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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예고해 왔던 북한 외무성 핵 선제 타격 주장 왜?

중앙일보 2017.03.30 12:24
 북한은 과거 핵실험을 앞두고 외무성이 나서 공개적으로 대외에 핵실험 계획을 예고해 왔다. 

북 외무성 대변인 "핵타격 무장의 조준경으로 미국 들여다 보고 있다"
핵실험 준비하며 한미 핵공격 위협, '예고' 대신 '위협' 카드
정부 "핵실험 강행하기 위한 명분쌓기 용일 수 있어"


2013년 2월 실시한 3차 핵실험 때까지는 그랬다. 구체적인 실험 날짜를 밝히진 않았지만 짧게는 핵실험 버튼을 누르기 6일(2006년 1차), 길게는 26일(2009년 2차) 전이었다. 


첫 번째 핵실험을 앞둔 2006년 10월 3일 북한 외무성이 “핵시험(실험)을 하게 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특히 3차 핵실험(2013년 2월12일) 직전인 2013년 1월 24일(핵실험 2일전)엔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던 국방위원회(현 국무위원회)가 나서 “우리가 진행할 핵시험도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2차(2009년 5월 25일)와 3차 (2013년 2월 12일) 핵실험을 앞두고는 각각 외무성 성명을 통해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라거나 “핵억제력을 포함해 임의의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핵실험을 시사하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실시한 4차(1월6일)와 5차(9월9일) 핵실험 때 외무성의 ‘예고’는 없었다. 직접적인 예고 대신 ‘핵무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등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표현이 전부였다.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이 수시로 해오던 것이어서 4차와 5차 핵실험은 기습적으로 강행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31일까지도 북한의 ‘함구’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2011년 12월 사망) 때는 핵을 협상에 이용하면서 분위기를 봐가며 하나씩 카드를 꺼내서 사용했는데 김정은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핵개발 완성으로 달려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김정일이 주변국의 반응을 보아가며 냄새를 풍기고, 예고를 한 뒤 실험을 한 데 반해 김정은은 항상 핵실험 준비 상황을 유지해오다 필요시 실험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무성을 비롯해 북한 관영언론인 조선중앙통신은 핵실험 예고 대신 핵공격 카드를 들고 나와 주목된다.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29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책임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전략자산과 특수작전 수단을 끌어들인 미국에 있다“며 “(지난 26일)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의 ‘선제적 특수작전’ 경고는 정세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과 관련하여 특대형 도발자들을 후려치는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한미의)선제공격을 막고 자기를 지키는 길은 단호한 선제공격뿐”이라며 “지금 우리(북한) 군대는 섬멸의 포문을 열어놓고 핵타격 무장의 조준경으로 미국을 주시하고 있으며 움쩍하기만 하면 그 기회를 미 제국주의의 비참한 괴멸로 이어갈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과 미국을 향한 핵공격 위협에 나선 셈이다. 조선중앙통신 역시 “선제타격의 사소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선제적인 핵강타에 나설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핵개발의 명분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따라 한미 연합훈련의 내용이 강해진 것에 반발하는 측면과 향후 핵실험을 할 경우 명분을 쌓기 위한 주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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