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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워킹맘에게 불리한 등교 시간

중앙일보 2017.03.30 03:26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현영라이프스타일부 차장

박현영라이프스타일부 차장

워킹맘 A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어린이집 등원 시간 문제로 난감한 일을 겪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오전 8시에 데려갔더니 원장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개원 시간은 7시 반이지만 아이들 대부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온다는 걸 육아 카페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라’는 댓글 조언이 이어졌다. A는 “운영 시간 내에 아이를 맡기는 데도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정부의 보육 운영 시간 가이드라인은 평일 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전 7시30분~오후 3시30분이다. 번듯한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키우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건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장벽도 있다. 한국 초등학생은 보통 오전 8시40분쯤 등교한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는 자녀를 바래다주기 어렵다.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인데, 한국인 평균 통근 시간은 58분이기 때문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 유치원도 비슷하다. 9시가 넘으면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동네를 돌며 아이들을 태워 간다. 일하는 부모는 등원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조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비용과 품이 든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도 벗어난다.
 
새 학년 시작과 함께 자녀 등교 문제로 고민하는 워킹맘들을 보며 2년 전 만난 인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 마이클 타이털바움 박사가 떠올랐다. 옥스퍼드·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내며 50년간 인구 문제를 연구한 전문가다. 저출산 해법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모든 사회·문화적 요소를 재점검하는 데서 출발하라”고 조언했다. 출산·육아와 충돌하는 관습과 제도를 새로운 눈으로 찾아내 바꾸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한국은 초등학교 등교 시간이 늦은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없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미국 초등학교는 이르면 오전 7시20분에 등교해 7시40분에 수업을 시작하고 오후 2~3시쯤 마친다고 한다. 일본·독일·덴마크·스위스는 8시 전후로 등교한다. 이 중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는 없다.
 
일하는 여성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자녀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낳거나 적게 낳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기업이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여성 고용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학생의 수면권, 가족과 아침밥 먹을 권리를 이유로 거꾸로 등교시간을 늦추는 추세다. 수면권은 미국 초등학생처럼 일찍 자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고, 출근하는 부모와 아침밥을 먹으려면 등교 시간을 당기는 게 오히려 낫다. 저출산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해법 한 가지 이상씩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원인과 대책이 다면적이다. 일자리·주택·사교육비 같은 해묵은 과제에 20여 년간 수십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실패했다면, 등교 시간 조정 같은 새로운 어젠다를 고려해 볼 만하지 않을까. 일하는 부모의 고민을 한 가지라도 확실히 덜어줄 수 있다면 말이다.
 
박현영 라이프스타일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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