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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보다 편한데’ 남성 피임약 시판 늦어지는 이유는

중앙일보 2017.03.30 18:00
여성 피임약 [중앙포토]

여성 피임약 [중앙포토]

 한번 투약하면 수년간 효과가 지속되는 남성 피임약이 인도의 한 스타트업 업체에서 개발됐다. 예상 시판가격도 10달러(약 1만1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대량 생산·유통의 길이 요원하다. 이 약을 남성들이 꺼릴 거라는 예측 때문에 발 벗고 나서는 제약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주사 한방이면 수년간 남성 생식력 억제 시술법
인도 스타트업 업체 개발…가격도 1만원대 불과
"제약업체 남성 경영진이 무관심" 상용화 먼 길


 
2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 동부 도시 카라그푸르에 위치한 스타트업 ‘인큐베드G 아이디어’는 남성의 정관에 젤 장벽을 만들어 생식 기능을 억제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피임법을 개발했다. 생리의학자 출신인 창업주 수조이 구하(76) 대표는 이 피임법이 “국소 마취 후 15분 간 주사로 투약하면 효과가 최소 수년간 지속된다”고 소개했다.
 
피임을 중단하고 생식기능을 회복시키는 방법도 간단하다. 이 젤 장벽을 녹이는 ‘복구 약’을 투약하면 되는데 가격은 피임약과 비슷한 10~12달러 수준이다.    
 
‘RISUG’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 피임법은 제때 사용될 경우 성공률이 98%로 콘돔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제약업계에선 콘돔을 대체할 남성 피임법에 큰 흥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거대 제약회사 경영진이 이런 남성 피임법에 관심 없는 중년 남성들이기 때문”이라고 허르얀 베닝크 부인과 전문의는 말했다. 베닝크 교수 본인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네덜란드 제약회사 오르가논 인터내셔널에서 남성 피임약 개발에 참여했지만 실제 상용화시키지 못했다.  
 
남성 피임기구는 사실상 콘돔 외에 없는 실정이다. [중앙포토]

남성 피임기구는 사실상 콘돔 외에 없는 실정이다. [중앙포토]

세계 여성 피임기구 시장은 연간 100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에 달하지만 남성 피임기구는 남녀가 중립적으로 활용하는 콘돔 외에는 사실상 없다. 2015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배우자 있는 여성의 60%가 피임약 등 현대적 피임법을 이용하면서도 남성 배우자의 콘돔에는 8%만 의지한다. 사실상 여성만 피임의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남성이 반영구 피임약을 환영하지 않는 이유로 ‘부작용 우려’가 꼽힌다. 실제로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후원으로 2008년 개발된 남성 피임약은 복용자들이 “평소보다 감정적 혼란이 증가했다”며 부작용을 호소해 시판이 중단됐다. 이 약이 호르몬을 조절해 남성 생식력을 억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피임약 또한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식이라 유사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피임에서 성 불평등’이 실제 원인으로 꼽힌다. 또 여성 피임약이나 콘돔은 지속적인 판매가 가능하지만 남성 피임약은 단 한번으로 수년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 제약업체들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  
 
구하 대표는 미국 비영리의료연구재단인 파르스무스재단과 협업해 RISUG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나는 이 약의 특허를 통한 재정적 이득을 바라는 게 아니다. 왜 피임 책임을 여자만 져야 하는가. 남녀가 대등한 파트너십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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