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미국이 한·미 FTA에 대한 오해 풀어야

중앙일보 2017.03.29 03: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승관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신승관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올해로 발효 5주년을 맞았다. 한·미 FTA는 협상 시작 전부터 거대 선진 경제권인 미국과의 수준 높고 포괄적인 협정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2007년 타결된 이후에도 발효되기까지 무려 5년이 소요됐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협정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극심했던 찬반 논쟁과 이제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소문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 최근 당시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목소리가 미국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물론 전체의 의견은 아니지만 미국 행정부 일각에서 한국의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과도하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미흑자 FTA 덕이라는
미 행정부 일각의 부정적 관점
FTA 없는 일본의 대미 흑자
600억 달러 어떻게 설명할 건가

미국의 주장대로 한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는 2011년 116억 달러에서 2016년 232억 달러로 증가했다. 하지만 상품 무역만으로 한·미 FTA의 성과를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양국 간 무역수지는 FTA 외에도 양국의 경제구조, 산업 경쟁력, 경제상황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먼저 상품 무역에 있어 한국의 흑자 확대를 FTA 효과라고만 단정 짓기 어렵다. 자동차만 보더라도 대미 자동차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FTA 관세율도 우리는 발효 이후 점진적으로 철폐했으나 미국은 2015년까지 발효 전 수준인 2.5%를 유지했고, 2016년이 되어서야 철폐됐지만 지난해 자동차 대미 수출은 북미 생산기지 확대 등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양국 간 경상수지의 차이는 상이한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소득에 비해 지출이 많은 소비지향적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인 반면 한국은 소득보다 지출을 덜 하는 저축지향적 경제구조로 경상수지 흑자를 보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이러한 경상잉여는 결국 직접투자와 국채 매입을 통해 재투자돼 미국의 경상부족분을 보전해 준다.
 
양국의 서로 다른 경제상황도 대미 무역수지 흑자 확대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4년간 미국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며 수입수요가 증가한 반면 한국은 몇 년째 2%대의 낮은 성장을 하며 수입수요가 위축된 것도 흑자 폭 확대의 요인이다. 양국 산업 경쟁력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제조업에, 미국은 서비스업에 경쟁력을 갖고 있어 한국은 상품 무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으나 서비스 무역에서는 미국이 흑자를 보고 있다. 이는 FTA 이후 한국의 대미 서비스 수지 적자 규모가 약 141억 달러까지 확대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미 간 무역수지 차이는 FTA만 가지고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을 FTA에서만 찾는다면 미국이 FTA를 맺지 않은 일본·독일 등과의 무역에서 각각 60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는 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지난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한·미 FTA를 통해 오히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 폭이 완화됐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전혀 다른 평가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무역수지에 국한된 평가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한·미 FTA를 통해 달성한 양국의 호혜적 성과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12년 발효 이후 5년간 세계 무역이 연평균 2% 감소하는 악재 속에서도 한·미 간 무역은 오히려 연평균 1.7% 증가했다. 교역량 증가에 힘입어 한국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발효 전 2.57%에서 지난해 3.19%로 상승했고, 미국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도 동기간 8.50%에서 10.64%까지 상승해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말 그대로 양국 모두에 윈윈의 결과인 셈이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일자리 창출도 눈여겨봐야 한다. FTA 이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확대되면서 발효 전에 비해 1만 명에 달하는 추가 고용이 이뤄졌다.
 
올해 초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미국 업계는 여전히 한·미 FTA를 황금표준(gold standard)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미 FTA가 오늘날에도 국제 통상규범에서 여전히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한·미 FTA가 포괄적이고도 높은 수준의 규범들을 담고 있는 협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 FTA는 양국이 오랜 시간의 협상을 통해 얻어낸 산물이고 룰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공정무역이 지지를 받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는 재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한 이행의 대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움직임을 철저히 모니터링하되 미리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해 균형된 시각으로 FTA를 평가하고 이행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 분야가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5년 후 양국이 한·미 FTA를 다시 되돌아볼 때, 지금을 양국 협력의 제2의 출발점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진솔하고 균형 있는 평가를 기대해 본다.
 
신승관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