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I 기사는 사심 없어 강해 … 장고 바둑은 사람이 이길 수도”

중앙일보 2017.03.30 01:41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 21~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의 장외 스타는 조치훈(61) 9단이었다. 심판 자격으로 개막식에 등장한 조 9단은 뜬금없이 “나는 ‘딥젠고’를 응원한다”고 고백하더니 “딥젠고가 세계적인 기사들을 이기면 내 위상이 더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자신이 지난해 11월 딥젠고와의 대결에서 2승1패로 승리한 것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말이었다. 대국이 열리는 동안 조 9단은 공개 해설장에서 대국 해설을 하면서 또 한번 좌중을 휘어잡았다. 재기발랄한 언변으로 그가 가는 곳마다 늘 폭소가 터져나왔다. 박정환 9단의 우승으로 대회가 마무리된 지난 23일 오사카에서 조 9단을 만나 근황과 바둑 이야기를 들어봤다.
 

‘월드챔피언십’ 심판 맡았던 조치훈
초·중반 강해진 딥젠고, 종반에 착오
다른 AI보다 투자 적어 성장 느려
프로직 걸고 알파고와 겨루고 싶어
예능 프로그램 출연해 보는 게 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딸이 밥을 해주는 덕분에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조 9단은 2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 매일 오전 골프를 치고, 오후에 다섯 시간씩 바둑 공부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일본의 인공지능(AI) 딥젠고의 바둑을 어떻게 봤나.
“일단 딥젠고가 져서 매우 아쉽다. 내가 딥젠고를 이긴 마지막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웃음).”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딥젠고가 막판에 약점을 노출했는데.
“나와 대결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초·중반은 확실히 강해졌다. 박정환 9단 등 최정상 기사들과의 대국에서도 딥젠고는 마지막까지 완연한 우세였다. 하지만 종반에 간단한 부분에서 착오를 일으키다니 안타깝다. ‘알파고’나 ‘줴이(絶藝)’ 같은 AI와 비교하면 투자 규모가 작아서 성장 속도가 느린 것 같다.”
 
딥젠고가 3위, 이야마 유타 9단이 4위를 차지했다. 대회 결과가 주최국인 일본한텐 아쉬울 것 같은데.
“무엇보다 이야마 유타 9단의 3연패가 아쉽다. 일본 사람들에겐 이야마 9단이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야마 9단을 위해 대회 후원사가 붙었다. AI까지 참가하면서 오랜만에 재미있는 대회가 열렸는데 일본 입장에선 가장 나쁜 결과가 나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보고 있는 조치훈 9단(오른쪽). [사진 한국기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보고 있는 조치훈 9단(오른쪽). [사진 한국기원]

지난해 일본 최초 7관왕을 달성한 이야마 9단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이야마 9단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일본 바둑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은 안에서만 경쟁하는데 세계대회에서 이겨야지 바둑의 인기가 올라간다. 하지만 이야마 9단은 벌써 스물아홉 살이다. 한국과 중국의 톱기사와 비교하면 젊은 나이가 아니다. 이야마 9단 본인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압박감을 많이 느끼고 있을 거다.”
 
이제는 사람뿐 아니라 AI와도 경쟁을 해야하는 시대다.
“AI와의 경쟁은 사람에게 나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다른 분야는 아예 컴퓨터를 이길 수 없게 됐지만 바둑은 아직까지 이길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고 바둑은 사람이 AI를 이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고, 가능성 있는 목표가 생겼으니 좋다. 또 사람끼리만 바둑을 두다가 AI와도 둘 수 있으니 재미있지 않은가.”
 
AI 바둑과 사람이 두는 바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I는 사심이 없다. 매판 가장 좋은 수를 두는 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 때문에 바둑의 유·불리나 상대에 따라 순간순간 대응이 달라진다. 만약 사람도 깨끗한 마음으로 바둑을 두면 훨씬 강해질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은 평정심을 갖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AI 덕분에 평정심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됐다.”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 23일 끝난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심판을 맡았던 조치훈 9단. 조 9단은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3연패한 건 아쉽지만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딥젠고 외에 대국하고 싶은 AI가 있다면.
“알파고와 겨뤄보고 싶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가 나와 바둑을 둘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프로기사 은퇴를 걸고 알파고와 대결하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구글 쪽에는 전달도 되지 않은 것 같다.” 
 
또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가보고 싶다. 지금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서 초대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싶지만 내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안 될 것 같다. 한국말을 잘하게 되면 코미디를 꼭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잘 좀 부탁한다(웃음).” 
◆조치훈 9단
1956년 부산 출생. 62년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 문하 입문. 68년 입단(일본기원 최연소). 통산 타이틀 71회(일본 역대 최다). 대삼관(기성·명인·본인방전 동시 보유) 4회. 87년 일본 최초 그랜드슬램(일본 7대 타이틀 제패). 기도상(棋道賞) 최우수기사상 9회, 슈사이상(秀哉賞) 8회 수상.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