 담긴 진한 국물을 기대하고 갔던 탓이다.
돼지국밥 끓이는 가마솥. 한 번에 50~70인분을 끓일 수 있다.

돼지국밥 끓이는 가마솥. 한 번에 50~70인분을 끓일 수 있다.

돼지국밥의 본향이라 할 부산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서울음식이라고 봐야 한다. 장국밥에 가깝다. 기록에 남은 ‘무교탕반’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한다. 돼지장국밥이라고 하면 맞겠다. 부산도 돼지국밥이 동네마다, 음식점마다 다르다. 터프하다는 공통점은 있다. 부산에 가면 ‘신광국밥’이나 ‘할매국밥’에 많이 가는 편이지만 다른 집에 가도 맛이 없었던 적은 별로 없다. 동네마다 웬만큼 하는 집은 곳곳에 있다.버크셔K는 일반 돼지보다 비싸고 맛도 다르다. 아미노산 구조가 다르다. 소고기국 맛도 난다. 감칠맛이 일반 돼지의 2배쯤 된다. 고기는 10일~2주 숙성해서 쓴다. ‘몽로’에서는 3주 숙성한다. 그렇게 해서 국밥을 만들면 소고기로 끓이던 서울 장국밥 맛과 비슷하다. 해보니까 예전 무교동 장국밥과 비슷하게 나왔다. 어렸을 때는 음식점에 소고기국밥이나 장국밥이 있었다. 냉면 집에서 장국밥을 팔았다. 지방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서 그 사람들 입맛에는 서울식 음식 맛이 너무 차분하고 자극적인 맛이 없어 잘 먹지 않으니까 점차 사라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평양 온반도 비슷하다.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갈비탕에도 온반에 쓰는 사태·양지 들어가니까 득세한 갈비탕에 편입된 게 아닌가 싶다. 장국밥이 사라진 공백을 우리 돼지국밥이 어느 정도 메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부산·경남 스타일과 많이 다르지만 돼지국밥의 형식미는 가지고 있으니까 그 지역 출신들도 이 국밥을 좋아하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 구조는 비슷하다.
국밥을 왜 좋아하는가.
국밥 앞에 앉으면 어른이 된 것 같다. 값도 싸고, 뭔가 힘겨운 사람들 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좋아하다가 빠지면 영화를 직접 찍는다 하듯 요리사로서 돼지국밥을 좋아해 자주 먹다가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차린 것이다. (※그는 2014년 펴낸 책 『뜨거운 한 입』에서 콩나물국밥에 대해 “한마디로 어른이 되는 맛”이라고 했고, 외아들로서 20대 초반 부친상을 치르며 주위 강권으로 먹게 된 콩나물국밥의 느낌을 “아, 슬픔을 배반하는 그 맛이라니. 그때부터 콩나물국밥이 좋아졌다”고 고백했다.) 한식 전문은 아니지만 음식을 만드는 원칙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뭘 하더라도 잘하자는 게 평소 자세다. 좋아하는 음식을 하니까 좋아하는 만큼은 맛을 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조리과학을 알고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모든 음식에 그 원리를 반영한다. 한식은 전통도 좋지만 조리과학이 더 들어가야 한다. 위생은 더 철저히 하고 맛은 더 나오게 해야 한다. 공부한 요리사들이 그런 분야에 기여해야 한다. 외국요리의 과학적 데이터가 한식에도 도움이 된다. 같은 기술로 더 좋은 요리를 할 준비과정이 된다.
국밥인데 토렴하지 않고 밥을 따로 주는 이유는.
토렴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밥을 내고 싶었다. 토렴하면 밥이 좋은 걸 표현할 수가 없다. 사실은 음식점 밥에 성질이 나서 그랬다. 밥을 사 먹으면서 밥에 만족한 적이 없다. 밥다운 밥이 없다. 눌린 밥, 냄새 나는 밥 … 손님들이 무심하니까 주인이 좋은 밥 안 주는 거다. 밥값이 싸니까 그런 거다. 밥에 100원만 더 쓰면 손님에게 좋은 밥 줄 수 있다. 하지만 밥값 올리면 손님 안 올 걸 걱정해야 한다. 그게 딜레마다. 이 작은 것도 고치기 어려운 외식업 구조가 가슴 아프다. 그거 고쳐보고 싶었다. 나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다. 밥값이 일본보다 싸지 않다. 그러면 맛은?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음식점 밥은 형편없다. 주인도, 손님도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나는 관심을 갖고 고쳐보고 싶다. 말로는 밥만 맛있으면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 밥을 왜 안 주는지 따져본 적이 있는가. 나는 좋은 밥을 해주고 싶다.
전기밥솥(30인용) 5개가 나와 있지만 모두 7개가 돌아가며 밥을 짓는다. 박찬일 주방장은 밥을 사 먹을 때 밥 같은 밥을 먹을 수 없어 화가 난다고 했다. 좋은 살로 밥을 지어 바로 손님 상에 내기 위해 여러 개의 밥솥을 준비했다.

전기밥솥(30인용) 5개가 나와 있지만 모두 7개가 돌아가며 밥을 짓는다. 박찬일 주방장은 밥을 사 먹을 때 밥 같은 밥을 먹을 수 없어 화가 난다고 했다. 좋은 살로 밥을 지어 바로 손님 상에 내기 위해 여러 개의 밥솥을 준비했다.

전기밥솥(30인용)이 5개나 된다.
자리가 좁아 안 내놨을 뿐 모두 7개를 샀다. 하루 7차례 순차적으로 취사해 바로 지은 밥을 손님 상에 내겠다. 쌀은 고시히카리(越光) 품종을 쓴다. (※밥을 들여다보면 국에 말기 아까울 만큼 밥알은 윤이 나고 탱글탱글하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가.
한식이든 양식이든 조리사 자격증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나라 자격증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없어도 여태 요리 잘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한식 주방에서 신는 장화는 사놨다. 한식 조리복도 3벌 구해놨다. 한번 해보겠다.
‘MSG는 죄가 없다’ 제목의 글을 봤다. ‘광화문국밥’은 화학조미료를 쓰는가.
냉면 육수에는 극소량 쓴다. 국밥에는 안 넣어도 버크셔K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고기에 채소와 향신채(마늘·생강) 약간 넣고 끓인다. 버크셔K는 맹물에 삶아도 비슷한 맛이 나올 것이다. 향신채는 혹시나 해서 조금 넣는다.
명란오이무침(1만원)은 박찬일 주방장이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한다고 했다. 개업을 앞두고 꿈에도 나타났다고 했다.

명란오이무침(1만원)은 박찬일 주방장이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한다고 했다. 개업을 앞두고 꿈에도 나타났다고 했다.

소내포수육에는 사태 살과 벌집위(양), 사태 힘줄(스지)이 들어간다.

소내포수육에는 사태 살과 벌집위(양), 사태 힘줄(스지)이 들어간다.

매콤양무침.

매콤양무침.

메뉴가 간소하다. 앞으로도 저렇게만 할 생각인가.
명란오이무침(1만원)도 있다. 내가 좋아해서 만든 안주다. 개업을 앞두고 명란무침이 꿈에 나와 하기로 했다. 명란은 부산 ‘덕화푸드’ 장석준 명장의 저염 제품을 받아 쓴다. 무치려면 터트려야 하니 자른 명란이나 터트린 것(송송명란)을 쓸 수도 있지만 값이 비싼 온전한 명란을 쓴다. 명란 막이 섞여 있어야 맛이 제대로 나기 때문이다. 매콤양무침(1만5000원)도 있다.  
 
점심은 예약이 안 된다. 저녁은 일부 예약과 바로 오는 손님을 안배해 받는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주방 마감 오후 9시), 휴식시간 오후 3시~5시. 토·일요일은 쉰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